예지몽 ( 豫知 夢)2
황 정 순
슬퍼서 잠이 깼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꿈속에서 친정어머니가 돌아 가셨다. 창문이 희끄무레 밝아오고 신문배달원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아 자꾸 전화기에 눈이 갔다.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하면 이른 새벽이니 어머니가 놀라실 것이고 혹시, 우리 집 전화벨이 울리면 내가 놀랄 것이다. 그대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큰 집 마당 근처에서 사촌 올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멀리서 어머니가 다급히 쫓아 오며 나를 불렀다. 어머니는 어렴풋한 모습이었다. 여름 한 나절 일을 마친 후 집에서 점심을 드시고 마루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셨단다. 머리에 쓰고 일하시던 노란 수건을 옆에 벗어 놓고 한 숨 주무신 후 다시 들일을 나가려고 수건을 집어 들었는데 , 글쎄 수건 속에 독사가 웅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피할 사이 없이 손을 물렸다고 한다. 다급한 마음에 물린 곳을 입으로 피를 빨아냈지만 독은 다 빠지지 않았고 , 어머니의 몸은 서서히 굳어 가고 있어 생명은 초를 다투었다. 아니 , 나를 찾아오는 동안 돌아가셨을 거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 어머니의 육신은 마루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며 영혼이 떠나기 전 막내딸을 부르러 찾아 온 것이라 하였다. 그 말에 충격을 받아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고 마음은 급하지만 달릴 수도 없었다. 집으로 발걸음을 겨우 한 발작씩 옮기면서 울다 못해 곡을 했고 , 곡을 하다못해 , 창을 했다. “ 엄마 !엄마! 나를 두고 가면 어떡하오! 어떡하오!... .”
심청이가 아버지 심 봉사를 부르며 찾아가는 절절한 소리를 내며 집으로 가고 있었다.
여름에 큰물이 지나간 후여서 길 둑은 무너져 내려 앉았고 개울가에는 버려진 옷가지들이 여기 저기 나무뿌리나 돌부리에 걸려 물길에 쓸리고 있었다. 그 길 둑을 따라 돌아서면 ‘구청거리’가 나온다. 그 곳에서 집까지는 밭둑과 신작로를 건너 500미터 정도 직선거리다. 신작로를 따라서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천렵을 즐기던 집안 부녀자들과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혼 불이 서쪽 하늘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창과 같은 소리를 하며 구청거리의 밭길로 들어서자마자 서쪽 하늘이 열렸다. 지금껏 보지 못한 낯선 세상이었다. 금빛도 아니고 은빛도 아닌 분홍빛과 노을빛이 혼합된 듯한 환상적인 빛깔이었다. 따뜻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잠시 후 동화책에서 본 듯한 선녀의 모습을 한 대여섯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들의 귀는 위로 길쭉하였고 , 분홍 옷을 입었는데 잠자리 날개같이 가벼워 보였으며 발밑까지 옷자락이 끌렸다.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가 뒤로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나오고 입체적으로 움직였다. 이곳저곳 폭죽을 터드리듯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어머니를 환영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내가 집에 도착하기 전 어머니의 영혼은 이미 아름답고 편안한 저승의 나라로 들어 가셨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딸을 보고 싶어 했는데 내가 늦었던 것이다.
“ 엄마 ! 엄마! 이제가면 언제 오시나 . 나를 두고 가면 어떡하오! 어떡하오! ... 울며불며 절절한 소리로 부르짖다가 잠이 깨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꿈이 많다. 꿈은 내면세계의 울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 이 번 꿈은 참으로 요상 하였다. 어머니는 작년 겨울에 갑자기 토사곽란이 났었는데 연세가 많다보니 혹시, 이러다가 죽는가 싶어 내심 걱정을 하셨단다. 그 때 가장먼저 막내딸을 보고 죽어야 되겠다며 전화를 걸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번 꿈도 영락없는 어머니의 뜻이었던 것 같다.
내가 꿈속에서 본 저 세상은 만약 내가 기독교 신자였다면 천국이었다고 말 하였을 것이다. 혹은 불교 신자였다면 ‘극락왕생’ 하였다고도 말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집은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또 다른 세상에 가신 것은 꿈속이었지만 당연하게 여겨졌다. 나는 아마 아버지도 그 곳에 가셨을 거라고 꿈속에서 생각 하였다.
어머니는 팔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낙천적으로 착하게만 살아 오셨다. 그것은 동네 사람들도 인정하는 바다. 그러다보니 우리 집에는 노인이든 젊은 댁이든 마실 꾼들이 끊이지 않았다. 노인들은 친구였고, 젊은 댁들은 남편과 다투었던 일이나 돈이 쪼들린다거나 하는 속 답답한 이야기들을 흉허물 없이 털어 놓곤 하였다. 어머니는 즐거운 일에는 맞장구를 치며 하하 호호 웃어주었고, 언짢은 일도 빠짐없이 다 들어 주었다. 그들은 음식을 갖고 와 나누어 먹기도 하지만 , 때로는 급전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시골 생활이라서 큰 돈을 빌려 달라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몇 만원에서 커야 몇 십만 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어머니는 안쓰러운 마음에 자식들이 준 용돈이나, 텃밭 가을걷이로 한두 푼 모아놓은 돈을 건네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빌려갈 때는 죽는 소리하며 , 언제까지 갚겠다고 철썩 같이 약속 해 놓고는 소식이 없다. 결국은 쫓아가 말을 들어 본다. 어머니는 앙칼진 소리 한 번 내뱉지 않고 “ 지금은 없으니까 그렇지 내년 농사지으면 주겠지...” 하면 그만이다. 그럴 때마다 울화통이 터지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고 늘 나였다.
그 뿐인가. 한 번은 팔십만 원을 잃어 버렸다고 아무 한테도 말을 못하고 지내다가 이야기 하였다. 2년 동안 모은 돈이라고 한다. 백만 원이 있었는데 이십만 원을 남겨 놓고 없어졌다고 혀를 찼다. 어머니가 좀 외딴집에 혼자살고 마실 꾼이 자주 드나들었던 점으로 보아 아는 사람의 짓으로 보였다. 그전에도 작은 돈이나 시계 등 몇 차례 잃어버린 적이 있어 짐작이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 사람이 눈으로 보지 않고 의심하면 죄란다. ” 한마디뿐이었다.
우리 집에 가끔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은 귀신 탓이라며 말을 잘랐다. 나는 더 이상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어머니는 어느 누구든지 밉다 곱다. 하지 않고 한결 같은 마음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종교가 없었어도 종교인 못지않게 살아오신 분이다.
이웃집에서 농번기에 일손이 부족해 도와달라고 청하면 기어코 가신다. 예전에 우리 집이 힘들 때 그들이 도와주었다는 이유였다. 그런 날 밤이면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앓으신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네에서 가장 편안하고 착한 사람으로 통하였다.
그런 심성 탓인지 어머니는 무병장수하며 살고 계신다. 내가 꿈속에서 본 세상은 분명 천국이었다. 어쩌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예지몽( 豫知夢) 인 것 같기도 하였다. 비록 꿈이었지만 나는 이다음에 어머니가 꼭 그곳에 가시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아침 10시가 가까워 온다.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여러 차례 간다. 길어지는 신호음만큼이나 긴장감이 더해간다. 마침내 어머니가 숨 가쁘게 전화를 받으신다.
“ 야 , 조금만 늦었으면 전화 못 받을 뻔 했다. 나 지금 이웃 아지매하고 경로당 가려는 참이다 ...”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른 때보다 밝았다.
비로소 내 얼굴에 보름달이 떠오른다.
황 정 순 수필가
충남 보령 출생 수필시대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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