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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鄭 木 日
대동여지도를 본다.
우리 국토의 영혼과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의 일생을 본다.
산 넘고 물 건너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걸어서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가 보았던 사람. 조선시대 평민의 신분으로 태어나 깨어있는 자의식의 혼불을 밝혀들고 국토의 곳곳을 빠짐없이 찾아가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꼈던 김정호!
등에 맨 봇짐에 몇 켤레 손수 삼은 짚신을 매달고 땀에 저린 발로 삼천리의 황토를 묻히며 우리나라 산하를 온 몸으로 안았던 유일한 사람.
김정호만큼 우리 국토의 영혼과 마음을 알았던 사람이 또 있었을까. 백두에서 뻗어내려 장백, 태백, 소백산맥을 이루며 지리산까지 한반도의 척추를 이룬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웅대한 산세, 반도의 가슴을 적시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 들판과 언덕, 가까이 손짓해 부르면 대답할 듯한 섬들…….
그는 평생을 다 바쳐 산 능선을 따라 강물을 따라 우리 국토 끝까지 닿아 땀에 젖은 발자국을 찍어 놓았다.
우리나라 산과 강과 들판, 여기에 살고 있는 삶의 모습들을 영원 속에 남겨 놓고 싶어 일생의 집중력을 쏟아 하나의 ‘지도’를 완성하고 싶었다.
그는 목판에다 칼로서 지도를 판각하면서 산하(山河)의 모습과 영혼을 끓어오르는 감격으로 새겨 나갔으리라. 대동여지도는 한반도를 너무나 사랑했던 그의 피와 눈물로 완성되었다.
한 장의 지도를 위해 아낌없이 불태운 그의 일생은 그리움과 열정으로 달려가 가슴에 안았던 그 산하(山河)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뼈마디와 실핏줄 하나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알고 있었던 조선시대 선각자 한 분. 수도승인양 걸어서 고행의 험한 길도 마다 않고 언제나 길을 떠났던 김정호-. 가난 속에서도 부귀공명 따위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지도 그릴 종이와 붓을 간직하고서 삼천리를 오고 갔던 사람. 가마나 말을 타지 않으면 먼 길을 떠나지도 않았던 양반들에게는 전설 같은 일생이 아닐 수 없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한반도의 혈맥이 보이고 한 선각자의 커다란 발이 보인다. 한반도의 구석구석을 두 눈으로 보았던 불타던 눈망울과 목판에다 한반도의 모습과 영혼을 칼로 새겨 지도를 만들던 커다란 손이 보인다.
숱한 외침을 당해도 굴복하거나 주춤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땅기운이 느껴진다.
그는 말한다. 한반도의 산과 강이 시퍼렇게 살아서 소리친다.
발에 굳은살이 박이고 온몸이 부서져 나가도 기여코 한 장의 지도를 완성함으로서 우리 땅과 물을 알고자 했으며 자신도 그 속으로 돌아갔던 사람.
대동여지도를 보면 우리 강토를 어찌 아름답게 가꾸지 않을 수 있으랴.
산맥이 뻗어가며 민족의 기상이 되고 강물이 흘러가며 민족의 마음이 되고 섬은 고독 속에 그리움이 되어 숨 쉬는데…….
대동여지도는 한 장의 지도이지만 우리 국토와 민족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을 영원 속에 각인해 놓은 사랑이다. 김정호의 일생을 피로 찍어놓은 목판화인 대동여지도는 백두산에서 마라도까지, 서해에서 독도까지 민족의 사랑을 담아 영원 속에 새겨 놓은 것이다.
압록강, 두만강, 한강, 금강, 낙동강은 민족의 피가 흐르는 혈관이며 장백산맥, 태백산맥, 소백산맥은 척추가 아니겠는가.
어딜 가나 포근한 뒷산 앞 냇물이 꿈결처럼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들판에서 농사짓던 순박한 사람들…….
아기자기하고 친근한 산들, 맑은 시냇물, 논두렁 밭두렁의 굽이치는 곡선들, 티끌 하나 없는 가을 하늘, 은은히 산 너머 들려오는 범종소리…….
봄이면 제주도에서 북상하는 향기로운 꽃 편지, 가을이면 백두산에서 하행하는 금수강산의 단풍…….
우리나라만큼 산, 강, 바다, 들판, 섬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 곳이 어디 있으랴. 산수(山水) 경치 좋지 않은 고장이 어디 있으랴.
대동여지도는 산수(山水) 조화의 미(美)다.
꼭 있어야 할 곳에 산과 강이 만나고 그리워 못 견딜만한 곳에 섬들이 있다. 독도는 해 뜨는 곳, 그리움의 끝에 가 있는 한반도의 한 점 혈육이다.
흙 한 줌, 돌 한 개를 어찌 대수롭게 여길 수 있으랴, 선조의 뼈가 묻히고 넋과 한(恨), 사랑이 맺혀 전설이 서린 땅이 아니던가.
김정희의 추사체 글씨가 보이고 김홍도(金弘道)의 실경산수(實景山水)가 보이고 윤선도의 시조와 정약용의 모습이 보인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하늘과 땅의 모습과 마음을 영원 속에 새겨 놓은 시(詩)요, 민족의 마음속에 국토의 넋을 불어넣은 음악이다.
석굴암, 고려 팔만대장경, 봉덕사신종,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은 우리나라 산하(山河)의 맑은 영혼과 마음이 모여 피워낸 꽃이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우리 국토의 동맥 속으로 흐르는 민족의 뜨거운 피를 느끼고 하늘을 향해 토하는 숨소리가 들린다.
나는 얼마나 우리 강산에 대해 알고 있는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 국토가 분단되어 가볼 수 없는 땅의 이름들을 불러본다.
뼈에 사무치는 겨레의 영원한 느낌표, 대동여지도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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