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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날개(2018-02-03 10:13:33, Hit : 697, Vote : 117
 삼베 한 필

삼베 한 필  

지금도 장롱 속 한쪽에는 삼베 한 필이 그대로 있다. 가끔 꺼내보면 알싸한 삼 향내 속에 어머니의 땀 냄새가 묻어나고, 철커덕 소리와 함께 겨울밤을 지샐 때 들리던 스삭거리던 바디 소리도 들려온다. 간간이 바람결에 지나던 기차 소리, 앞산을 넘나들던 산 울음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구성진 노랫가락도 들려온다. 그러나 지난번 찾은 고향 집 아랫방에 있는 어머니의 베틀에는 먼지만이 자욱하게 쌓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서울집에서 차례를 지내기로 한 뒤부터 일 년에 한 두 번씩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오셨다. 어느 해 겨울, 고속버스에서 내린 어머니의 손에는 여러 가지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집에 와서 풀어 보았더니 누렇게 색이 잘 난 삼베 한 필이 신문지에 말려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약속한 삼베 적삼 감을 마련하기 위해 마지막 베틀을 다시 세우셨던 모양이다. 사실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삼베 바지도 몇 번 정도 집에서 입어볼까 말까 했는데, 삼베 적삼이라니, 가슴이 짠해 왔다.

어린 시절, 변변한 땅마지기 하나 없던 우리 집에서 길쌈은 목돈 마련에 요긴한 것이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마을 앞 갯밭에 물이 들었다. 강이 범람하여 온 들판은 황토물로 뒤덮였으며, 그로 인해 갯밭은 비옥한 땅이 되었다. 그 갯밭에 여름이면 키가 큰 삼베가 잘 자랐다. 삼베 철이 되면 마을 어른들이 모두 모여 삼베를 베고, 공동으로 삼을 삶았다. 집집이 베틀을 세웠는데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기억 속의 그 과정과 광경들이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삼베 짜기는 고통과 인내의 모습으로 더 크게 남아있다.

“요번에 접으면 다시는 안 세울란다.” 지난겨울, 시골에 갔을 때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베를 짜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팔순이 다 된 노모는 “눈도 어둡고, 힘이 부쳐 니 줄 적삼 거리만 짜고 고만해야겠다”고 하셨다. 결혼할 때 아들에게 약속한 삼베 적삼을 못 해준 게 마음에 걸렸던지 어머니는 다시 베틀을 세운 것이다. 그런 말을 하시는 어머니의 표정에서 왠지 아쉬움이 배어나기도 한다.

나는 어머니가 언제부터 삼베를 짜기 시작했는지 알 수가 없다.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부터 베틀이 아랫방에 있었으니 아주 오래된 것만은 사실이다. 늘 베틀에 앉아 있는 것을 본 것은 아니지만, 가을걷이가 거의 끝날 무렵이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작은 방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베틀에 앉아 베를 짰다. 불도 잘 들지 않는 어머니의 작업실은 늘 냉기로 가득했다. 고단함에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추운 겨울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닫힌 문밖으로 철컥철컥 베를 짜는 소리가 나를 먼저 반겼다. 그 소리는 어머니가 집에 계신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작은 문을 살짝 열고 눈을 마주치면, 그때야 어머니는 허리를 펴시며 베틀에서 내려와 밥을 차려 주셨다. 아들과의 상면이 어머니의 유일한 휴식시간 이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마을 앞 갯밭 여러 곳에는 삼베 밭이 있었다. 삼베는 키가 아주 컸기 때문에 대마밭이라도 했다. 삼은 일년생 식물이다. 봄에 삼 씨를 밭에 골고루 뿌려 놓으면 싹을 틔우자마자 빠르게 성장하였다. 늦여름이면 어른들의 키보다 더 커졌다. 삼베 밭에서 숨바꼭질을 하면 술래가 친구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굣길 삼밭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뜨거운 여름날 쉬어갈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휴식처이기도 했다.

대마가 다 자란 늦여름이면 동네 어른들은 강변에 큰 사각형의 솥을 걸어놓고 장작불을 지폈다. 싱싱하고 푸른 대마를 푹 삶기 위함이다. 겉껍질이 물렁거릴 정도로 잘 삼긴 대마는 며칠씩 얕은 은모래가 깔린 강물에 담가 두었다. 껍질을 쉽게 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만큼 지났을까. 아낙네들은 대마 줄기의 껍질을 벗겨 내려 강가로 모여들었다. 삼 껍질을 벗기고 남은 희고 가느다란 줄기는 단으로 묶어 집 뒤란에 세워두었다. 바삭하게 마른 것은 겨울에 땔감으로 사용했다. 삼나무 겉껍질은 다시 물에 불려, 무딘 활꼴 칼로 겉껍질을 한 번 더 벗겨내면 부드러운 속껍질이 남게 된다. 속껍질을 다시 손톱으로 갈라서 잘게 만든다. 그리고 허벅지에 올려놓고 한 올 한 올 침으로 비벼서, 길게 한 가닥으로 잇는다. 베를 짜기 위해 실을 만드는 것이다. 어머니는 삼 실을 만들면서 나직하게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랫가락은 고단한 한숨 소리와 함께 올마다 스며들어 가곤 했다.

삼 실은 큼직한 소쿠리에 서리서리 담기고, 드디어 커다란 뭉치에 감겨 베틀에 올려지게 된다. 아버지는 때맞추어 마당 헛간에 넣어둔 베틀을 꺼내 세우고 베를 짤 준비를 서두르신다. 베틀을 세우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어머니는 베틀에 올라앉아 길고 긴 올들을 일정한 길이로 풀어 허리춤에 묶고 팽팽하게 당겨보기를 여러 번 하였다. 베를 짤 준비를 하는 것이다. 준비가 끝나면 날렵한 유선형 ‘북’에 삼실 꾸러미를 넣고, 올 사이를 통과시킨다. 그리고 ‘바디’를 몸쪽으로 당겨 툭 치면 한 줄의 삼베가 짜진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고 반복되면서 한 줄의 삼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베를 짜기 위해 베틀에 앉으면 어머니는 보통 몇 시간씩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북을 넣고, 바디를 당기며, 추위를 참으며 단조로운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셨다. 어머니의 인내심은 낮은 호롱불 속에 비친 그림자로 내 가슴에 남았다.

그렇게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 짜진 삼베는 모두 자식들의 교육비가 되었다. 당시 시골에서 목돈 마련은 소를 키우는 것과 길쌈을 하는 것이었다. 가난했던 우리 집은 소가 없었기에 사실 삼베가 요긴한 돈 줄이었다. 삼베 한 필의 가격이 얼마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베를 가지고 장에 다녀오신 날은 먹을거리가 풍성했다. 그래서 이십 리 먼 길을 걸어 장에서 돌아오시는 어머니를 맞으러 한참을 걸어 철둑길까지 나가 기다리곤 했다. 그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지만, 마냥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우고 찐 옥수수를 먹기도 하고 별을 쳐다보기도 하였다. 도란거리다가 식구들은 멍석 위에서 잠을 청했다. 새벽녘이었던가. 갑자기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깨어보니 마당의 빨랫줄에 널어 둔 삼베들이 모두 없어졌다. 온 식구가 허둥지둥 일어나 집을 뒤지고, 멀리 뒷산 기슭까지 가보았지만, 삼베 뭉치는 찾을 수 없었다.

요즈음 시골에도 밤에 차를 이용하여 농작물을 몰래 훔쳐가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는데, 당시에도 마당에 걸어둔 삼베를 훔쳐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래서 삼베를 건조할 때는 아예 식구들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자기도 했다. 그런데도 도둑이 몰래 삼베를 훔쳐 달아난 것이다. 식구들의 낙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어머니는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아려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관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어머니의 베 짜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겨울 휴가 기간에 시골에 내려가면 작은 방의 베틀에는 반쯤 짜진 베가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기력이 약해지셔서 쉬엄쉬엄 짜시는 것 같았다. 결혼하고 난 후 어느 여름, 어머니는 삼베 이불과 삼베 바지를 가지고 오셨다. 저고리가 없어서 마음이 걸렸던지 삼베 적삼은 나중에 꼭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이듬해부터 어머니는 아버지의 삼베 수의를 짜느라 약속한 삼베 적삼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어느 날 어머니는 다시 베틀을 세우시더니 ‘길안’이라는 시골 동네에서 껍질이 벗겨진 삼베 뭉치를 사오셨다. 시간이나면 ‘소일거리삼아 삼베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서울로 오셔서는 아이들에게 두둑한 용돈을 주셨는데 어머니는 손자들을 위해 또 베를 짜셨던 모양이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베틀을 접으셨다. 언젠가 어머니의 수의도 손수 준비하겠다고 하더니 실천하지 못하셨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더는 삼베를 짤 수가 없었다.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날을 전방 지역에서 근무하거나 휴일에도 자리를 멀리 떠날 수 없는 탓에, 일 년에 한 두 번도 고향을 찾기가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고향 집은 너무 먼 곳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근무지가 서울로 바뀌었던 작년,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짜신 삼베 한 필을 가지고 서울로 오신 것이다. 결혼한 지 삼십 년 만에 약속하신 적삼용 삼베 한 필을 가져오신 것이다. 지금도 가끔 장롱을 열면, 장롱에서는 고향 마을의 삼베밭들과 그 알싸한 냄새가 훅하고 밀려온다.





[낭송수필] 차 한잔 / 鄭木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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