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낼수 없는 편지(4)
-친구야 미안한 마음이야
성탄절에 은빛 축제가 되었으면 바랐는데 왠지 아쉬웠어. 교회는 나가지 않지만 그냥 그날만이라도 하얀 세상이었으면 했어. 성탄절 늦은 오전에 지연이가 문자를 보냈어. 아침 미사 끝내고 엄마 생신 축하 겸 엄마 뵈러 간다며 활짝 핀 미소까지 보낸 문자를 보면서 대견하면서도 희비가 엇갈렸어. 보고 싶은 친구가 자꾸 눈에 밟혀서,
생각나지. 서예 시작해 첫 작품이라며 보내 준 선물, ‘매월당 선생님 글’, 중 두 점, 지금에 생각하니 애석한 친구의 유일한 흔적 그 서체를 죽절 표구로 꾸며 보듬은 세월이 거의 두 번 변할 강산을 바라보네. 다섯 자 반 크기의 세로 액자 두 개였잖아.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자기 글을 보면서 “윤아, 부족한 글이 근사한 액사 속에서 호강한다.” 미소 띤 낭랑한 목소리가 자꾸만 밟혀 액자만 보면,
그런 액자가 언제부터인지 누런색이 희미하게 나타나더니 지금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야. 그 흔적이 서체 공간 공간의 여백을 거의 덮을 정도로 심한 상태로 변해 버렸어. 표구할 때 배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까. 참 모를 일이야. 두 개 액자 중 유독 하나만 그러니 말이지. 친구가 떠난 후부터 그 정도가 더 심한 거 같아서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픈 마음에서 느껴지는 건지.
예견이라도 한 걸까. 오랜 세월 접어 두었던 붓글씨를 올 초부터 시작했잖아. 다시 하길 참 잘했다 싶어. 부족하지만 그 액자에 내 글을 넣기로 하고 가을 학기부터는 집중적으로 연습에 임했지. 평소에도 좋아해 마음에 두었던 명언, 졸업 작품 겸 새로 꾸밀 액자이기에 마음 설레며 종강하는 날 오전까지 어렵게 마무리 지은 ‘知足常樂과 長樂無極’ 두 점, 큰 서체라 더 어려웠어.
선생님은 글체가 힘이 있고 괜찮다고 격려를 주시지만 방서도 부족하고 아무리 살펴봐도 글자가 균형이 맞지 않고 어색해 망설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처녀작이라 애착이 다를 거라며 바로 낙관을 찍으셨어. 영 마음 내키지 않더니 연미색 원단을 바탕으로 꾸민 액자는 산뜻해 새로운 기분이야. 첫 작품이라서인지 표구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어줍은 글도 똑똑해 보이는 것 같아.
우리 오전반은 대 선배님이 많이 계셔서 선생님들 글체를 뵙는 것만으로도 내게 큰 배움의 길이지. 긴장 속에서도 선생님의 훈도 아래 배우는 시간은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붓을 잡은 선생님 손놀림은 한 획 한 획 획마다 리듬이 실려, 그렇듯 물 흐름 같은 붓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냥 행복해 야릇한 흥분까지 느끼지는 붓글씨 공부, 내년 봄 학기부터는 더 열심히 할 거야.
존재를의식케 하는 묵향에 묻히면 온갖 시름이 눈 녹듯 다 사라지거든. 졸업 작품 겸 전시할 작품은 친구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愛’ 한 점을 소품으로 표구했어. 다시 꾸민 죽절 액자 반 크기야. 그 글체 또한 부족하지만 소품이고 첫 전시작품이라 그런지 애착이 더 가더라고. 하루뿐인 깜짝 전시회는 선생님권유로 부끄러운 행복감에 젖었었지. 저녁에는 송년 음악회장에서 모였고,
보기도 안쓰러워 아까운 친구작품은 표구사에서 반듯하게 오려 줘 통풍 잘 되는 상자에 넣어 두었어. 방학 동안은 집에서 틈틈이 습서에 임할 생각이고, 서체의 면모를 숙지해 마음에 들게 써지면 친구 글을 다시 써 예쁜 표구로 꾸며 지연이에게 선물로 보낼 생각이야. 그런 계획을 세우고 나니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네. 그래도- 아픈 마음은 여전해.
그럼 잘 지내, 우리 조만간 또 만나자.
2007. 12. 25.
白蓮 원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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