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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나는 작은 새 - 도월화
눈앞에 바다를 나는 작은 새가 보인다. 며칠간 계속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파도는 약하고 바다 빛은 짙다. 인적은 없고 먼 바다의 수평선 위로 서너 마리의 작은 새들이 날고 있다. 푸른 하늘에는 새털구름 포근히 떠 있다. 새들은 셋으로 보이다가 혹은 넷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가물가물 날개 짓 하며 날아간다. 나는 세 마리의 새만 보이면 슬퍼져서 잉크 빛 바다 위로 뚝 뚝 눈물을 떨구었다. 애써 네 마리 새를 떠올리고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망망한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그 밤에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바다를 나는 작은 새가 보인다. 새들이 날아가는 곳을 눈으로 따라 가 본다. 새들이 날아가다 앉는 곳에 나도 같이 머물렀다. 그 곳은 인터넷 바다에 띄운 작은 새들의 둥지이다. 한 상냥한 새가 나에게 미소를 보내주는데 가슴에는 하트 모양의 고운 심장이 장미 빛으로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나는 그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미소를 근래 들어 처음 보았기 때문에 속이 확 트이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미소는 성모의 통고에 동참한 여인만이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다.
그 새는 엄마 새인데 다시 바다새 둥지를 찾은 나에게 친절하게 시원한 음료도 권하고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고운 노래도 들려주었다. 나는 아름다운 영상에 취해 있다가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잊을 번했다. 그 때 나는 춘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바다 새의 홈페이지에서 나와 컴퓨터 접속을 끄고 급히 가벼운 화장을 하고 연 하늘 빛 투피스를 꺼내 입었다. 요즘 즐겨 들던 짙은 색 가방이 연한 색 옷과 어울리지 않아서 베이지 색으로 골라 들고 역으로 향했다.
계절은 봄이었다. 화창한 날씨, 맑은 하늘, 신록으로 덮인 산, 선로(線路)를 따라 기차와 나란히 흐르는 강, 강가의 나무들 풍경이 풋풋하고 싱그러웠다. 차창을 통해 보아서인지 아주 맑고 깨끗한 유리 액자 속의 그림처럼 약간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계속 그 기운에 매료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차 창 유리를 통해 보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5월의 풍경에 감돌고 있는 무언가 반짝이는 그 기운의 정체를 찾아 한 참 동안 상념에 빠져 들었다.
기차가 청평을 지나갈 무렵 아, 이거였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반짝이는 듯한 신비한 기운은 바로 신록과 이 산 저 산의 붉은 꽃, 보라 빛 꽃, 색색가지의 작은 꽃들과 파릇파릇한 잎 새들이 내뿜는 생기(生氣)였다. 이윽고 그 기운은 점점 더 강렬하게 느껴져서 한 순간 나는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5월의 맑고 푸른 하늘은 역시 달랐다. 땅 위의 만물이 내어 뿜는 생기를 침착하고 너그럽게 받아 안고 있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역에서 잠시 몸을 추스르며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 한 마리 비둘기가 눈에 띄었다. 흔히 비둘기는 떼 지어 다니는데 홀로 모이를 찾는 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인터넷 바다에서 오래 나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가족 홈페이지, ‘바다새 홈’의 슬픈 이야기가 외로운 비둘기를 보며 다시 떠오른다.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느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에 갑자기 일어난 가당치 않은 불행. 작은 아들이 군 훈련을 받던 도중 과로로 쓰러졌다. 그 길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바다 저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고통 속에 남겨진 부모는 큰 아들이 동생 일을 좀 잊고 살아가라는 배려로 만들어 준 인터넷 홈페이지, ‘바다새홈’에 마음 붙일 둥지를 틀고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다 지친 웹 나그네들에게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바다새홈의 특징은 처음 오는 나그네는 엄마 바다새의 슬픈 글, ‘둥지를 떠난 바다새’를 읽고 며칠간은 바다새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나도 ‘둥지를 떠난 바다새’를 읽고 ‘바다새님, 바다새님, 제발 오늘은 울지 마세요. 오늘은 제가 대신 울고 싶어요.’라고 방명록에 쓴 후 며칠을 그 생각에 눈물로 보냈다.
바다새 홈페이지의 1일 조회 수는 몇 백회는 될 것이다. 매일 그 곳에 찾아 와서 자신의 사연을 말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게시판에서 사랑싸움을 하고 가는 신혼부부가 있는가 하면, 가족 잃은 슬픔이나 갖가지 어려운 일을 털어 놓기도 한다. 우리가 바다새님 이라 부르는 엄마 바다새가 따뜻한 미소로 상처를 감싸준다. 믿음직한 아빠 바다새, 소리새님은 종종 시사성 있는 유익한 글을 게시판에 올려주시기도 한다. 그 누가 인터넷은 차가운 전자매체 일 뿐이라고 하는가. ‘바다새홈’에서는 슬픔 속에서도 나를 정화시켜 극복할 힘을 회복시켜주는 생기가 감돌고 있다.
이제 ‘바다새홈’을 안지도 일 년이 되어간다. 지금 나는 지난 봄 첫 방문 소감을 적어 놓은 메모를 보며, 바다새홈 1주년 기념 선물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이 졸문을 다시 정리해본다. 요즘도 울적하거나 쓸쓸해 질 때마다 나는 ‘바다새홈’을 찾아간다. 거기에는 영혼의 상처를 감싸주는 따뜻함이 있다. 기쁜 일이 있을 때도 나는 ‘바다새홈’을 찾아간다. 마음 놓고 자랑할 수 있고 기쁨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심심할 때도 나는 ‘바다새홈’에 간다. 무료함을 달래 줄 아름다운 산책로와 음악과 그림과 글을 감상할 수 있다.
아, ‘바다새홈’에서는 무엇보다 5월의 신록에서와 같은 반짝이는 생기(生氣)를 얻는다. 기(氣)에도 좋은 기운과 나쁜 기운, 즉 탁기(濁氣)가 있다는데, 살아있는 자에게서도 죽은 기(氣)를 느낄 때가 있는가 하면 죽은 자에게서도 생기를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비록 이승을 떠나간 사람일지라도 나에게 사랑을 주는 이들은 생기를 준다. 죽음과 삶을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좋은 기운은 우리에게 생기를 주고 평안을 준다는 것이다. 바다새홈의 세상 떠난 작은 아들이나 우리 살아있는 자들이나 좋은 기운을 공유한다면 산자와 죽은 자도 서로가 통하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어도 도저히 만날 수 없을 만큼 닫힌 사람도 있고, 죽어서도 사랑과 평온을 느끼게 해주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바다새홈에서 위로 받고 사랑과 평화를 느낀다면 바다새홈에 모여드는 우리는 모두가 ‘바다를 나는 작은 새’이다. (2001. 5.) http://ssopia7.kll.co.kr
(주(註): 여기 삽입된 새 이미지를 포함한 이 책에 실린 14점의 일러스트는 바다새홈(www.badase.com)의 소리새 님이 컴퓨터로 그린 그림입니다. 감사합니다.)
- 도월화 수필집 ' 여월여화 (如月如花)'/2007년 봄 선우미디어 출간,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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