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鄭 木 日
꽃만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잎눈 하나가 툭 틔어서 말이 되고 숲과 세상이 돼버리는 4월_. 꾸미려할 필요없이 그 자체가 신비인 새움엔 천가지 만가지 말들이 숨쉬고 있다. 귀엣말로 속삭이고 싶은 수줍음을 간직하고 있다. 생명의 젖내를 풍기며 무슨 말이라도 하고싶어 눈빛을 빛내는 신록의 4월_.
잎 하나만으로 더 없는 축복, 잎눈 하나씩이 틔어서 소리없는 찬미, 잎눈의 말들이 모여서 음악의 분수가 된다. 어둡고 쓰라렸던 기억들을 땅에 묻고, 고통과 시련의 어둠을 떨쳐버리고 이제 막 움에서 간신히 껍질을 벗고 나온 새빛깔은 신묘하기 그지없다.
4월은 잎 하나가 깨어서 갑자기 세상을 바꿔버리는 계절... 잎 하나가 다가와 깨달음으로 이끄는 놀라운 변화다. 삶의 가지에 새움을 틔어 새로운 수액과 공기와 햇빛을 맞아들여, 다시 인생의 탄소동화작용을 일으켜 보고픈 욕망을 갖게 만든다.
4월은 잎의 계절, 잎 하나씩이 생명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일깨워준다. 아무리 찬탄하고 찬미해도 모자랄 꿈의 계절이다. 말로서가 아니라, 느낌으로 충만하여 세상 전체를 경외의 세계로 만들어버린다. 살아 꿈틀거리는 색채만으로가 아니라, 그냥 마음속으로 물들어 버리는 녹색의 향연을 보면, 내 몸에서도 새싹이 피어오를 것만 같다. 죽은 듯한 밋밋한 가지에서 새촉이 툭툭 불거져 눈을 뜬 생명의 탄생 앞에, 저절로 탄성이 터져나올 뿐이다. 새움에서 핀 잎새보다 경이롭고 신성한 빛깔이 있을까. 신의 손길과 입김이 묻은 거룩하고 신기로운 빛깔과 모습에 눈이 부실지경이다.
새움에서 피어난 눈록(嫩綠)의 빛깔들은 나무들마다 각양각색이다. 갓 나와 털이 보송보송하고 붉으스레한 빛을 띄는 것, 아직 제 빛깔을 내지 못하고 푸르무레, 푸르스레한 빛깔, 향유를 바른 듯 푸르초롬한 빛깔, 어느새 푸릇푸릇, 푸르죽죽, 푸르뎅뎅한 것들까지 어울려서 녹색의 대경연을 펼치고 있다. 4월엔 필시 신이 지휘봉을 잡고 녹색의 대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산에 오면, 막 터져오르는 눈록, 연록, 신록이 살아움직이며 뿜어내는 생명의 빛깔들에 취하게 된다.
어느 해 4월, 고창 선운사에 갔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은 30미터가 넘는 암벽에 조각돼 있었다. 무상 무념의 공간 속에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앉은 키의 높이가 5미터이고 폭이 3미터나 되는 우리 나라 최대의 암각 불상_. 눈을 반쯤 내리 감은 결가부좌한 미륵좌상 옆에 나무들이 움을 틔어 푸릇푸릇 깨어나고 있었다. 만년을 꼼짝없이 깨달음의 경지에 미소지을 돌부처일지라도 어찌 새움의 신비 앞에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싶다. 도솔산과 선운사의 자태를 바라보았다. 앞에 내다보이는 산세는 창공으로 기러기가 날개저어 가는 선형이었다. 거문고가락처럼 고요와 달관의 선이었다. 여인의 허리곡선처럼 부드럽게 휘어지고, 보기에도 삼삼하여 눈길이 떠나지 않았다. 그윽하고 한없이 부드러운 곡선의 공간을 생기로 가득 채우면서 살아움직이게 하는 것은 신록의 광채였다. 산천을 살아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잎이었다. 꽃은 장식의 아름다움에 불과하고, 잎은 천지에 생명 그 자체가 되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 다. 선운사의 동백꽃이 아름답다지만, 4월의 신록만큼 신비롭지는 않다. 새롭다 새롭다한들 움튼 새싹만 할까.
4월은 신이 생명의 향유를 들고와 뿌리는 계절_. 축복과 꿈과 환희와 신비가 흐르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푸른 하늘을 향해 힘껏 팔을 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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