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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피아
제 목   어머니의 양산
어머니의 양산 / 도월화

눈이 부신다. 고야의 그림, [파라솔]이 오늘 따라 눈부시게 아름답다. 배경은 바람도 불고 흐린데, 화폭의 두 인물은 산뜻하게 표현이 되어 마치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을 볼 때처럼 인상적이다. 인터넷에서 어쩌다 에스파냐의 화가 고야의 [파라솔]이나,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모네의 [파라솔]시리즈를 볼 때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햇살처럼 화사한 분이었지만, 햇빛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래서 외출할 때는 늘 양산을 지참해야했다. 시아버지이신 나의 친정 할아버지께서 며느리에게 사주신 선물도 양산이었다. 할아버지는 이따금 지나가는 방물장수를 불러 당신의 하나 뿐인 며느리에게 가장 갖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며 예쁜 양산이나 장신구를 사주셨다고 한다. 그 무렵 어머니는 갓 스물을 넘긴 정도의 나이였고, 엄마와 동갑나기인 아버지는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나의 친정어머니는 결혼 전의 소녀 시절 어느 날, 1875년대에 그린 모네의 파라솔 그림에서처럼, 시골 길을 걸어 집으로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다니는 여학교가 있는 대구시에서 집까지는 버스로 두 시간 걸리고도, 십리 길을 걸어야 했다. 너무 멀어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가끔 연휴에나 외가에 다니러 올 수 있었다. 웬일인지 그날따라 너무 늦었다. 금방 해가 지고 말면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걸을 일을 걱정하며, 늘 그랬듯이 지나가는 길목의  우물 깊은 집에서 물을 얻어 마셨다. 그 댁의  마음씨 고운 부인이 인근 마을의 안면이 있는 소녀를 보자 반색을 한다.

"학생 왔우? 오늘은 너무 늦었구먼.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집에 들어가게나."
그렇게 하루 밤 신세를 지게 된 것이 나중에 아버지와 결혼을 하는 다리를 놓은 격이 되었다. 우물집 주인아줌마는 바로 아버지의 누나였으니, 나의 둘 째 고모인 것이다. 해맑은 미소가 둘 째 고모 마음에 드는 바람에, 어머니는 여학교를 졸업하는 둥 마는 둥, 바로 할아버지의 외동 며느리가 되었다. 아버지는 일 년에 몇 번 집에 내려오면, 며칠이고 잠만 자다가 상경했다. 열아홉 동갑 나이에, 어른들이 혼인시켜서 따르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쑥스러워 어머니에게 말도 잘 붙이지 않았다.

'저 샌님 같은 신랑이 장차 나를 호강시킬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면 어머니는 한숨만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국립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하는 아버지가 그저 집에서 한 참 떨어진 과수원 원두막에서 낮잠만 자는 한심한 청년으로 보였다고 한다.

부모님이 결혼 한지 사 오년 후에 맏이인 내가 태어났다. 학업을 마친 아버지가 국내 굴지의 S그룹을 일으키는 모태가 된 모직 회사에 취직을 하여, 어머니는 10년간의 신랑 없는 시집살이에 종지부를 찍었다. 할아버지께서 사주신 양산을 쓰고, 아버지 따라 도시로 새살림을 나게 되었다. 나는 그대로 몇 해 더 할아버지 댁에서 자라다가 초등학교 2학년 마친 후에 부모님과 동생이 사는 대구시로 전학을 했다. 그 후로 오랜 동안 나는 할아버지와 큰고모가 그리워, 시골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해서, 엄마를 당혹스럽게 한 기억이 난다.

이제 어머니의 양산은 아버지가 선물한, 자수가 놓이고 가장자리에 레이스 장식이 달린  당시 최신 유행 패션으로 바뀌었다. 할아버지께서 사주신 것은 화려했지만  다소 촌스런 붉은 꽃무늬 양산이었는데, 외국 출장 다녀오실 때 사 오셨음 직한, 아버지 선물은 거의 하얀 색에 가까운 파스텔 핑크의 고상한 수(繡) 양산이다. 어머니가 은은한 무늬가 있는 노란 저고리에 회색 치마를 입고 수 양산을 들고 학교에 찾아오신 날은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웠던가.

나와 두 살 차이의 바로 아래 여동생과 나는 종종 엄마가 집안일 도와주는 아줌마와 장보러 갈 때 즐겨 들고 다니던 양산과 함께, 만년 소녀처럼 살다 가신 어머니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 엄마는 시아버님을 존경했고 남편을 인격적으로 신뢰했다. 늘 자녀들에게 너희 할아버지는 한평생만 살고 돌아가시기엔 아까운 어른이고, 네 아버지만큼 평생 한 결 같이 진실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엄마는 자신에게 양산을 선사해준 분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곤 해서 우리는 그런 줄만 알았지, 정작 어머니 자신은 가족에게 마음의 양산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오십 일곱의 아까운 연세에 병상에서 쓰러지기 전까지는 정신적으로 엄마가 우리들에게 마음의 양산이었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암과의 투병생활 일 년 여 만에 어머니가 유명을 달리 하시자, 나는 꽤 오랜 기간 삶의 의욕을 잃고 말았다. 여태 나의 힘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어머니가 정신적인 양산이  되어 시원한 그늘로 이끌어 주었고, 그것이 우리들 삶의 에너지의 근원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가 병원에서 개복 수술을 받았을 때는 이미 암이 걷잡을 수 없도록 확산된 후였고, 집도의사는 손도 대지 못하고, 이리 되도록 그간 별 일 없이 사신 것이 신기하다고 했단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우리 가족 중에 누가 죽을병에 걸려야 한다면, 다른 식구가 아닌, 자신인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엄마는 온몸으로 양산이 되어 우리 오남매를 덮어,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주느라 자신의 속이 타들어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이달은 어머니 기일이 든 달이다. 천주교에서 전래해오는 이야기 중에 11월은 천당 문이 열린다는 속설이 있다. 어머니의 영혼에게 영원한 안식과 빛이 내리시길 간절히 기원할 뿐이다. 모네 (1840~1926)나, 고야 (1746~1828)의 파라솔 그림을 보면 더욱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나고, 그림 속 여인들의 양산을 한 번 빌려 써봤으면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림의 파라솔을 써볼 수 있다면,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선물해 준 고운 양산을 쓴 엄마를 만나볼 수 있을 것만 같기에.
2005. 11.





  안귀순 '엄마는 온몸으로 양산이 되어 우리 오남매를 덮어,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주느라 자신의 속이 타들어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어머니의 양산' 가슴 뭉클하여 목이 메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지요.

어버이의 그늘 아래 있을때는 은혜를 모르다가
떠나신 후에야 절절이 다가오는...그리움.

옆집 아우님 메리크리스마습니다.		 2005/12/14    
  소피아 안귀순 선생님의 격려에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용기가 납니다.
초원 언니, 따뜻한 관심에 정말 행복해요~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요.
여기 창작의 뜨락에서 가끔 언니의 신작도 읽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광이구요..^^
온니, 앞으로 많이 가르쳐 주시와요.
새해에도 건필하시고 온가족 건강,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2005/12/14    




나의 보석, 외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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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하루의일기/정영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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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찻그릇


어머니의 양산 [2]


마음


나도 노래를 잘 하고 싶다.


파트마 공주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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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종을 하나 달아두고 싶다. 
한 번 울리기만 하면 
고통과 슬픔도 사라지고 
마음 속으로부터 깊은 향기가 퍼져 나왔으면 좋겠다. 
듣기만 해도 낭낭하고 은근하여서 마음의 문이 열리고, 
신비음을 들을 수 있는 맑은 귀가 있었으면.... ' 
- 鄭木日 님 수필, '투명한 그리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