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샘칼럼 - 여름 어느 날
어릴 때부터 겁쟁이인 나는 새벽녘에 갑자기 터지는 뇌성벽력에 깜짝 놀랐다.그 순간 온 몸이 달팽이가 껍질 속으로 움츠리고 들어가듯이 말려 들어갔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 “죄많은 사람이 벼락맞아 죽는다‘라고 했다.과학적으로 벼락은 구름과 땅위에 있는 물체와의 사이에 방전하는 현상이라고 한다.그렇지만 아무리 그 이론이 맞을지라도 막상 뇌성벽력이 치면,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고 떨고 있는 것이 겁쟁이인 나뿐만 아닐 것이다.
나는 식은 땀을 닦으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려고 무릎을 꿇었다.한데,마음 문이 열리지 않고 닫혔다.아무리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연거푸 외워도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여느 때 같으면 기도가 막혔을 때 성경과 주기도문,사도신경을 암기를 하면,자동차가 움직이듯이 서서히 가슴 속 깊이 숨겨져 있던 허물덩어리가 풀려나와 눈물을 흘렸는데 오늘은 아니다.회개도 내 힘으로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불안한 시간이 흐르고 맑고 편안한 아침이 왔다.마음문을 활짝 열고 깊은 호흡을 했다.그리고 바닷가로 갔다.허리를 굽혀 바다와 만났다.바다는 싱그러운 물 향기와 잔잔한 물결로 갑갑한 내 영혼을 시원하게 만져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는 널브러지게 있는 자갈을 밟으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걸어 보았다.모래밭이라 움푹움푹 발이 들어갔다.비온 후의 모래밭은 마치 사진을 찍어 놓은듯이 또렷하다.
한참을 마음가는대로 걸으며 사색의 순간을 가졌다.버릇이 된 애창국 <가고파>도 불렀다.그런데 괜스레 울적한 감정이 솟구쳐 음악을 들을까 하고 주머니를 뒤져보니,버스비를 제하고 점심 값 정도의 돈이 남아 있었다.바닷가라는 상호를 붙힌 경양식집에 들어갔다.신세대들이 즐겨듣는 음악이 흘려 나왔다.고전음악만 좋아하고 연주하였던 터라 좀 기분이 날리는 것 같아 가지고 온 책과 신문을 읽으며 조용한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 보았다.그리고 글을 써 보려고 펜과 수첩을 찾았다.
글은,마음의 색깔을 바꾸어 주는 붓끝인가 보다.새벽 뇌성칠 때 회개하지 못했던 검은 허물이 글 몇 줄 쓰고,지우고,쓰기를 반복하는 순간 밀가루 풀어지듯이 하앟게 풀렸다.
글은,생각의 운율을 맞추어 주는 지휘봉인가 보다.한 시간 전까지도 서글퍼 느긋하게 걷던 마음도 글 몇 줄 쓰는 순간 조금씩 빠르게 더 빠르게 활기차게 움직인다.
해질 무렵의 바다는 고요하면서도 나풀거린다.바다밑을 들여다보니 오랜 세월 거친 파도에 깎여진 동그랗고 예쁜 돌 한 개가 반짝 보였다.나는 돌을 집어들고 마음속으로 대화를 하였다.“돌아,어여뿐 돌아! 나도 너처럼 하나님 말씀의 파도에 모가 난 성질과 기질이 깎이고 달키면서 둥글게 되고 싶구나 도와줘!‘라고.
아무리 예뿐 돌이라도 고향으로 보내줘야겠기에 아쉽지만 살그머니 바닷물 속으로 넣어 주었다.돌은 내 손에서 벗어나 잠잠히 물속으로 잠겼다.멀리 보이는 여객선의 뱃심꺼지는 고동소리가 붕! 붕! 들린다.하루를 끝맺어 주는 신호인가 보다.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니 초생달이 기다리고 있다.쾌속선 한 척 재빠르게 파도를 타고 간다.해 떨어진 바다는 새벽녘에 무례하게 발동하던 뇌성벽력을 용서함인지 제 자리에서 덤덤히 움직이고 있다.나도 덤덤히 걸어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글쓴이 정영숙/사랑이 샘솟는 집 운영위원장/사랑샘공동체 자문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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