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 曜 隨 筆>수필가 도월화 , ‘새처럼 날다’
우주인 이소연이 날아다닌다. TV뉴스에 나와 우주정거장 속을 날며 실험을 한다. 떠다니는 물을 보여준다.
마술처럼 손을 대지 않고 입으로 날아다니는 물방울을 먹는다. 빗어 올려 묶은 머리카락은 세우려 하지 않아도 야자수처럼 온통 위를 향해 서있다. 무중력상태라서 붕붕 뜨는 것이라고 한다. 새처럼 나는 것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꿈과 감동을 준다. 희망과 용기와 힘을 준다.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은 날고 싶은 꿈을 꾸었다. 르네상스 시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새의 비행을 연구했고, 1903년에는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유인 동력 비행에 성공한 이래로 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탈것을 사용해서였다. 피터팬같이 직접 떠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보라!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이 날아다니고 있다. 우주를 나는 기분이 어떨까. 이소연은 말한다. "정말 올라와서 느끼는 것은 지구는 파랗고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생각 밖에 안 들거든요. 이제 돌아가면 아름답게 살고 싶고, 그 안에서 아등바등 살지 말고 아름답게 살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라고.
아름답게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물방울같이 유연하게 꿈과 현실을 조율하는 삶이 아닐까. 우주에서 이소연은 2008년 4월 8일부터 19일까지 예정된 18가지 과학실험을 했고, 무엇보다 소련 미국 등 지구촌 사람들과 꿈과 우정을 나누고 돌아왔다. 우주과학의 문외한인 나 나름대로 우주에서 새처럼 나는 의미를 찾아본다면 다함께 아름다운 세상의 꿈을 키우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귀환한 이소연은 지금까지도 날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 나는 것이 매우 재미있고 환상적이었다고 했다. 다시 우주에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고 한다. 나도 돌아가고 싶은 시공간이 있다.
우리 막내 어릴 적이 생각난다.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몇 년간 신부님 미사 집전하실 때 옆에서 하얀 옷 입고 도와드리는 복사를 섰다. 아침식사 준비를 하며 주방 창을 바라보노라면 성당에서 돌아오는 막내가 보였다. 성체조배를 드리고 온 어느 날은 그 어린 것이 "어머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 이게 바로 하느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되겠죠?"라고 말했다. 그 말에 잊혀 지지 않는 감명을 받은 나도 그 순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새벽미사 보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수녀님께서는 아이에게 복사 잘 섰다고 칭찬하며 과자를 주곤 하셨다. 수녀님이 주신 스낵 류(snack類)를 먹으며 집 앞 공원을 지나면 비둘기가 얘, 과자 좀 줘, 하며 힐끔거렸나보다.
한줌 던져 주면 떼 지어 날아들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가 지나자 언제부턴가 아이의 새벽 귀가 길에는 새들이 우리 아파트 앞까지 주르르 따라 왔다.
창 너머 잔디밭 사이 길로 아이가 걸어가면 그 뒤로 비둘기 떼가 줄줄 따라오고, 아이가 뛰어 가면 푸드득 푸드득 따라 날던 진풍경이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귀여운 우리 막내가 이소연처럼 날수 있었다면 비둘기들과 한마음으로 날아 왔을 텐데 라고 상상하면 꿈길을 거니는 듯하다.
영화에서도 그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거위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장 먼저 본 주인공 소녀를 엄마인 줄 알고 졸졸 따라 다니던 '아름다운 비행'(1996 Carroll Ballard 감독, 미국)이다.
에이미(Anna Paquin 분)는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10년간이나 떨어져 살던 아버지를 만나려고 다시 고향을 찾는다. 새로운 생활 적응이 어려워 방황하던 에이미는 늪 주변에서 야생 거위 알을 발견하고 집에 가져 가 부화하게 한다. 아기 새들의 엄마가 되어주며 어머니 잃은 슬픔을 극복해 나간 것이 아닐까 싶다. 철새인 거위들이 자라자 안전하게 남쪽 나라로 보내기 위해 소녀는 아빠의 도움으로 경비행기를 타고 새들의 안내자가 되어 우주인처럼 날아오른다.
남편과 드라이브 길에 나선 어느 일몰 무렵에 본 새들이 기억난다. 서쪽 하늘 구름 위의 지는 해가 붉은 날이었다. 어디선가 작은 새들이 V 자 편대를 지어 와 방금 해가 숨어버린 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맨 끝에 새 한 마리가 한 참 뒤쳐져서 난다.
과연 앞 선 새떼를 쫓아 갈 수 있을는지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그 새는 병약한 어린 새인지, 부모 새처럼 보이는 두 마리 새가 갑자기 속력을 줄여 다른 새들보다 천천히 날며, 맨 끝의 새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꼴찌로 날던 새가 추월해서 나니 기다려주던 두 마리 새도 정상 속력을 내는 것이었다. 공중을 날며 정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렇게 새들은 꿈결처럼 어디론지 사라져갔다.
'아름다운 비행'에서도 이고르라 불리는 허약한 새 한 마리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는 장면이 있었다. 마침내 에이미는 경비행기로 거위들을 남쪽으로 환송해 주었다. 가슴 뭉클한 배경음악 속에 내가 직접 본 새떼같이 붉게 노을 진 하늘을 날아가는 화면이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다음 해 봄 이고르를 포함한 열여섯 마리의 새 전부가 에이미에게 돌아왔다'고 자막이 올라가면서 끝이 난다. 에이미를 엄마라고 믿었던 새들이 계절이 바뀌어도 믿음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게 신비스러웠다.
새처럼 날다. 깃털처럼 가볍게 마음을 비우고, 돌아오는 철새처럼 마음에 새기고 살자. 내가 집착하는 거의 모두가 욕심일 뿐. 언젠가는 형체마저 사라질 것들. 어쩌면 중요한 건 난다는 그 자체보다 자유롭게 자연과 교감하며 꿈을 펼쳐나가는 것이 아닐까.
사랑과 신뢰와 꿈으로 가득 찬 이상을 향해 한껏 날개를 펴 보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바쁘게 살다보니 꿈 속의 세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우주인 이소연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무언가 거칠 것 없는 본향을 향한 소실돼가는 꿈의 세포를 되살려 주는 느낌을 준다.
오늘따라 새소리가 유난하다. 창문 열고 내다보니 나무 가지에 작은 새 몇 마리가 날아다닌다. 벚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너머 공원이 있고 성당이 보인다. 우리 막내 어린 시절 새벽미사 후 비둘기 떼를 몰고 돌아오던 정경이 눈에 선하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는 날아가는 철새처럼 자유스럽고 비둘기처럼 평화롭고 우주를 날며 파란 지구를 바라보는 우주인 이소연과도 같이 아름다운 세상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는 날아가는 철새처럼 자유스럽고 비둘기처럼 평화롭고 우주를 날며 파란 지구를 바라보는 우주인 이소연과도 같이 아름다운 세상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수필집 ' 여월여화 (如月如花)'
한국문인협회 회원
창작수필문인회 회원
인터넷수필마을, 에세이 아카데미아 sysop
이화여대 법학과 卒
(前)영등포 중 사회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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