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나
윤연모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어머니의 모습도 같이 떠오른다. 사실 내가 추억을 떠올린다기보다 어머니를 통해서 많은 에피소드를 알게 된다. 그를 통해서 나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생각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어머니와 나 사이에 많은 추억이 있는데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꽃이나 동물을 좋아하고 불교를 믿게 된 계기를 어머니가 심어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렸을 적 난 ‘호기심 천국’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전주 금암동에 살았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시절로 돌아가면, 집 주위는 온통 논밭이었고 집 앞에 미나리 밭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 가는 길에 기찻길이 있었다. 때로는 아빠 손을 잡고 때로는 오빠와 함께 그 철길을 건너다녔다. 집 안마당에는 온통 맨드라미와 사루비아 꽃밭이 소박하게 아름다웠고 그 꽃들 위로 나비와 잠자리가 날아다니면 그들을 좇아 같이 뛰어놀던 기억이 있다.
학교에 갈 때면, 어머니는 머리를 예쁘게 두 갈래로 땋아 동그란 빨간 리본을 양쪽에 달아주거나, 머리를 한 갈래로 땋아 내리거나 공주처럼 올려주는 등, 여러 가지 헤어스타일로 내 머리를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내가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은 내 머리 스타일에 대한 만족감이라기보다 내 머리에 느끼던 작은 통증들이다. 나는 호기심이 너무도 많아 저쪽에서 기차소리가 나면 저쪽으로, 반대쪽에서 다른 소리가 나면 그쪽으로 머리를 돌리기에 바빴으니, 어머니는 무척이나 힘이 드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때마다 내 머리를 머리빗 끝부분으로 콕콕 찌르셨으니, 그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그 버릇은 여전했다고 한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큰 골칫거리인 호기심인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가지고 놀 장난감이 많지 않았다. 요즈음처럼 집집마다 장난감이 지천으로 쌓여있고 게다가 아이들의 머리를 개발해주는 다양한 종류의 장난감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지금도 여동생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어린 여동생이 지니고 있어야할 예쁜 헝겊 인형을 내가 안고 아버지에게 안겨서 찍힌 가족사진이다. 철없던 시절에 그 사진을 나의 보물처럼 생각하고, 내가 여동생보다 아버지 사랑을 더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여, 그것이 잘못된 우월감으로 발전한 적도 있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신 어머니
그러한 궁벽한 시절보다 앞섰던, 내가 대여섯 살 때의 일이다. 한낮에 그 조그만 왼손을 몇 시간이나 꼭 쥐고 다녔단다. 어머니께서 너무나 궁금해서 손을 펴보라고 하면 안 펴서 간신히 억지로 펴보니, 놀랍게도 작은 지렁이가 한 마리 죽어서 오그라들어 있더란다. 어머니는 처음에 놀랍고 징그러웠지만 왜 그랬냐고 물으셨단다. 그랬더니 지렁이가 꼬물꼬물 움직이니 신기해서 손에 가만히 쥐고 있었다고 대답하였단다. 그래서 어머니는 지렁이가 숨을 못 쉬어 죽으면 불쌍하니, 앞으로는 흙에 다시 놓아주라고 하셨단다. 아마도 나는 이미 그 때에 불교에서 말하는, 아무리 미물이라도 해치지 말고 살생하지 말라는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무의식중에 배웠던 것 같다.
어느 봄날에 아버지 산소에서 아버지를 위해 붉은 철쭉과 빨간 베고니아 꽃을 심기 위해 땅을 파다가 굼벵이를 발견했다. 너무나 징그러워서 마음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그 순간 어린 시절의 나의 행동이 퍼뜩 떠올라서 그것을 손바닥에 놓고 조카들을 웃기며 어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려고 애쓴 적이 있다.
아버지를 잃고 불교에 매료
1989년 봄, 아버지를 잃고 나서 우리 가족은 정신적으로 거의 마비되어 휘청거렸다. 특히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더욱 그랬다. 우리 가족은 서로를 볼 때, 가장이며 아버지라는 정신적 지주를 잃었다는 동질감에서 연민을 느꼈다. 그 한 해는 봄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아름답게 변하고 우리 곁을 어떻게 떠났는지 전혀 느끼지도 못하였다. 어머니도 나도 우리 식구 모두가 석가탄신일인 사월초파일과 아버지의 사갑 그리고 기도 모임 때에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절에 열심히 다니며 ‘지장보살’을 독경하였다. 불교청년모임에 정기적으로 다니며 불교의 교리도 배웠는데, 나와 조상과 우주와의 관계가 객관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 이론이 합리적이며 초자아(超自我)를 느끼게 하여 주므로, 조금씩 깨달을 때마다 머릿속에 밝은 빛이 지나가는 듯했다.
그 다음해 여름에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대원사에 다녀왔다. 그냥 바람이나 쐴 겸, 절에서 대절한 버스에 타고 함께 떠났다.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차창밖에 펼쳐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잃고 난 뒤, 거의 두어 달 동안 병원 생활을 하고 나오신 어머니는 그 뒤로 거의 일년 동안 웃지도 않고 염세주의자처럼 굳어 있었는데, 고맙게도 어머니의 얼굴도 대원사 경내에 핀 화사한 백일홍 꽃처럼 피어났다.
앉아서 천리를 보는 어머니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불가사의가 있다. 여스님만 수도하시는 대원사 경내와 그 근처의 수려함도 잊을 수 없지만, 더 놀라운 것은 여스님들의 맑고 깨끗하여 보석 같은 피부와 잔잔한 샘을 연상케 하는 도인의 눈빛이다. 또 목탁을 두드리며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시는 스님의 나이가 꽃다운 나이였기 때문에 더욱 신비로웠다. 분명 저 도인의 얼굴은 종교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머니와 나는 크게 놀랐다. 이렇게 우리 둘은 좋은 도반이기도 하다.
요즈음 어머니는 연세를 많이 드셔서 머리로 온 세상을 움직이신다. 사람이 어려서는 두 발로 뛰고 성장해서는 몸으로 움직이며 중년이 되어 명예를 얻으려고 애쓰고, 나이 먹으면 머리로 세상을 움직이므로 앉아서 천리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어머니는 나에게 있어서 둘도 없는 카운슬링 파트너이다. 때로는 운동을 강요하여 싫을 때도 없지 않지만, 어머니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어미에게 있어서 모든 딸이 그렇듯이, 어려서는 어머니의 꽃 같은 꿈이었고 딸이 크면 인생에 공통되는 점이 많아서 서로에게 아주 좋은 친구가 되고, 어머니가 세월에 빛바래고 무릎에 힘이 빠지면 버팀목이 되어드리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나와 어머니의 관계는 조금 특별하여 아직도 내가 어머니께 많이 의지하여 도움을 받고 있다.
원고지 15매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신문에 2005. 3. 23 발표
검색인생
|
|
Home 자작 수필을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