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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shangri-la)
한상렬
안면에 생긴 작은 반점이 영 께름칙했다. 손이 자꾸만 그 부위에 가서 머물렀다. 날이 갈수록 반점은 도톰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차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몸의 이상증후인 듯싶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어차피 나이 들어가는 증거일 테니 그냥 그대로 데리고 살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그러구러 몇 달 후 끝내 병원을 찾아가 레이저치료를 받아 제거했다. 이제 그럴 일이 없으려니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말끔해진 얼굴에 어느 날 또다시 복병처럼 작은 점이 생기더니 이내 자리를 굳혀갔다. 그 정도라면 그래도 참을 만했다. 손등에 나기 시작한 검버섯도 차츰 자리를 넓혀가더니 여기저기 나 보란 듯 성시(盛市)였다. 나이 들어가는 증좌라고들 하지만, 지금껏 평생 나이듦에 대하여 나만은 예외이지 했었으니 얼마나 오만불손했던가.
그 후 얼마 지나서였다. 좌측 눈가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온종일 컴퓨터에 앉아 있으니 눈의 피로 때문일 게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자위가 부어있는 게 아닌가. 그 놈이 살아 숨쉬듯 한동안 커지더니 아주 자리를 차고 앉아버린 것이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늙음을 과시하는 듯 보여 마음마저 쓸쓸해왔다.
어떤 문우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몸에 이상 징후이니 체질을 한 번 바꿔보라 했다. 하여 적지 아니 돈을 주고 무슨 약인지도 모를 것을 몇 개월 동안 복용하였다. 그런데 약효는커녕 오히려 하루에도 몇 번 화장실을 드나드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복용 기간이 짧아서일까. 평생 한약이라곤 한 재도 복용한 일이 없는 나는 더 이상 약효를 기대하는 일을 포기해야 했다.
그때 자리를 잡은 놈이 아직도 내 안면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남들이야 뭐라 하든 평생 데리고 실아야 할 팔자이지 싶다. 그게 노화현상이라 하니 슬픈 일이 아닐까. 세월을 그만 흘려버렸으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욕심을 부리는 내가 서글퍼 보인다.
1930년인가.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란 작자의 소설에 《잃어버린 지평선》이 있다.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다는 꿈의 낙원 ‘샹그릴라’다. 작가가 상상한 가상의 세계-쿤룬산맥 서쪽 끝자락에 숨겨진 신비롭고 평화로운 계곡이다.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외부로부터 단절된 유토피아. 지금도 많은 독자들이 그 소설 속의 묘사된 곳을 찾아가고 싶어 안달이라고 한다.
‘영원한 젊음’, 그야 누구나 소망하는 일이겠다. 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끝없는 도전은 이런 꿈을 현실화시키려 무던히 애쓴다. 의료와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평균 수명을 연장시키고 건강한 노후를 위해 기여해 왔다. 급기야 노화현상의 극복이라는 선물까지 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노화란 순응해야 할 자연현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생각해 보라. 할아버지가 손자뻘 되는 젊은이와 격렬한 축구시합을 즐기고, 손자의 친구들이 할머니인 줄도 모르고 데이트 신청을 한다면 어떠할까? 이런 상상이 그저 발칙한 발상뿐일까? 하지만 미래에는 분명 이런 포복절도할 일들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노화 현상의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지연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에 접어든 나라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이런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이제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한 단계 도약의 계기를 맞고 있다. 1999년에 설립된 엘릭서(elixir)라는 기업은 기업의 이름조차도 과거 연금술에서 유래한 ‘불로장생의 약’에서 따왔다고 하던가.
하지만, 어차피 영원히 살 수 없는 바에 단순히 오래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화방지로 수명이 연장되어 100살까지 연장된다고 하여 무슨 큰 기쁨일까. 서울 종로 3가의 종묘나 파고다공원엘 가본 사람은 알 일이다. 온종일 그 곳은 노인들로 북새통이다. 집에서 쫓겨 밖으로 나온 노인들이 할 일 없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장소이다. 행여 비가 오는 날에는 종로3가 전철 지하도엔 오도 가도 못하는 노인들로 초만원이다.
경제위기의 한파가 몰려온 이후 조기 퇴직하거나 일자리를 잃은 중늙은이들이 할 일을 잃고 여기저기에서 서성인다. 아직 젊은 나이건만 할 일을 잃은 노인들. 노화방지의 객관적 효능은 분명 나타나고 있건만, 그래서 수명 연장의 획기적인 꿈이 이루어졌건만, 여기에 노인 복지정책이 뒤따르지 않는 한 결코 꿈의 낙원 샹그릴라는 아닐 것이다.
싱글(single)족과 딩크(dink)족이 새로운 가족 형태가 되어간다. 독신 가구의 확산이다. 그래 ‘둘만 낳아서’에서 ‘둘이서 만이’로 부부행복의 요건이 바뀌어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가임여성의 1인당 출산율은 1.19명으로 세계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고 하니, 출생율의 저하와 노인인구의 증가는 미래 엄청난 문제를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핵가족의 재분열은 불가피한 일이고, 출산에 따른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한 출산율의 증가는 어려운 일이지 싶다. 이런 고령화의 충격은 지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일 게 분명하다.
늙어가는 것은 쇠퇴가 아니다. 늙는다는 것은 또 다른 가능성의 시작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고령인구의 증가는 그들 노년에게 이 사회에 마지막 봉사의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
최근 일본에서의 노인문제 대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노인 인구 증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비스 업종의 많은 부분을 노인들에게 할애하고 있다. 큐슈의 호텔에선 종업원의 대부분이 노인이었다.
그저 오래 산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런 산술적인 수명의 연장이 아니라, 건강 수명을 동시에 연장해야 한다. 노인 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노인을 위한 비즈니스가 성행하게 될 것이다. 소득 수준이 상승하고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수록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버산업은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에 적응할 만한 개인적 노년의 준비가 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불로장생이 이제 꿈만이 아닌 사회이다. 그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 그리고 노년까지 할 일이 있다면 오죽 좋으랴. 그렇기에 아름답게 늙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소망할 바다.
샹그릴라는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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