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마초의 영토에서
오 길 순
산삼 녹용 웅담 우황보다 약효가 낫다는 곰보배추를 묵정밭에서 보는 순간, 눈 속에 핀 꽃을 본 듯 반가웠다. 개망초 사이에서 막 싹이 튼 여남은 포기의 작은 풀들은 두꺼비 등처럼 올록볼록하여 나하마초(癩蝦蟆草)라 불리는 일명 문둥이 풀, 곰보배추가 틀림없었다. 가래 기침 해소 천식은 물론 폐렴 결핵 옹종 등 온갖 난치병에 특효라는 곰보배추를 실험해 보고 싶었었다. 혈액을 맑게 하고 이뇨를 도와 세균과 기생충을 죽인다는 천연항생제, ‘만병초’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는 곰보배추의 효능이 몹시 궁금했던 차이다.
지난여름 마을 앞 묵정밭에는 개망초가 가득 피었었다. 한 밤중에도 사람들이 발길을 멈춘 것은 달빛을 뿌린 듯한 꽃의 정취보다 밤새도록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 때문이었을 게다. 밭고랑 사이 작은 웅덩이에 개구리가 살고 있었다. 습기를 좋아하는 곰보배추를 웅덩이 물이 싹 틔워주었을 것이다.
곰보배추는 설견초(雪見草) 천명정(天明情) 과동청(過冬靑) 등 이름도 다양하다. 엄동을 푸르게 견뎌낸 과동청의 근기는 이름 속에서도 선하다. 저 못난 설견초가 보물초로 여겨지는 것은 역작용이 만만하지 않다는 양약에 비해 아무리 복용해도 부작용이 없다는 특별한 항생 성질 때문이기도 하다. 조상들은 살균과 해독작용이 우수한 곰보배추의 유익을 작명으로 전하려 했을까. 다양한 이름에서 대체의학의 지혜가 전해지는 것만 같다.
약초연구가 전동명은“기관지염, 가래, 기침, 해소, 천식 등 18가지 인후와 호흡기 질환에 탁월한 명약임이 민간요법으로 확실히 입증되었다. 곰보배추로 식혜를 만들어서 음료수 대용으로 음용해도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잡초인 곰보배추를 이용하여 신약을 개발할 연구 가치가 높은 식물 중 하나.(다음 블로그, 바다의 보배)”라고 역설한다. 양복규는 “난치병에 효능이 있으며 타박상 어혈 치질 매독 풍진 피부병을 낫게 한다.(건강 요람,p.212)”고 기록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의 <약방문> <금료소초金蓼小鈔>에서 “대변을 본 뒤 감초 끓인 물로 씻고 오배자, 여지초 달인 물로 씻으면 치질 치료에 좋다.”고 적었다. 앞쪽은 푸르고 뒷쪽은 희며 올록볼록 얽은 듯한 잎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는 여지초는 곰보배추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곰보배추에 대한 관심은 인터넷 검색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아토피와 비염정보를 찾다가 어릴 적 보았던 이름 모를 식물의 특효에 놀랐다. 그 봄 어디에도 없었다. 정글의 고엽제처럼 농약과 제초제의 오남용이 곰보배추를 사라지게 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최근 곰보배추를 시판한다는 소식이다. 남녘 지방에서 종자를 채취 재배하여 효소나 술로도 만들어 판매한다니 반갑기만 하다. 항생제가 오남용되는 요즈음, 곰보배추 재배소식은 복음이기만 하다. 구제역과 조류 독감 등 신종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이겨낼 풀도 꼭 있을 것만 같다. 일본의 원전 방사능이나 중국의 황사를 정화해 줄 약초도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유년의 논두렁에는 곰보배추가 흔했다. 두꺼비 등처럼 못생긴 풀잎을 보면 나물을 캐다가도 흠칫 놀라곤 했다. 이름 모를 시퍼런 풀이 혐오스러웠다. 익초를 독초로 여긴 게 야생초뿐이랴. 인간살이 오해가 난무하는 것은 편견과 착각의 오남용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여남은 포기의 곰보배추 묘를 마당가 한 뼘 땅에 옮겨 놓고 온갖 꿈을 꾸어 본다. 저 여린 풀이 어서 자라 구원의 약초가 될 수 있기를, 들짐승 날짐승도 들판 가득한 곰보배추로 질병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그대와 나, 한 잔 곰보배추 술을 마주 놓고 ‘불안이라는 병’도 깨끗이 치유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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