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건 찝질
오 승희
어제 김장을 했다. 작년부터는 두 딸아이들 것과 우리, 이렇게 세 집 것을 한꺼번에 한다. 무채를 버무리는데 아이들이 고춧가루가 적다느니 소금은 고만 넣으라느니 몇 년 살림을 한 티를 낸다. 그 모양을 보면서 나는 옛날 생각이 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
큰아이가 고등학교 1.2학년 쯤 되었을 때였을까.
“엄마 우리도 김치 좀 먹음직스럽게 담어요.” 한다.
“얘 좀 봐, 건건찝질 하면 먹지 무슨 호강스런 소리야.” 한마디로 오금을 박아 버렸다. 반찬 투정 같은 건 잘 하지 않는 아이들이었지만 불만이 있어도 건건찝찔이 생각나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난 참 모진 어미였다.
나는 음식을 짜게 먹는 편이다. 요즘은 짜게 먹는 것이 몸에 해롭다고 해서 짜게 먹고 자란 아이들은 싱겁게 먹는데 나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내 입맛이 짜진 데는 그럴만한 원인이 있다. 살림을 배울 틈도 없이 결혼을 해 버린 나는 참 대책 없는 새댁이었다. 김장이야 어차피 다른 사람 손을 빌려서 하면 되었지만 문제는 장을 담그는 일이다. 처음 몇 년은 언니와, 이웃에 살던 사촌 올케가 와서 도와주곤 했다. 사촌 올케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했다. 김장이 끝나면 언니는 메주콩 한말을 사다가 푹푹 삶으라 했다. 옹색한 단 칸 방에서는 겨우내 콩콤한 메주 뜨는 냄새가 났다. 이듬해 간장 담그는 방법을 묻는 나에게 언니는 콩 한말에 물 세 초롱, 물 한 초롱에 소금 수북하게 세 양재기씩을 풀고 계란이나 밥을 꽁꽁 뭉쳐 띠워서 뜨면 간이 얼추 맞을 것이라 했다. 간장이 잘 익으려면 장독 건사를 잘해야 하는데 나이 어린 시누이가 믿을 수 없었던 올케는 간이 되었다 싶어도 무조건 소금 한 양재기씩을 더 넣으라는 것이다. 간장이 짜면 옅은 맛은 없어도 변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고추장도 마찬가지, 짜면 조금씩 먹으면 되지만 싱거우면 통째로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훗간을 하는 일이 간장과 고추장에 그치질 않고 모든 음식에 훗간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쨌거나 내 입맛이 조금 짜지기는 했어도 해마다 담그는 간장이나 고추장을 버리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음식을 짜게 먹는다고 해서 사람 성정이 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세상살이에 겁을 먹었었는지 나는 사람 자체가 짜고 편협해진 것 같다. 아이들은 그냥 음식을 좀 맛나고 보기 좋게 해서 먹자는 것뿐이었는데 그렇게까지 쥐어박는 소리를 했어야 했는지. 어디 음식뿐이었겠나. 그 때나 지금이나 사교육이 공교육을 앞 찌르려 하는데 저희들도 과외공부나 학원에 다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눈치가 보인다 싶으면, 그런 것은 말귀 못 알아듣는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학교 수업만 열심히 하면 충분하다고 우기며 부모의 무능을 감추려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말로 아이들 기를 팍팍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 했을 것이다. 짜고 볼품없는 음식을 먹고 지청구를 들으며 그래도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사는 것이 옳게 사는 것이다. 라고 어쭙잖은 충고 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시간을 깔끔하고 최선을 다해 꾸려가기를 바랄뿐이다.
“너희 집 김치는 너희가 간을 맞춰”
고춧가루로 버무린 무채를 셋으로 갈라놓았다.
“엄마 제발 간 좀 줄여요”
“그래 알았어.”
이번에는 내가 지청구를 들을 차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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