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믿는 어리석음
- 미우라 아야꼬
나는
남의 눈에 매우 낙천적인 인간으로 보이는 모양이지만 실상은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남편 미우라가
집에서 백 미터 가량 떨어진 목욕탕에 갈 때에는 "여보
버스 조심하세요. 그리고 전차는 소리도 없이 휙 달려오니까
방심하지 말아요. 좌우를 잘 살펴보셔야 해요. 전차를 조심하는
동안 자동차가 또 다가오니까……."
마치 유치원 아이를 내보내는 것처럼 타이른다. 그리고는
현관까지 따라나가서 손을 흔들다 가, 내가 너무 오래 그러면
남편이 뒤만 돌아보다가 넘어질가싶어 그것이 또 걱정이
된 다.
그래서 얼른 이층으로 올라가 남편이 네거리를 무사히 건너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
그리고 나서, 30분 가량이나 지나면, 다시 또 마음이 침착을
잃게된다. 언젠가는 남편이 목 욕탕에서 나왔는데 옷을
입을 수도 없을 만큼 기운이 빠진 일이 있었다. 그 때문에
옷이라 도 무사히 입는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집에서
걱정하고 있어야 소용없다 싶어서 마침 내 마중을 나선다.
병자도 아닌데, 하면서도 혹시나 혹시나 하고 불안은 자꾸
불안을 낳는 다.
문단속에 있어서도 같은 버릇이 나온다. 우리 집 현관문은
위아래에 두 개의 고리를 꽂는데 다가 자동 자물쇠를 달아
놓았다. 그뿐 아니라 현관과 거실 사이의 문에도 자물쇠가
달렸고 의자까지 기대놓는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신앙이
모자란다고 말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편 127편)라고 씌 어 있지 않느냐면서 웃는다.
물론 나도 그런 단속으로 안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작년 봄의 일이었다. 마침 그날은 조카가 외출하고
집에 없었다. 우리는 2층에 있었 다. 나는 몸이 피곤하여
낮잠을 자고 있었고 남편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라디오
영어 강좌 를 듣고 있었다. 뭔가 아래층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서 나는 잠을 깼다.
"아래층에서 무슨 소리가 나요. 도둑인지도 몰라요."
남편의 한쪽 귀는 소리를 거의 못 듣는다. 그래서 그 소리도
못 듣고 한가하게 '조카가 돌아 온 게지'하고 말했다. 그러나
나갈 때 분명히 자동 자물쇠만은 걸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상하 게 생각되어 남편에게 나가보라고 말했다.
"괜찮다니까, 도둑놈이 들어올 리가 있어?"
그렇게 말하며 두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 뒤 아래층에서는 아 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역시
조카딸이 돌아온 것인가 보다 하면서 나는 누운 채로 귀
를 기울였다. 대낮부터 도둑이 들어오리라고는 정말로 생각하지
않았다.
2, 3분이 지났을까.
"아야코, 도둑이 들어왔군." 정말로 도둑이라면
너무나 태연한 소리였다.
"거짓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참말이야, 도둑이 들어왔어."
잠옷 바람으로 뛰어내려간 나는 정말 놀랐다. 현관의 커다란
유리문 한쪽이 돌로 동그 랗게 구멍이 뚫려 있었고 자물쇠가
열려 있었다. 남편이 아래로 내려갔을 때 도둑은 테라스
문의 자물쇠를 따고 달아날 통로를 만들어 놓으려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도둑과 남편이 마 주 쳐다본 것이다. 도둑의 뒷모습이
내 동생 같았기 때문에 말을 걸려고 했더니 도둑이 인 기척에
놀라 휙 돌아보았는데, 그 얼굴은 보기 드물게 무서운 얼굴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도 둑은 그 테라스로 해서 달아나 버렸다.
참 맥빠진 노릇이었다. 두 사람이 모두 집에 있는 대낮에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와 덜컥거리 는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몇 분 동안이나 모르고 있었다니, 참말로 미우라가 한 말대로
되 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그런데 나도 상당한 걱정꾸러기지만 실은
미우라도 오십보백보다. 그는 날마다 편지를 부친 다. 정중한
글씨로 봉투에다 상대편 이름을 쓰고 단정하게 풀을 발라
우표를 붙인다. 그런데 조금 있다 보면 편지를 손에 들고
뭔가를 부스럭거리고 있다. 안에 써넣은 상대편 이름이
틀림이 없는가, A에게 보낼 편지를 B의 봉투에 넣지 않았나,
틀린 글씨가 없는가 걱정이 된 다는 것이다. 편지를 봉투에
넣을 때는
"틀림없군! 이것은 이쪽에 들어간다! 응, 됐지, 아야코"
하고 찬찬히 확인하면서 봉한다. 그런데도 자꾸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깐동안 구멍을 들여다보고
서 있다. 어떤 신문 가지가 미우라의 그런 모습을 보고
참으로 신중한 사람이라고 감탄했다지만, 신중도 정도 문제다.
그는 갑자기 다시 또 불안해진다. 과 연 틀림이 없는가,
우표는 붙였는가 등등이 새삼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한번은 그 자리에 선 채 집배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당신도! 차라리 기차를 타고 편지를 따라가면서 무사히
배달되는가 보고 오실 걸 그랬어 요!"
하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만건 적건 사람들은 누구나 우리처럼 어리석은 걱정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로 며칠 전 신문에 실린
기사지만 졸업한 뒤 무슨 옷을 입을까가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다고 하는 여학생의 신상상담이 생각난다. 우리가
보면 이것도 하나의 우스꽝스런 헛걱정이다.
의사는 환자를 충분히 동정하면서도 환자가 자기 병에 대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틀림없이
낫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금방 죽는 것이 아닌가 하고 떠는
환자도 있다고 한다. 노인 중에는 어쩌다 음식물이 목에
걸리면 자기 목은 좁아져서 유동식 말고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완강하게 믿는 환자도 있다. 그리고 유동식 말고는
아무 것도 먹지 않다가 이내 쇠약하여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리석은 걱정을 보면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된다. 그 교훈은 인간의 모든 걱정 에도 해당이 된다. 즉
'이제부터 다음의 일은 하느님의 영토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도 사람은 얼마나 신을 무시하고 있는가.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는 나의 알량한 지혜에 만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집은 이웃집에 비교하면 반반한 가구 하나 없다.
돈도 없다. 옷은 고물상도 가져 가지 않을 것 뿐이다. 빼앗길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무턱대고 도둑을 무서워 하고 있다.
몇 겹으로 문단속을 하고 벨까지 달고 산다. 그런데 둘이
다 집에 있는 대낮에 도둑이 들어 온 것이다.
"나의 혼이여, 너에게는 여러 해 먹을 식량이 듬뿍
쌓여 있다. 그러나 안심하라. 먹어라, 마 셔라, 즐겨라!"
라고 말한 부자에게 하느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 냐."
라고 하신 누가복음 12장 20절의 이야기에 너무나 닮은
일이 아닌가.
나는 영리하다, 나는 생각이 깊다, 나는 신중하다, 나는
용의주도하다 하고 모든면에서 우리 는 자기의 힘을 믿고
또 과신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자기는 어리석다, 약한
자이다, 추한 자이다 하며 자기를 신에게 내맡겨야 했을
터인데 그것을 잊어버리고 신에게 의지하기보다 는 자기의
지혜에 의지한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이런 일의 반복이
아닐까. 신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그것은 얼마나 불완전한
신앙이냐.
우리 부부는 아침에 구약성서를 두 장읽고, 신약성서를
한 장읽고 신에게 기도하고 나서 하 루생활을 시작한다.
도대체 무엇을 읽고 무엇을 기도하였단 말인가.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서 목사님 이야기에 마음이 빨려들 것처럼 열중하여
듣는다. 그리고 감동하여 두 사람은 몇번 이고 방금 들은
설교를 서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단 말인가.
수요일에는 몸이 아프지 않는 한 기도회에 나간다. 그러나
참으로 신에게 의존하고 기도하 였던 것일까. 신앙이라는
것은 오로지 신에게 의존되는 것인데도 우리는 내가, 내가
하면서 아무 소용도 없는 자기를 내세운다. 그러고는 마침내
모든면에서 어리석은 걱정만을 되풀이 하며 산다.
여기까지 쓰다가 나는 벽에 걸려 있는 '시이나 린조오'의
말을 쳐다 보았다.
'하루의 걱정은 그날 하루로 그쳐라.'
아아, 신은 얼마나 우리의 약하고 어리석음을 잘 알고 계신가.
* sysop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10-0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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