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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벽
鄭 木 日
귀를 막고 마음으로 들어야 하는 천둥 벽 앞에 선다. 하늘을 울리고 땅과 마음을 울리는 벽이다. 공중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아닌, 땅에서 승천하는 소리다. 평생의 명상과 기다림으로 터득한 침묵의 꽃이며, 득음이다. 하늘과 땅, 만물과 우주로 이어지는 진리의 모습이 아닐까.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신비롭고 위대한 찬미요 찬송이다. 순간이 아니고 장엄한 영원의 모습이다.
거대한 천둥 벽을 본다. 몸을 던져서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오르는 생명의 영혼을 본다. 무엇인들 흐르지 않는 것이 있으랴. 온 몸으로 흐르면서 자신의 도달점을 운명처럼 찾아가고 있다. 하늘과 땅을 울리는 천둥 벽- 얼마나 많은 침묵과 간절한 말들이 모여야 천둥소리가 될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랜 시. 공을 달려와 함께 얼싸 안아야 천둥 벽이 될 수 있을까.
하늘과 땅을 울리지만 고요의 함성이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엄이지만 천지에 안개를 피우며 무지개를 드리우고 있다. 절벽은 끝남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써의 새로운 길임을 보여준다.
천둥 벽을 보기 위해 워싱톤에서 8시간 눈길을 헤치고 차를 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디안들이 백인에게 쫓겨 강을 따라 달아났다고 해서, ‘눈물의 강’이라고 불렀다는 강을 따라 천둥 벽을 만나러 간다.
차는 무수한 산을 넘어 꽁꽁 언 설경 속을 헤치며 달린다. 천둥소리를 듣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황량하고 삭막한 겨울, 내 마음에도 천둥 벽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길가에 겨울 활엽수들이 잎을 다 떨쳐버린 채 비어있다. 주뼛한 가지들이 공중으로 뻗어나가 섬세하다. 나무들은 눈을 감고 묵상에 잠겨있지만 신경이 무척 예민해 보인다. 산 속에 띄엄띄엄 한 두 채 집들이 눈을 둘러쓰고 고립돼 있다. 산속의 외딴 집들과 하늘 위로 펼친 나무들의 잔가지들과 눈인사를 하면서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이 겨울에 왜 8시간의 설원을 지나. 천둥 벽을 만나러 가는가. 자동차로 부산에서 신의주의 거리만큼 달려서 가는가. 강가 눈밭에 오리 떼들이 엎드려 있다. 최대한 속도를 줄여서 가는 8인승 밴 차. 눈 내리는 강가 나무들의 모습은 성자처럼 순결해 보인다. 내가 만나고 싶은 천둥 벽을 사람들은 ‘나이아가라’라고 부른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 오대호(湖) 중 몬타리호와 이리호를 잇는 나이아가라강에 있다. 강 가운데에 있는 고트섬(미국령)을 경계로 캐나다폭포 (높이 54m. 폭 610m) 미국폭포 (높이 56m. 폭 335m)로 나뉜다. 밤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부터 나이아가라 앞에 선다. 겨울 아침이어선지 나이아가라를 찾는 관광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이아가라는 빙벽이 돼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벙어리매미가 아니다. 거대한 천둥 벽이다. 폭포수는 수만리를 달려와 한데 얼싸안은 그리움의 포옹이다. 낙하가 아니라, 깨달음의 승천이고, 꽃이다. 천둥소리는 수만리를 달려온 물방울들의 말, 마지막 깨달음의 탄성이다. 말의 꽃무리, 말의 승천이다. 천둥소리 끝에 피어나는 무지개는 물의 영혼이다.
나는 칼날 같은 바람 속에 서서 겨울 나이아가라, 천둥 벽을 바라본다. 화엄의 벽이다. 물들은 수만리를 달려와 절벽에 뛰어내려 최후를 장식한다. 한 방울씩의 물들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시내가 합해져서 강물이 되어 수만리를 흐르다가 폭포를 만나게 된다.
깨달음이란 폭포와 같은 게 아닐까. 몸과 마음, 순간과 영원을 다 던져버린 게 아닐까. 마지막 순교의 모습이 아닐까. 사라지고자 뛰어내리지만 사라지지 않는 물기둥! 순간의 물거품이고자 했지만, 영원의 무지개를 본다. 침묵의 끝인가 여겼는데, 침묵의 웅대한 저장소다. 천둥 벽인 줄 알았는데, 고요의 벽, 영원의 벽이다.
사람들은 나이아가라를 만나러 간다. 폭포의 장쾌함과 시원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서 갈 테지만, 가슴 속에 꿈꾸던 폭포를 보러 가기도 한다. 나는 언제 쯤 가슴 속에 하나의 폭포를 만들 수 있을까. 물방울들을 모아 마음속에 강물을 만들고 스스로 깊어져 갈 것인가. 아집과 집착에서 벗어나 폭포에서 자신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천둥 벽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답답한 가슴이 뚫리고 무지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마다 삶이란 물줄기가 흐르고, 폭포수를 만들기도 한다. 물이 움직인다. 강이 소리친다. 생명을 탄생시키고 기른 어머니! 수만리를 흘러온 물줄기가 마지막 선에 도달한다. 절벽은 마지막 자리이자 깨달음의 자리다. 낮은 곳으로 흐르기만 하면 되던 길이 사라지고 벼랑 끝에 선다. 물길의 경련, 물길의 엄숙, 물길의 순교를 본다. 생명의 일직선, 진리의 일직선을 본다. 물길은 떨어져 사라지지만 거대하고 영원한 천둥 벽이 된다.
영원은 순간의 연속이 아닌가. 물길은 끊어지지 않고, 뒤이어 흘러온 물길로 영원을 만들어 간다. 천둥 벽을 보고서야 한 순간이 한 영원임을 느낀다. 천둥 벽은 수만리를 달려온 물의 함성, 생명의 소리, 영원의 음성이다. 천둥 벽은 영원의 모습과 소리임을 비로소 안다.
아, 나는 어떻게 천둥 벽을 가질 것인가. 천둥 벽을 본 뒤로 가슴속에서 쿵쿵쿵 천둥소리가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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