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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의 끈
吳 岐 煥
준석이 놈이 은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온다. ‘2004년도 보육시설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수상한 것이다.
준석이는 네 살짜리 우리 집 막내 손자다. 일년 전부터 아침 아홉시가 좀 지나면 어린이 집으로 가고 오후 여섯 시가 되면 돌아온다. 무려 여덟 시간이나 보육시설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아비 어미 다 직장을 나가니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아침이면 집안이 전쟁터가 된다. 애비 어미가 나간 자리를 준석이 놈이 또 휘저어 놓는다. 놈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어린이 집 가기를 막무가내로 거부한다. 어미는 이미 출근하고 없는 빈 방에서 제 어미가 벗어 놓고 간 셔츠를 만지작거리면서 울고불고 한다.“셔츠를 왜 만지냐”고 물으면 “엄마 옷이 잖어 엄마 만지고 싶어”하고 또 운다. 그렇다고 어찌 하겠는가. 결국은 제 어미 옷을 가방에 넣어 주고 달래면 그제야 눈물콧물을 흘리면서 떠밀려 간다. 준석이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어미 옷은 여덟 시간이 지나고 밤이 오면 다시 만날 수 있는 끈이 되어 희망을 품게 해 준다.
요즈음은 어린이 집 생활이 조금은 익숙해 졌음인가, 아침에도 “안녕히 다녀 오겠십니다” 라고 인사까지 하는 여유를 보인다. 저녁이면 어미 무릎에서 골무 같은 입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어미 먼저 옷을 안고 골아 떨어지고 만다. 어미 손을 꼭 잡고.
준석이는 놓지 않으려는 끈을, 어미는 놓을 수 없는 끈을 쥐고 잔다. 모자는 잠잘 때도 서로의 끈을 쥐고 잔다.
준석이놈 목에 걸려 있는 은메달을 만지면서 생각해 본다. 놈이 그린 그림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그 그림에다 제목을 붙여본다. ‘본능의 끈’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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