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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아카데미(2007-01-12 18:24:17, Hit : 1413, Vote : 165
 영원

          
                             영 원 / 鄭 木 日

나는 영원이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 영원이 무엇인지 모른다.
영원이란 말처럼 막막하고 두렵고 그리운 개념도 없다. 언제나 꽉 차 있으면서도 공허하다. 실존의 세계인 듯하면서도 허구일 듯싶고 종잡을 수 없다. 추상. 관념의 세계인 듯하면서 구상. 사실의 세계인 듯하니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동경과 신비를 안겨준다. 지식은 일시적인 충만을 주지만 조금만 지나면 목이 마른다.

영원이 과연 존재하는지 부재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영원이라는 말은 상상력이 피워 올린 극한적 추상 명사다. 유한적 존재인 인간이 영원을 열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영원을 설정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다. 답답증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물리적으론 한시적인 삶을 살뿐인 인간이 영원을 수용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영원을 수용하는 방식을 찾은 것이 종교인 셈이다.

영원한 사랑과 우정을 얘기하는 젊은이들도 나이가 들게 되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생명체이건 무 생명체이건 시간의 침식에 견뎌낼 수 있는 건 없다.
인간이 ‘영원의 불망비(不忘碑)로 새긴 금석문(金石文)도 시간의 침식에 견디지 못해 점점 원형을 상실해 간다. 돌로 된 비도 비바람에 마멸돼 가고 금속도 녹슬어 사라진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 중에서 자장 오래 견딜 수 있는 것은 흙으로 빚은 토기와 도자기다. 흙엔 생명성과 영원성이 있는가 보다.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가끔 영원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영원을 생각하면 눈물이 돈다. 하늘이 너무 맑고 무한해서인지 모른다. 영원은 도무지 닿을 수 없는 상상밖에 있다. 그 말은  듣기만 해도 너무 아득하여 한 천년쯤으로 좁혀졌으면 좋겠다. 손을 내밀면 닿을 듯한 세계였으면 싶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는 별이 아니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는 거리에 존재하는 별이었으면 싶다.

영원은 시간적 공간적 개념이 합쳐진 데다 존재적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인간은 영원이라는  통로가 있기 때문에 자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영원은 인간의 한시성 일회성의 삶을 보완해 주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자유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유일한 돌파구이다. 인간이 모든 능력을 기울여 추구하는 목표점에 영원이 자리 잡고 있다. 영원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동물의 삶과 별반 다를 게 무엇인가.

나는 영원을 모르면서 영원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말도 되지 않는 얘기지만, 영원의 얼굴을 보고 싶고 숨결을 느끼고 싶어 한다.
문화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 인류의 문화를 집대성한 곳에 가보면, 한결같이 영원의 하늘 한 모서리가 비쳐 보이는 듯하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영원 만들기에 열중하면서 죽음을 맞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무한과 영원은 동의어인가. 무한과 유한, 영원과 순간은 반의어적 개념만은 아닐 것이다. 한 알의 모래알 속에 내재돼 있는 영원을 본다. 이슬방울 하나에서 영원의 얼굴을 본다. 바람과 구름을 통해서도 영원을 느낀다. 인간이 태어나고 떠나야 할 곳이 영원이기에,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루살이의 일생이 ‘하루’라면 단지 24시간일 뿐일까. 그 삶엔 영원이 없는 것일까. 인간도 하루하루를 살뿐이다. ‘하루살이의 일생’에서 ‘하루살이’를 없애면 ‘하루’는 영원하다. 영원은 나의 것이 아니고, 너의 것도 아니다. 소유 개념이 아니다. ‘나’를 배제시켜야 비로소 ‘영원’이 다가옴을 느낀다. 내가 무상무념으로 가을 하늘을 바라볼 때, 무심결에 영원이 열리는 걸 느끼곤 했다.

이기. 집착. 한정. 속단의 세계가 아니다. 무한 자유이고 없으며 있는 것이다. 시. 공간과 생사(生死)도 없는 세계다. 그리움의 원천이며 모든 생명체의 영혼의 고향이다.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영원을 느끼는 유일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시. 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힘이 있다.

나는 영원의 일부라고 믿고 싶다. 나는 영원에서 와서 영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안온해진다. 무한을 생각하면 우리 삶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찰나 속에 영원을 담아두고 싶다.
나는 영원 속으로 사라져 가고 싶다.




한여름 날의 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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