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강달강
유해자
“알강달강 알강달강 서울 가서 밤을 사다 곳간에다 감췄더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민요 소리에 다림질하던 손길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 구전되어 오는 민요를 채집하여 들려주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MBC 라디오의 고정 프로그램이다. 할머니들이 손자․손녀가 귀여워 어르며 부르던 노래라고 소개를 한다. 현장감이 느껴지는 노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반가움과 동시에 가슴이 아릿 저려온다.
일손을 놓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창 밖을 내다본다. 오후가 되면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으로 저녁의 풍경은 더없이 순하고 고요하다. 한 무리의 참새 떼들이 뜰의 나뭇가지 위에서 포르르 포르르 옮겨 다닐 때마다 가지 위의 눈꽃이 사르르 떨어진다.
알강달강 알강달강 한양 가서 밤을 사다 곳간에다 감췄더니 머리 검은 새앙쥐가 오민 가민 다 까먹고 다만 한 톨 남았는데 가마솥에 삶아 내어 조랭이로 건져서 껍데기는 에미 주고 속껍질은 애비 주고 알맹이는 니캉 내캉 다 먹자.
“니캉 내캉 다 먹자.”라는 끝 구절에서는 언제나 나를 와락 안으시던 할머니. 언제부터 나는 그 노랫소리를 잊고 있었을까. 아득한 곳으로 사라졌던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눈 내린 이 저녁 나를 30년 전으로 돌려놓는다.
일찍 저녁상을 물린 할머니는 예닐곱 살 된 손녀의 손을 잡고 밤마실을 다니셨다. 그 날의 사정에 따라 장소를 옮기기도 하며 저녁마다 동네 안노인들이 네댓 분씩 모였다. 모임 장소로 정해진 집은 사랑방에 군불을 넉넉히 지피고 화로에 불씨를 수북이 담았다. 모인 분들이 화롯가에 빙 둘러앉으면 호롱불의 심지를 돋우고 글을 아는 분이 고저장단을 맞추어 이야기책을 읽기 시작한다. 글 잃는 소리를 경청(傾聽)하는 사람들은 가끔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되묻기도 하며 이야기 속으로 빨려든다.
또래가 없어 윗목에서 혼자 곰질대던 내가 할머니를 귀찮게 할 때쯤이면 화롯불이 사그라져 갔고, 모였던 분들은 뒷얘기의 궁금증을 누르며 내일 밤을 약속했다.
내가 먼저 발딱 일어나 문풍지 달린 방문을 열면 기척도 없이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댓돌 위에 벗어 놓은 내 신발 속에도 들어와 있는 눈송이를 털어 내고, 뽀얀 숫눈 위에 조근 조근 발자국을 찍으며 할머니와 돌아오던 겨울밤.
《심청전》,《장화홍련전》,《숙영낭자전》등 누런 빛깔의 작은 소설책을 들고 할머니를 따라다니던 겨울밤들이 기억 속에 늘 포근하게 남아 있다.
할머니는 아들 딸 모두 8남매를 낳으셨다. 그러나 막내이신 아버지와 위의 고모만이 생존하셨다. 그 시절 한둘의 자식은 잃기가 십상이었다지만 장성하여 장가를 든 아들까지도 먼저 떠나는 것을 보며 할머니가 당한 그 참척(慘慽)의 아픔이 어떠했을까. 더욱이 마흔을 갓 넘어 남편마저 보내고 홀로 키운 자식도 있었으니 그 한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어느 해 가을, 마을 잔치가 열려 동네의 어른․아이 모두 흥겹게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일찍이 남편과 여섯의 자식을 가슴에 묻은 할머니에게는 흥겨운 분위기가 오히려 고통이었으리라.
늦게 막걸리를 드신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이 가슴에 화가 있어.” “내 이 가슴에 화 덩어리가 들어 있어.” 하시며 주먹으로 당신 가슴을 치셨다.
술기운이 오른 할머니의 얼굴과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 빛 때문에 하늘과 땅이 온통 벌겋게 보였을 뿐, 난 화[恨]가 무엇인지 모르는 열 살 바기 손녀였다.
내리 사랑이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하나 뿐인 아들인 아버지에겐 드러내는 잔정 표현이 없으신 분이었다. 그러나 맏손녀인 내게 쏟는 무조건 사랑은 유별스러웠다.
한낮의 더위가 물러서는 해거름, 철길 건너 산등성이 밭에 옥수수를 꺾으러 갈 때면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까지 나를 찾으신다. 밭 가장자리에 칡 이파리를 깔아 나를 앉게 하고 할머니는 일을 하시며 많은 얘기를 하신다. 그러나 기적의 여운을 남기고 굴속으로 들어가는 기차와, 마을에서 피어나는 저녁연기와, 봉긋봉긋한 푸른 산봉우리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내게 할머니의 얘기는 귓가를 스칠 뿐 난 할머니의 얘기 동무가 되어 주지를 못했다.
할머니는 대단한 이야기꾼이셨다. 알에서 나온 박혁거세의 신화며, <지성이와 감천이>의 전래동화며, 중국의 요(堯)․순(舜)임금 이야기와 수수께끼 놀이까지, 밤이 긴 겨우내 할머니가 풀어내는 이야기 타래는 끝이 없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냉수를 한 사발씩 들이켜시며 이제 몇 시쯤 되었느냐고 연신 물으시던 할머니. 그 모든 이야기들은 삶의 여정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당신의 독백이 아니었을까.
언제부터인가 할머니는 차츰 청력을 잃어 갔고 내게 ‘통역관’이란 별명을 붙이셨다.
읍내에 머물면서 학교를 다니게 되어 주말이 되어야 돌아오는 손녀를 기다리느라 토요일이면 아침부터 대문 앞에 나와 앉아 계셨다. 책가방을 받으시고 얼른 방으로 밀어 넣으시면 ‘궤’에서 주전부리 감을 꺼내 놓으신다. 이웃에서 가져온 알사탕이며 비스킷을 당신 입에 넣지 않고 모아 두신 것이다. 군것질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먹지 않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면 다른 사람 들어오기 전에 어서 먹으라고 채근을 하신다. 그리고는 일주일 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것저것 물어 오신다. “요즘 아비 월급이 얼마라 하더냐?” “쌀 한 가마니에 얼마나 가느냐?” “대통령이 정치를 잘 하느냐?”까지. 들리는 소리를 잃으셨기에 모든 것이 더 궁금하고 답답하셨으리라. 그러나 난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 라고 할머니의 귀에 대고 악을 쓰듯 쏘아붙이기 일쑤였다.
삶은 자신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제 길로 흘러간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어, 한 여인으로서의 할머니 일생을 생각한다. 때로 가슴 깊숙이에서 토해내던 한숨의 길이와, 외로움의 무게와, 그리움의 깊이가 내게 쏟은 사랑이었으리라.
이승에서 조손(祖孫)이라는 인연으로 묶여 16년을 함께 살다가 83세를 일기로 할머니 가신지 25년이 넘었다.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어린 내게 24절기를 외우게 하시곤 “총명타!” “총명타!” 하시던 그 사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세우는 힘이 되었다.
“조선에 둘도 없는 내 강아지”라던 할머니의 손녀가 어느새 불혹이 넘어 두 아이의 어미 노릇을 하고 있다. 이제 나보다 더 키가 커버린 아이들을 자랑스럽게 보여 드릴 수 있다면… 할머니는 그 아이들을 위해 다시 알강달강을 부르시리라.
“알강달강 알강달강…” 어린 나를 앉혀 놓고 부르시던 할머니의 노랫소리! 잊고 있던 그 노랫소리가 아리게 귓전을 맴도는 저녁, 나는 눈 내린 골목길을 망연히 내다보고 서 있다.
<수필과 비평, 2000년 3.4월호. 2000년을 대표하는 문제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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