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의 신비
鄭 木 日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요이다. 누가 한 사람 부르기만 하면 어느새 모두가 부르게 되는 이 노래는 겨레의 피 속으로 전해져 온 게 분명하다.
아직 ‘아리랑’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한국의 상징어로 굳어진 ‘아리랑’,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부르던 ‘아리랑’의 어원에 대한 문헌의 기록이 없다. 몇 가지 학설이 있기는 하나, 정설로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다.
‘한강’을 ‘아리수’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아리’는 ‘큰’이란 말이다. ‘랑’은 ‘님’을 뜻하는 말이니, ‘큰 님’ 즉 ‘하늘님’이 된다는 설이다. ‘아랑설’도 있다. 옛날 밀양사또의 딸 아랑이 통인(通引)의 요구에 항거하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일을 애도한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란 설이다. 또 김해의 향토사학자 허명철이란 분은 아리랑의 원어는 ‘알이랑’이며 우주 창조자 ‘한알님(하늘님)’을 뜻하며, 아리랑은 원래의 말이 ‘알이랑’인데 순음화 현상에 의해 ‘아리랑’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리랑’이란 무슨 뜻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소리만은 한없이 정답고 포근하다. 가슴속으로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공명의 여음이 있다. 그리운 이가 손짓하며 부르는 소리 같고,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남몰래 산에 가서 불러보았을 때, 알았다는 듯이 은은히 들려오는 메아리 같다. 혼자서 입 밖으로 내보면 옆의 사람이 받아주고, 마침내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이다. 공감과 공명을 일으키는 신비음(神秘音)을 지니고 있다.
‘아’-‘리’-‘랑’의 세 음소(音素)는 기막힌 음의 조화를 이룬다. 음감(音感)이 밝고 소리내기에 좋으며 모음 ‘ㅏ+ㅣ+ㅏ’는 장(長)-단(短)-장(長), 강(强)-약(弱)-강(强)의 리듬이 되고 대조와 조화의 완벽한 배합을 보인다. 가장 자연스런 운률성을 드러낸다. 성대를 울리는 유성음(流聲音)으로 돼 있으며 구슬을 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뜻은 알지 못하나 우리말의 보배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자꾸만 부르고 싶은 충동이 들며, 가슴과 가슴으로 끝없이 울려나가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서 자연스레 피어난 소리의 꽃이다.
아리랑엔 우리나라 산수(山水)의 모습과 그 선(線)이 있고, 체질 속에 녹아있는 가락이 있으며, 희비애락이 배여 있다.
‘아리랑’은 누군가 부르는 소리일 듯하다.
혼자가 아니다. ‘랑’이란 받침 없는 체언에 붙어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동등 자격으로 열거할 때 쓰이는 말이다. ‘랑’은 ‘-하고’, ‘-과’, ‘-와’ 등으로 ‘함께’인 것이다.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하는 마음이다. 사랑의 가슴이고 멈춤이 없는 영원의 마음이다. 언젠가는 만나서 껴안고야마는 해후와 포옹의 세계라 할 것이다.
‘아리랑’은 흥과 신명의 세계이다.
가락에 맞춰 춤을 춰보면 다른 민족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우리만의 춤사위와 흥을 연출해 낸다. 어깨가 들썩거리고 허리선이 흔들리며 신명이 뿜어 오른다. 이럴 때 나와 너는 우리가 되어 만난다. 막혔던 가슴이 열리고 억장이 막히던 일들도 나눔으로써 풀어진다. 맺힌 것을 풀고 억울한 일을 달래는 말이다.
‘아리랑’은 어머니의 손길처럼 달래주고 위로해 주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아리랑’은 ‘아리다’는 말과 흡사하고, ‘쓰리랑’은 ‘쓰리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아리다’는 ‘쑤시는 듯이 아프다’는 말이며, ‘쓰리다’는 ‘뱃속이 비어 몹시 허기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통과 배고픔을 하소연하는 것일까. 어찌 되었건 함께 나눔으로써 고통도 배고픔도 참을 수 있고, 힘이 나고 용기가 나게 만든다. 진도아리랑의 ‘아리아리-’ 라는 대목에 이르러선 뼈마디가 아리는 듯한 기분이 들며, ‘쓰리쓰리-’라는 대목에선 허기져서 창자가 쓰린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정작 이 대목에선 오히려 신명을 내고 있다. 끝까지 참아내면 희망이 있겠지, 이런 마음에서 투지와 용기가 솟구치고 있다. 고통을 함께 넘기고 배고픔을 함께 참아내는 지혜와 용기를 보여주려는 것일까. 듣고 있으면 편안해 진다. 표정이 밝아지고 걱정이 사라진다.
아리랑이 민족의 상징어가 되기까진 음(音)의 꽃으로서만이 아닌 깊은 뜻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다. 민족의 가슴을 달래주고 광명과 신명으로 채워주는 ‘님’이나 ‘꿈’의 세계인가. 아마도 그리움과 동경의 세계이리라. ‘아리랑’은 우리 민족이 추구하는 이상향(理想鄕)인가, 아니면 신앙의 세계인가, 축원의 소리인가.
아리랑은 알려진 것으로만 50여 종에 3천여 수가 확인되고 있다. ‘강원도 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 아리랑’ ‘진도 아리랑’ ‘경기도 아리랑’이 대표적인 것이다.
아리랑엔 좀 거슬리는 구절도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가지 말라는 간절한 기구를 담고 있지만, 원망을 나타내고 있다. 원망이되 포악하진 않다. 발병이 나는 정도이니, 어쩌면 멀리 가지 못하고 돌아설지 모른다는 미련을 두고 있다. 그러나 떠나는 이에게 축복을 보내는 포용력만은 보이지 않는다. 나를 버리고 가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강조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민요조를 계승한 김소월 시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진달래꽃’에선 원망 대신, 축복을 담았다. 억지로 붙잡으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고 임을 고이 보내드리고 있다. 이런 감정의 승화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서는 안 된다, 그러면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는 아리랑의 마음이 훨씬 인간적이어서 서민의 가슴에 와 닿은 것이 아닐까. 그냥 저주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 하여야 한다는 것을 토로한다.
‘아리랑 고개’란 또 무슨 뜻일까. 아리랑엔 알 수 없는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 ‘아리랑’ ‘고개’ ‘넘어간다’ ‘가시는 임’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온 겨레가 뜻도 모른 채 즐거우나 슬플 때 함께 부르곤 하였으니, 여기엔 필시 신비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을 바라는 겨레말의 꽃일 것이고, 함께 불러 한 마음이 되는 희망과 축복의 말일 것이다. 우리는 풀리지 않는 것에서 신비와 영원을 발견한다. 속을 다 드러낸 것에선 한계가 있을 뿐이다.
아리랑은 한과 서러움과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써 흥과 살맛이 나게 하고, 마음을 환희와 광명으로 차오르게 만들며, 우리를 영원의 하늘과 닿게 해주는 신비의 기원어(祈願語)이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축복의 말, 영원의 말, 기원의 말, 신비의 말이다. 그런 말로써 겨레의 꿈과 이상과 행복의 노래가 된 것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피 속에서 물결쳐 오는 흥얼거림으로 노래 불러보아야 한다.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아리랑-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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