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 정경
거금을 주고 개회식 입장권을 샀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내 생애에 다시 볼 수 없는 국제경기이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모처럼 화해 무드로 가고 있는 오늘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개회식만은 봐두어야 할 것 같았다. 이번 아시아드 경기의 주제인 ‘아름다운 만남’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 한반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궁금해서였다．
팡파르는 이미 전날부터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 357명의 북한 응원단을 태운 만경봉호가 다대포에 입항해 있고,밤에는 해운대와 남천동을 하나로 잇는 광안대교의 개통식이 열려 화려한 불꽃놀이가 광안리 밤하늘을 가득히 메웠다. 오늘아침에는 천둥번개까지도 한 차례 지나갔다. 한민족이 하나로 뭉쳐지는 잔치에 하늘도 끼려들고 싶었나 보다.
내 자리를 찾아갔을 때 이미 좌석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메워져 있었다. 북한 응원단은 진달래 빛 한복으로 단장하고 있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관중의 관심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앞사람의 카메라 파인더가 줄곧 그쪽을 향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50여년을 한꺼번에 녹일 수 있는 것이 스포츠밖에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주최측에서도 그것을 의식한 듯 주걱과 손전등까지 소도구로 갖추어 주었다. 소리로,빛으로 반백년 막힌 마음을 마음껏 두드려 깨부수라는 뜻일 게다.
이윽고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곡과 함께 선수 입장이 시작되었다. 네팔을 시작으로 가나다 순으로 이어졌다. 주최측이 배부한 개회식 안내서에 의하면 남한과 북한 선수단의 입장은 따로따로였다. 북한은 29번째,우리는 마지막 44번째였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만남’이란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일본이 지나갔고,바로 중국이 지나갔다. 아니야. 이것은 나의 착각인지 모른다. 워낙 주걱 두드리는 소리,박수 소리,음악 소리로 시끄러웠으니까.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주최국은 항상 맨 마지막이다. 아리랑과 함께 나타나는 것은 태극기가 아닌 한반도기가 아닌가. 남북한 동시 입장이었다.
그 감격,그래 이것은 오랫동안 남한이 공들여 벌여놓은 잔치에 참석 여부마저 불투명하다가 막바지에 손님으로 와서는 안 되는 잔치였어. 당당히 함께 주인이 되어야 하는 잔치였다. 형제가 너무 오랫동안 척져 남보다 더 험악하게 살다가 부모님의 회갑연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해서 극적으로 형제의 뜨거운 피를 확인한 잔치인 것이다.
가장 많은 숫자의 선수단이 내 앞을 지나고 있었다. 곧 이어 한라산 불꽃과 백두산 불꽃이 합쳐진 성화가 마지막 주자에게 주어졌다. 부산의 하형주와 북한의 계순희였다. 식후행사 역시 남방문화와 북방문화가 만나는 가야국 문화의 장이었다. 성화에 37억 아시아의 불이 다시 합쳐지면서 피날레를 장식했다. 남북한 화해가 곧 아시아가 하나로 된다는 의미였으리라.
정경(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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