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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아카데미(2006-11-01 09:48:07, Hit : 1634, Vote : 187
 공자의 말

                               君子는 懷德하고 小人은 懷土하며,

                                  

                                   君子는 懷刑하고 小人은 懷惠하니라. (里仁 十一)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돈을 생각하며

                                

                                  군자는 법을 두려워하고  소인은 은혜 받기를 생각한다.





공자의 말을 들으면 옳구나, 느끼면서 너무 모범적이고 안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따분하게 생각될 때가 있다. 군자의 삶을 원하면서도 군자가 되기는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는 걸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군자를 바라보는 소인으로 살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돈을 생각하며, 군자는 법을 두려워하고, 소인은 은혜 받기를 생각한다’는 말에서, 어디로 보나 나는 소인일 수밖에 없다는 걸 느낀다.
공자의 말은 대단히 도덕적이다. 어느 쪽으로도 휩쓸리지 않고 중용을 택한다. 참신하다기보다는 보편성과 안정성을 추구한다. 그의 말은 평범함 속에 오묘함이 있다.


예수의 말은 신성과 계시가 있어서 가슴 설레는 감동과 환희를 주지만, 공자의 말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치와 지혜를 속삭여주는 인간다움이 있다. 예수는 사후의 세계를 얘기하고 ‘하늘 나라’를 알려주지만, 공자는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과 이치를 제시한다. 공자는 초인적 인간이 되려 하지 않았다. 평범을 사랑했으며 항상 떳떳함을 지니고 살고자 한 우리의 이웃이었다. 논어의 얘기들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현실의 얘기이며 가슴에 새겨 실천에 옮겨야 할 덕목들이다. 삶 속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이고, 뻔히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싫어지기까지 하는 성가신 말인 것이다.

나는 공자의 말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 이유는 ‘논어(論語)’를 읽지 않아 오묘한 세계를 모르는 데 있을 것이며, 유교 문화권에 살려면 공자의 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데서 오는 반발일지 모른다. 어디 가도 공자의 말이 늘려 있어서 공자의 영향권에 사는 듯 느껴진다. 말이건 글이건 으레 ‘공자 가라사대’ ‘공자 왈’로 시작되는 인용구가 들어가야 신뢰를 얻게 된다.

예수, 마호메트, 공자는 기막힌 얘기꾼들이다. 그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살다 갔지만, 남긴 말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인류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을 준다. 그냥 자신만의 삶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써의 말이 아니고, 인류의 삶을 구제하고 영원으로 이끄는 불멸의 말이다. 말의 꽃이며 보배이기 때문에 ‘경전(經典)’이 돼 전해진다. 사라지는 바람의 말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로써 광명이 되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고 세상이 바뀌어졌다고 하더라도 이미 수천 년 전에 살다간 성현들의 말은 변색되지 않았다. 오늘도 변함 없이 삶의 이치와 가르침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괴이(怪異), 폭력(暴力), 난동(亂動), 귀신(鬼神) 등에 대해서는 별로 말씀하시지 않았다.
子不語槐力亂神이러시다. (述而 二十)

공자는 합리주의자였다. 그의 철학은 이성과 문물제도 그리고 인간성의 각성과 인문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자는 괴이, 폭력, 난동을 싫어했고 미신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비인간적인 신령이나 요괴를 믿는 것을 억제하고자 했다. 어느 날 제자 계로(季路)가 공자에게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물었다.
"사람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감히 묻겠습니다. 죽음은 어떻습니까?"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느냐?"
공자의 인본주의 정신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신(神)을 믿지 않은 것인가.

그는 늘 하늘에 기도하며 살아온 종교가이기도 했다. 그가 의지한 것은 천명사상(天名思想)이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공자의 천명사상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예수와 공자의 말씀은 하늘을 우러러 양심에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살도록 인간을 교화시키고 영혼을 하늘로 이끄는 구원의 길이 아닐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지만, 그 역설의 기저엔 공자 말씀의 위대함과 위력이 깔려있다. 공자의 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삶의 순리와 법도를 밝히는 지혜의 꽃이다. 보편성과 합리성으로 중용의 도(道)를 말하고, 덕(德)과 인(仁)으로 사람답게 사는 법을 제시해 준다.            



                                                                                              정 목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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