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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김치냉장고
- 문영숙
김장철이다. 사철 중에서 겨울을 빼고는 김치라 하던 것을 왜 김장이라 했을까. 물론 보관하여 둔다는 한자적 의미의 장藏자를 써서 김치를 해서 둔다는 뜻일 게다. 우리네 전통음식의 기본이 되는 된장이나 고추장처럼 김장의 장이란 글자도 같은 의미일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각 가정마다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김장철이 아니어도 항시 김장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김장의 양도 기껏 10포기 내외가 고작이다. 먹거리가 풍성해진 탓도 있겠지만 하우스 재배로 인해 사철 신선한 채소를 구할 수 있으니 굳이 김치를 많이 담글 필요가 없어진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치냉장고가 적정한 온도에서 발효된 김치를 장기간 보관한다 해도 김장철에 맞춰 기른 배추로 담근 김장이라야 제대로 된 김치 맛이 난다. 흔히 가을무는 인삼에 비견되지 않는가.
우리 집은 마당 한 켠에 김칫독이 묻혀있다. 추운 겨울이면 식사 때마다 김치를 꺼내러 마당에 나온다. 그때마다 손이 시렵고 귀찮아서 몇 년 전부터 김치냉장고를 살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 올해도 결국 김칫독을 땅에 묻었다. 땅속에서 제대로 숙성된 김치의 톡 쏘는 맛을 즐기기 위해서다.
올해는 배추가 풍년이어서 값이 싸기에 묻혀있는 김칫독마다 가득 채우고도 남아 속을 넣으러 온 친구들 손에 넉넉하게 싸 보냈다. 이제 개나리 진달래가 움틀 즈음이면 김장독에서 발효된 톡쏘는 김장김치의 맛이 그리워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김치통을 들고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보물이나 되는 양 두어 쪽 씩 나누어 주며 주는 재미에 쏠쏠한 기쁨을 맛본다.
어느 해는 다음해 5월까지 신 김치의 맛을 즐기기도 한다. 김치찌개도 숙성된 김치라야 제 맛이 난다. 신김치에 돼지고기를 넣고 대파를 어슷어슷 썰어 밀가루에 버무린 김치전을 붙여놓으면 정을 나눌 넉넉한 친구들을 부르고 싶어진다. 신김치로 만든 김치만두도 일품이다.
그러나 이런 행복도 시한부이다. 우리동네도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아파트가 들어서면 그때는 우리 집도 김치냉장고를 살 수밖에 없다.
해마다 봄에 김치맛을 보려고 김장을 해주러 오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벌써부터 아파트가 들어서면 어디서 김장독에 묻은 김치맛을 보겠느냐면서 안타까워한다.
우리집 마당에 묻힌 김장독은 시대에 뒤쳐지긴 했지만 농익은 입맛과 푸근한 인생의 정도 함께 발효시킨다. 이 보물은 내게 육체적으로 조금은 힘들게 하지만 그보다 더 값진 마음의 풍요를 선물하는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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