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맛
오늘은 오일마다 서는 장날이다. 봄 한 가운데 장날 한 낮 날씨는 거울처럼 맑다. 장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열리는 장바닥은 각 지역에서 몰려드는 장돌뱅이들의 자리 차지에 우왕좌왕 분주하다. 즉석 김구이 좌판, 각종 생선에 해물 좌판, 아기자기 앙증한 꽃 화분 좌판, 녹차 호떡을 곁들인 붕어빵 찐빵 좌판, 장꾼들이 쉬어 가는 국수 말이 좌판, 장날 각양각색 좌판들은 볼거리나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주로 여인들이 차지하는 도로변 인도에 조르라한 땅바닥 좌판에는 각종 밑반찬부터 텃밭에서 일군 푸성귀나 봄나물이 그릇마다 수북수북 담겨있다. 고추장 물을 발갛게 먹은 오이장아찌, 참외장아찌, 무장아찌, 더덕장아찌, 무말랭이 무침, 깻잎 무침, 삭힌 고추 무침, 고추씨 물을 들인 무짠지 가지 수도 다양한 밑반찬이나 풋나물들은 눈으로 먹어도 입안에 단침이 가득 고인다.
황새냉이, 씀바귀, 땅 두릅, 산 두릅, 달래, 쑥, 고사리, 부추, 실파를 일일이 다듬는 어르신의 손등에는 세월의 테가 마디마다 두텁게 서려있다. 두드러진 핏줄에 거뭇거뭇한 검버섯에 앙상하게 야왼 손, 뵐수록 죄송한 마음 그저 안쓰럽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냄새 질펀한 고향 인심 흥건한 장날 장바닥 구경은 고향의 정물과 사랑방 향수를 옹색한 마음그릇에 넘치도록 부어준다.
장날이면 매번 만나지는 어르신은 관절염을 앓으시는지 항상 한 쪽 다리를 쭉 뻗고 앉아 계신다. 안쓰러운 어르신을 뵐 때마다 신경통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김장철이면 팔뚝처럼 날씬한 무로 짠지도 담으시고 여러 가지 장아찌로 밑반찬을 준비하시는 어머니, 입맛 잃는 봄이면 이 맛 저 맛 맛깔스러운 무침으로 밥상에 올리시고 도시락 반찬으로도 싸주셨다.
장날, 장 구경을 나가면 뵐 때마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이웃 같은 어르신은 앞니가 몇 개뿐이다. 발간 잇몸을 들어내는 웃음만큼 인심도 후하신 어르신께 고추장물이 발갛게 든 무장아찌와 마늘종 장아찌와 노리끼리한 짠지도 샀다. 입 안 가득 단침이 고이는 어머니 손맛을 추억하고 싶어서…,
2008. 04. 10.
白蓮 원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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