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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나는 새
吳 岐 煥
겨울새를 보러 집을 나섰다. 흐린 하늘이 금세 눈을 뿌릴 듯싶다. 금강하굿둑에서 겨울새를 기다리는 차창에 눈 아닌 빗물이 흐르고 겨울새는 보이지 않는다. 둑을 걸으면서 기다려도 보이지 않았다. 금강하류가 바다와 만나는 광활한 물길 저 너머 군산항이 물안개에 잠겨있다.
차를 돌려 만경 평야를 달렸다. 추수한 곡식을 강제로 공출 받아 군산항으로 싣고 가는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아온 만경평야, 한없는 지평선은 파란색이었다. 파릇파릇 아기보리 싹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어 검붉은 땅을 파랗게 칠해 놓았다. 그 위를 까마귀 떼들이 아기보리 싹을 뜯고 있었다. 금강하굿둑 겨울새들이 만경평야에 와있는 듯싶었다. 시멘트 포장길 네거리에 망해사 望海寺 4.5km라고 쓰인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파란 평야를 달리다보면 해안 벼랑 끝에 매달려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절집. 망해사가 보였다. 불국토 佛國土에 한 발작 가까워진 듯싶은 마음이 서둘러 차를 몰았다.
절 마당에 들어서자 바닷바람이 몰려온다. 절집도, 나이든 팽나무도, 범종도, 해우소도, 우물도 서쪽 바다를 바라보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망해사는 앞마당이 없다. 끝없는 바다가, 갯벌이 마당이다. 바다가 절속에 있고 절이 바다 속에 들어있다. 만경강 하류가 서쪽 바다와 만나는 광대한 쓸쓸한 풍경 속에 절이 들어있다.
백제 의자왕 2년(642년)부설거사가 절집을 짓고 조선 인조 때 진목대사가 낙서전樂西殿 (1589)을 지었다고 적혀있다. 대개의 고찰은 원효대사, 서산대사가 개찰했다고 전해오는데 이 절은 변산반도 명월암에서 도를 이룬 부설거사가 개설했다는 말에 마음이 쏠린다. 부설거사가 지었다는 극락전 極樂殿 문을 밀었다. 열렸다. 절집은 문을 열어놓고 사람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는 불교의 빛깔이며 내용이었다. 다 받아들여서 원점으로 돌리며 존재하고 있었다. 서쪽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나지막한 낙서전은 한 마리 학이 되어 고고한 자태로 앉아있다. 즐거움의 궁극, 극락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기꺼이 즐거워한다.’ 고 가르치는 것 같았다.
낙서전 옆에 있는 청조헌 聽潮軒. 파도소리가 들리는 방이다. 청조헌 현판아래 툇마루에 앉아 귀를 크게 열어 놓는다. 바닷물이 몰려오는 소리, 밀려가는 소리, 물살에 밀려 겨울새가 나르는 소리, 물고기가 뻐끔거리며 물먹는 소리, 갈대가 속으로 우는소리 신경림를 들으며 이 방에 앉았던 옛사람들을 그려본다.
바다에 더 가까운 마당 끝에 해우소가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나무문을 밀고 들어섰다. 대개의 화장실은 출입문을 향해 앉아 용변을 보도록 되어있는데 이집은 출입문을 뒤로 향해 앉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연꽃그림이 보이고 그 밑에 ‘앞문을 옆으로 열어 보세요. 그리고 느리게 숨고르기를 세 번 하세요.’ 라고 적혀있다. 문을 옆으로 밀었다. 순간 바닷바람과 함께 서쪽 바다가 들어왔다. 끝 모를 수평선, 그 위에 고깃배 떠있고 겨울새 어지러이 날고 있었다. 금강하굿둑 겨울새가 해우소 쪽 문안에 다모여 있었다. 해우소는 바다를, 파도소리를 보는 방이었다. 예불을 드리며 바다와 파도소리를 듣고 보는,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며 천년이 넘도록 면면이 이어온 망해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나는 절집에는 평온함이 배여 있었다. 이절이 얼굴이라면 서쪽 바다는 속살이었다. 힘들여 먼 길 온 중생들에게 부처님이 주시는 선물이었다.
얼굴과 속살을 다보여주는 서쪽을 향한 절집, 망해사는 파도소리를 듣고 보는 절이었다. 1300여년 내내 파도소리가 법문을 읽고 있었다. 한 떼의 겨울새도 법문을 외우고 있었다.
2009.12.30 (9.6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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