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첩
김여하
여름날 강물 속에 들어가 재첩을 잡는다. 부드러운 모래 속에 손을 휘휘 저으면 빤질빤질한 조개껍질이 만져지는 것이 느껴진다. 조개껍데기의 질감이 자갈과 비슷해서 숙련된 솜씨가 아니면 구분이 힘 든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이 손에 닿는 느낌으로 자갈과 재첩을 분별해낸다. 재첩은 정삼각형 모양이나 자갈은 동그스름하거나 달걀형이다.
가끔은 사는 게 강물 안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 깊이가 장딴지 까지 찰랑댄다. 바닥까지 환히 거울 속처럼 들여다보이는 강 속을 보고 있노라면 강물이 떠내려가는지 내가 떠내려가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꼭 오랫동안 기차를 타고 가며 졸다가 깨어 창밖을 보면 기차가 앞으로 가는지, 기차는 정지해있고 창밖의 산들이 뒤로 가는지 헷갈리는 때와 같다.
강물 속에는 미루나무가 얼비쳐있다. 데칼코마니처럼 바로 서고 거꾸로 나눠 서서 바람에 일렁인다. 가끔 물속에서 피라미 떼들이 머리로 종아리를 쿵쿵 박는다. 때로는 입을 벌려서 깨물려든다. 간지러워서 그만해 해도 들은 척 만 척이다.
해마다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동네 아이들 서넛이 양은 주전자를 들고 재첩을 잡으러 갔다. 집 가까이 강이 있었지만, 소(沼)가 있고 너무 깊어서 가뭄이 아니면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십리나 떨어진 하류로 걸어가야 했다.
재첩은 모래펄 속에서도 숨을 쉰다. 덕분에 강물 속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아주 작게 패인 흔적이 얕은 곰보자국처럼 드러난다. 거기를 손을 삽 모양으로 구부려서 떠올리면 십중팔구 재첩들이 매끈한 몸매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재첩도 모래가 많은 곳에서는 황갈색을 띠는 반면에 갯가에 사는 치들은 검정색이 진하다. 보통 새끼손톱만한 크기부터 어떤 것은 엄지손톱만 하다. 반나절 잡아서 한 되짜리(2리터) 주전자에 가득 차면 주전자를 물가에 놓고 멱을 감았다.
뱃가죽이 등으로 붙으면 갈 때보다 훨씬 멀어진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보리밭엔 종달새들이 새로 깐 새끼들을 키우느라고 바쁘고 보리 익는 냄새가 구수했다.
엄마는 조개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하셨다. 재첩을 내 박박 까까머리 씻기듯이 문지르셨다. 어차피 강물에 날마다 닦이고 깎인 재첩에게 무얼 더 씻고 헹굴 게 있으랴 만은. 재첩국은 맛은 깊으나 끓이는 방법은 단순했으며 넣는 남새도 간단했다.
솥에다가 물과 재첩을 넣고 끓인다. 뽀얀 국물이 나오도록 한 번 푹 익힌 뒤 조개껍데기와 살을 분리시킨다. 껍질은 버리고 살과 청주를 어린애 오줌만큼 넣은 뒤 펄펄 끓인다. 거기에 정구지(부추)를 담방담방 썰어 넣고 홍고추 몇 개와 마늘을 빻아 넣는다. 그걸 한소끔 더 끓이면 맛있는 재첩 국 완성인 것이다.
때로 여름방학 때면 며칠에 걸쳐서 재첩을 잡았다. 커다란 고무 다라이에 재첩을 담아놓고 날마다 새로 잡은 재첩들을 보탰다. 재첩들은 새물을 갈아주면 시원한지 메-롱 하듯이 혀를 베물었다. 오일장이 서면 엄마는 재첩을 이고 시장 대폿집 순례에 나섰다. 목로주점마다 술꾼은 많았고 그 숫자만큼 속 쓰린 사람도 줄을 이었다. 엄마는 조그만 스텐 밥그릇에 재첩들을 담아서 파셨다. 그렇게 들어오는 돈 오원, 십 원 자리를 고쟁이에 달린 주머니에다가 차곡차곡 넣으셨다.
시장을 반도 돌기 전에 재첩을 모두 판 엄마는 시장에서 아버지를 만나시면 백 원 자리 지전 몇 장을 쥐어주셨고 아버지는 그 돈으로 자반고등어를 사오셨다. 마을의 어떤 어르신들은 꽁치나 북어 한 쾌를 사서 어깨에 메고 오셨는데 오는 도중 지뢰밭처럼 늘어선 대폿집을 모두 돌파하지 못하셔서 절반은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불콰한 얼굴로 해 동무하며 돌아오시다가 동네 길모퉁이에서 물 긷고 오는 아낙네들을 만나면 서로 주고받는 인사가 볼만했다.
“아재, 장에 갔다 오시니껴?”
“음, 예”
“아재, 꽁치 사셨네요”
“예.”
“그런데, 왜 반 밖에 없니껴, 반은 오시다가 찌져 자싰니껴?”
평생 약주 드시고 갈지 자 걸음 한 번 걸으신 적 없는 아버지에게선 결코 볼 수없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그리운 고향의 풍경이고.
엄마는 쌀뜨물에 고등어자반을 씻어서 잉걸불에 구우셨다. 잘 익은 고등어의 몸통은 아버지 밥상에, 꼬리는 우리 형제에게, 대가리는 당신께서 드셨다. 우리 형제는 얼른 우리 몫을 먹고는 가재미눈을 뜨고 아버지가 밥상 물리시는 걸 노리다가 남은 고깃점을 솔개처럼 날쌔게 채어서 살만 발라 먹었다. 그러나 엄마는 뼈까지 핥고 씹어 드셨다.
부산 어린이 대공원 앞에서 묵을 때였다. 새벽 뿌연 안개 속에서
“재첩 사이소, 재첩 사이소.” 소리가 들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중년의 아낙네가 작은 항아리 동이를 이고 재첩을 팔러 다니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아침에 공원 앞길을 지나가면서 보니 곳곳에서 재첩 국을 팔고 있었다. 행인들이 뜨거운 국을 입으로 후후 불며 밥을 말아 서서 먹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에 쫓겨 조반을 놓치고 나와서 빈속을 채우거나 어젯밤의 과음으로 쓰린 속을 달래는 것이리라.
전국 어느 강이나 여울에서 잡히던 재첩들은 농약과 오염된 물로 인해 모두 사라지고 이제 섬진강 하류에서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다. 우리나라 양대 재첩채취 지역이었던 낙동강 하구언과 섬진강 중에서 낙동강은 거의 씨가 말라버렸다.
저자에 나오는 재첩도 거의가 중국산이거나 양식이다. 중국산은 2~3급수에도 살기 때문에 타우린 함유량이나 맛에서 우리나라 재첩을 따라오지 못한다.
살아가면서 가끔 느낀다. 내 삶은 미래지향적인가. 나의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향상되었는가. 강물 속에서 내가 떠내려가고 있는가. 강이 흘러
가는 것인가 어리둥절하던 어릴 때처럼.
그리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자고. 조금씩이라도 아주 작게라도 쉬지 않고 전진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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