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 oncontextmenu="return false" onselectstart="return false" ondragstart="return false">

Home 자작 수필을 올려주세요~
-로그인이 안될 때는 ☞수필넷다음카페별관 수필의 뜰에 올려주시면 적절히 게시물이동을 하겠습니다.
2009. 7. 23, 저작권 강화로 인해, 작가가 직접 등록하거나 등록을 부탇받은 글만 게시합니다. 감사합니다. (☞메인)-


  심상옥(2014-06-03 09:56:17, Hit : 1095, Vote : 110
 흙과 꽃 그리고 수필

흙과 꽃 그리고 수필
심 상 옥

내가 처음으로 글을 써 보겠다고 한 것은 여고에 입학한 후였다. 중학교 때부터 생활 속에 일어났던 사연들을 빼놓지 않고 일기처럼 썼다. 이렇게 기록해 나간 것이 글 쓰기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S여고에 다닐 때의 일이다. 그 당시 교장선생님은 시인 유치환 선생이었다. 교지에 필요한 비용을 찬조하는 학부모들이 있었는데 아버지도 그 중에 한 분이었다. 아버지는 교장선생님과 면담을 가진 후 내게 문장수업을 받도록 하였다.
그 후 E대에 입학하자 바로 기숙사에 들어갔다. 한 방에 4명씩 있었는데, 국문과 언니 두 명과 신문방송학과 언니가 있었다. 당시 이미『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언니가 있었는데, 나는 그를 무척 부러워했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리라는 꿈을 품었지만, 부모님 반대로 교육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국문과 언니들과 함께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독서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는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렸다. 그러는 동안에 대학생활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일기로 옮겨 놓곤 하였다. 기숙사 생활4년을 이렇게 해서 나의 꿈은 키워져 나갔다. 지금은 지나간 일들이지만 그런 것들이 다시금 새롭게 회상이 된다.
1965년의 일이다. 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나에게 꽃꽂이를 가르쳐주기 위해, 일본 이께노보 유파인 사끼마끼 선생을 한국으로 초청하였다. 그때까지 나는 꽃꽂이라는 어휘조차 모르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해서 꽃꽂이를 시작한 지 어느덧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이런 가운데서도 도예세계와 수필에서 떨어질 수 없었다.
결혼 후 도예학원 경영에 손을 댔으며, 일본에서 도예공부도 하였다. 그때 시인 이동주 선생에게서 본격적으로 문장수업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때의 생활들을 문장으로 엮기 시작하였다. 무언가를 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감정들이 글을 쓰게끔 했는지 모른다.
어느 날 연잎의 선이 마음에 들어 벽에 걸어 두고 잎이 서서히 건조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렇듯이 식물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그 시절 스스로 감성을 키워 나가기도 하였다. 꽃은 어느 한때만 제 모습을 보이고 사라진다. 이런 모습에서 고뇌 같은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짧은 생명을 보면서, 활짝 피어난 모습보다는 그 꽃이 지기까지 그 속에 숨은 미의 여유를 문장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1971년부터 시작한 도예는 일본 초월조형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다. 이때를 계기로 해서「원점까지」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첫 번째 선보인 도예작품이다. 그런 후 초월학교에서 도예의 단계를 밟아 1984년 7월에 사범 3급을 받았다. 이후 개인전 18회, 국내 외 그룹전 30회를 가졌다. 거의 30여 년 간 도예의 길을 걸어 온 나는 아버지와 함께 가시밭길 같은 시간에 묻혀 지냈다.
나는 도자기를 만들면서 기교가 표면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작품을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수필로 미세한 부분을 쓸 수 있는 까닭에 표면에 나타난 것을 훌륭하게 느낄 때가 있다. 이러한 감정을 엮은 글로써는 첫 번째 수필집『그리고 만남』(81년)을 비롯하여, 8인 수필집『모짜르트 카페』(92년)등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화신』(92년)을 출간했다..
나는 도예를 하면서 진솔한 얘기를 담고 싶었다. 도예의 원료는 흙이지만 그 흙에서는 무한한 생명력과 시상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내가 하는 도예에서 나의 창작의욕을 채워나갈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의욕을 차츰 문장으로 풀어나가고 싶었다.
내가 수필가의 칭호를 달게 된 것은 나의 창작도예를 혼자만이 간직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도예의 절묘한 미를 문학으로 형상화하여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이 결국 수필을 쓰게 한 계기가 되었다. 도예와 영혼이 융합하여 하나 되어 나온 도예수필이었다.
도예는 스스로의 힘보다는 어떤 불가사의한 뜻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나는 오랜 세월 마음의 연결 속에서 숱하게 겪어진 체험들을 도예작품으로 만들고 이런 조형미를 수필로써 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일본토우를 보면서」「흙을 빚으면서」또는「자연을 넘는 자연」등은 인간의 원점에서 생각하는 사유의 기틀을 생활세계인 흙에서 얻은 것이다. 나의 자연관은 나타난 현상을 중요시하는 것보다 그 자연의 생성에 바탕을 둔 셈이다.
7년 전 수필가 Y선생을 미리내출판사에서 처음 만났다. 그분의 두 번째 수필집을 출간했다고 하며 그 자리에서 책 한 권을 주었다. 선생의 진솔하고 담백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그런 후 나는 선생의 수필작법을 놓고 문장수련에 힘을 쏟았다, 이것을 계기로 기록문체인 역사수필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80년대에 접어들어 나의 예술적 시야를 동양에서 서구로 확대, 동구라파의 유명한 문화유적을 답사하면서 기행수필과 역사수필을 엮어 보았다. 나는 앞으로도 힘이 자라는 한 글을 쓰려고 한다. 작품세계의 깊이를 다지며 인생의 길에 진지한 자세를 가꾸어나가고 싶다. 항상 새로운 의미를 찾아서 써 나갈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테마를 향하여 자유로운 정신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삶의 의미와 함께 글의 의미도 추구해 나가고자한다. 그러한 것은 수필에서 나 자신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간혹 다른 사람의 수필 속에서도 무엇인가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나의 세계를 반영한 것이 세 번째로 펴낸 수필집『환상의 세계를 넘어서』(96년)이다.
나의 주요한 수필의 패턴은 도예세계의 신비함이다. 알 수 없는 삶의 운명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의 끈끈한 애정이다.「청마선생의 추억,「혼」,「실언」등의 수필은 인간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대학시절 어느 날 청마 선생을 만났다. 그때 나에게 차 한 잔 나누자고 했다. 그러나 다른 일로 해서 청마 선생의 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하랴. 청마 선생은 그날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만약에 내가 그 청을 거절하지 않고 차를 나누었더라면 그 장소의 위기를 면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멕시코의 아카폴카에서 페라글라이딩을 즐기다가 잘못 낙하되어 죽을 고비를 맞은 일이 있다. 청마 선생과 대조적인 상황을 글로 써서 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내 수필에 「혼」이라는 작품이 있지만 이 혼에서도 지리산의 무게와 같은 의미를 담았다. 자연의 위대한 신비 속에 감싸인 지리산의 정적감에서 산의 웅장성과 함께 산다는 것과 죽음이라는 것에 의미를 생각하게 한 글이다. 이러한 나의 의지에서 어쩌면 역리적인 종교적인 감정을 엿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기록문체는 역사물을 다룬 것들이다. 「진시황의 출생」, 「측천무후의 정념」,「재키의 삶」,「인왕산에서」,「마지막 순간」,「미녀와 마녀」 등이 그런 것들이다. 바로 나의 심성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있는 대로, 가진 대로 느끼고 생각하고 드러내면 그것으로 족하다.
최근에는 칼럼형식으로 「로비 커넥션을 보면서」,「만물상 가는 길」,「샌드위치세대」를 썼다. 이것들은 물론 시사적인 것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내가 다루는 꽃과 흙,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들이다.






산 하나 강 하나 [2]
뻐꾸기 울면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zero
좋은 작품을 올려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게시물의 저작권은 해당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글 등록이 안되실 때는, ☞수필넷다음카페별관 수필의 뜰로올려주시면 적절히 게시물이동을 하겠습니다.
"★작가별 수필 검색~ www.supil.net 수필넷 [ 에세이 아카데미아 ]방문 환영~ Thanks for visiting~! Enjoy...Thanks!"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