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빛
김윤희
봄 햇살이 눈부시다. 계절의 여왕 5월, 몸단장을 앞두고 쏟아내는 햇살은 더욱 그러하다. 그 햇살 어쩌지 못해 몸 뒤틀다 보랏빛 열정을 수수알처럼 다그르르 매달고 피어난 라일락이며 모란을 비롯한 온갖 꽃들이 지천으로 봄볕을 반겨 맞고 있다. 그뿐이랴. 새벽 찬 바람에 일찌감치 얼굴을 내밀었던 개동백, 산벚도 하르르 꽃 떨어진 자리에 새살 돋듯 연초록 이파리들이 솟아오르고 있다. 온 산이 땅의 수분과 기를 모두 모아 하루가 다르게 녹빛을 무덕무덕 토해내고 있다.
5월은 햇빛, 꽃빛, 산빛 모두가 밝고 찬란하다. 그러나 밝음이 강하면 그만큼 드리운 그늘도 짙게 마련이다. 아직은 따뜻함이 더 필요한 때 나도 모르게 만들어낸 짙은 그늘로 인해 한기를 느끼는 이들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어느 날 문득, 거실 문갑 위에 올려놓았던 화초들이 이파리를 쪼르르 창가로 향해 고개를 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전 한나절도 채 머물지 못하는 그 짧은 동안 스쳐지나가는 한 줌 햇살에 온 몸을 기울이고 있다. 따뜻함을 받아들이며, 삶을 이어가려는 여린 잎에 애잔한 눈길이 가 머문다. 닫혀 있는 날이 더 많은 빈 집에서 이따금씩 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감격한 듯 파르르 이파리를 흔드는 생명체의 몸짓이 눈물겹다.
화초라고 모두 귀하게 대접받는 것은 아니다. 어느 집에서는 잎사귀 하나하나 먼지를 닦아주며 정성 들어 가꾸어 주는 반면, 우리 집에 오게 된 것들은 사랑스런 눈길은커녕 제때 물조차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 잎사귀가 후줄근해 있기가 일쑤다. 비명소리도 못 내고 온 몸이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허둥지둥 물을 먹여 재생 시키고 있으니 우리 집 화초는 겨우 목숨 부지하는 딱한 처지이다.
자원봉사센터와 연을 맺고 보니 우리 화초처럼 딱한 처지를 많이 본다. 그 흔해빠진 물 한 모금, 바람 한 줄기, 햇살 자락도 스스로 받아들일 능력이 없는 이들을 수없이 본다. 크고 작은 몸체들이 옹기종기 모여 비비적거리며 살아가는 동안 때론 서로에게 부딪쳐 상처를 주기도 한다. 또 다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하며 햇살 속에 녹아 있는 정을 서로 주고받는 현장도 목격한다.
주름살 속 골골이 박힌 삶에 찌든 때를 끌어안고 뒤뚱거리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마음속 회한까지 뽀송뽀송 닦아내주는 사람이 있다. 먹을거리를 조물조물 무쳐 반찬통에 담아 전해주는 사람도 있다. 정신세계가 온전하지 못하여 산만한 덩치로 애기처럼 살망을 떠는 이들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 크레파스, 풍선놀이를 하며 놀아주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지역에서 이런저런 일손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갖가지 형태로 소용이 되고 있는 이들은 투명한 햇살이다. 한 줌 햇살로, 한 줄기 바람으로 지역을 밝고 따사롭게 비추며, 연약한 잎에는 짙은 녹빛을, 지친 이에게는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이들은 희망이다. 이들을 통해 세상에는 참으로 다채롭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함을 볼 수 있다.
사방 탁 트인 너른 터에서 온 몸 가득 햇살을 받고 두 손 쫙 뻗어 싱그러운 공기 양껏 마셔가며 아름드리 거목이 되어 가는 생명체도 있다. 그러나 큰 그늘 드리운 거목이 아니어도 작은 몸뚱이를 서로 내주며 기꺼이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들로 인해 자연은 더 풍성하다. 우리 사회 작은 울타리가 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사람냄새 물씬한 세상이 진정 살맛나는 세상이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일렁이는 물결을 타고 온 세상 모두에게 스며들었으면 한다.
나도 진정 그들 속에 한 일원이기를 소망하며 메마른 화초들에게 흠뻑 물을 먹이고 있다. 이파리에 가 닿는 빛이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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