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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자(2010-01-11 16:24:19, Hit : 903, Vote : 97
 특별한 축복


             특별한 축복  
                                                김현자

  아침에 한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서기 전 남편의 영상 앞에 잠간 섰다. "여보, 우리 손자 수형이가 오늘 장가간대요. 아가씨는 같은 미대 동기래요. 당신도 기쁘시지요?"  
  오늘도 영하 10도를 밑도는 쌀쌀한 날씨가 몸을 움츠리게 한다. 하객들이 속속 들어오고  반가운 인사말이 오가면서 장내에 훈기가 감돈다. 신랑 신부가 25세의 풋풋한 나이여서인지 젊은 연령층이 단연 많다. 양가부모와 신랑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나는 예식장 안을 둘러보면서 감회에 젖었다. 우리부부가 56년 전에 한경직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던 곳, 우리의 장남과 차남이 차례로 결혼식을 올렸던 이곳, 영락교회에서 오늘은 우리의 장손이 저 단 앞에 선다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3대가 같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은 특별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1953년 11월 당시의 서울은 6.25전쟁 수복직후의 혼란스러운 때였다. 서울거리는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들로 을씨년스럽고 집을 잃고 일자리를 못 찾은 군중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외국에서 오는 구호품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그런 시대였다.
  그 때 우리는 영락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이미 약혼한 사이였다. 아직 나라사정이 불안정했지만 서둘러 결혼하기로 하고 주례를 한경직목사님께 부탁했다. 그 때 영락교회는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모이는 피난민교회로 유명했고 한경직목사님의 명성 또한 높았다. 다행히 6.25 직전에 세워진 석조건물은 폭격을 면하여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교회를 지키기 위해 남았던 이응락 장로가 후퇴하는 공비에 총을 맞아 교회마당에서 순직한 쓰라린 일을 겪은 교회였다.  
  나의 직장이던 YWCA에서는 미국식으로 샤워를 해주었다. 샤워란 예비신부의 친구들이 갖고 온 크고 작은 선물들을 샤워처럼 퍼부어 주는 일종의 축하파티를 말한다. 지금도 그런 습관이 지켜지는지는 모르나 그 때 받은 선물 중 가장 많았던 것은 반짝 반짝 윤이 나는 놋그릇이었다. 또 당시의 어려운 생활상을 말해주듯, 바가지 한 개, 빨래비누 한 장과 같은 소박한 선물도 있었다.  
  결혼식 손님초청은 서로 주소도 잘 모르고  전화도 통하지 않았던 때라 직장이나 동창 등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연락을 했던 것 같다. 미국유학을 갔다온 사람들이 결혼한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신랑이 신부 쫓아 공부하다말고 나왔대' 라는 말이 돌았다고도 했다. 교인들을 포함해 한 100명 정도는 모였는데 축의금 같은 것은 없었다. 모든 결혼준비는 우리가 직접 다 했다.  
   결혼식 날 나는 평소대로 손수 가벼운 화장을 했다. 그리고 흰 양단 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면사포를 썼다.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은사인 박마리아 선생이 나를 식장 안으로 인도해 주었다. 앞에서는  화동들이 꽃을 뿌리고 뒤에는 네 사람의 남녀 들러리들이 따랐다. 입장 할 때 길 한가운데 놓여있는 석탄난로를 피하여 행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그분들은 다 돌아가시고 여자 들러리 한 사람과 나만 남아있다.
  결혼식 후에 알고 놀랐던 일은 신랑이 조악(粗惡)하기  짝이 없는 국산천으로 양복을 맞추어 입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의 애국사상이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근검절약은 우리 가정의 생활철학이 되었다. 그는 수입의 대부분을 교육연구에 쏟아부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같은 장소에 앉아서 주위를 돌아보니  도처에 풍요가 넘친다. 크게 확장되고 잘 정돈된 교회 안의 아름다운 장식이며, 하객들의 옷차림이며, 화사한 분위기며 옛날의 궁핍함을 찾아볼 수 없다.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결혼식은 잘 진행되고 있다. 잘 생긴 신랑과 아름다운 신부가 주례목사 앞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모습이 너무도 예쁘다. 축가순서가 되어 기부천사로 유명한 김장훈씨가 노래를 하고 다음에 남성중창단이 나왔다.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퍼지는가 했더니 갑자기 신랑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신부 쪽을 향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영원히 너만을 사랑할게..."라는 가사가 있는 것 같다. 그의 노래솜씨가 수준급인데 놀랬다. 후에 들으니 깜짝 이벤트로 하려고 몰래 연습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런 것도 개성을 중히 여기는 요즘 젊은이의 스타일인가?
   속으로 가만히 외쳐본다. "참, 너희들은 좋은 세상에서 사는구나. 그래, 마음껏 젊음을 구가하고 꿈을 펼쳐보렴. 그래도 할아버지가 품었던 나라사랑하는 마음은 잊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이 많이 있다는 것도 잊지 않기 바란다."    (2009/12/21)






큰 나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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