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 위
청호
스물두 살 봄, 어느 여자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2학년 교실 게시판에 붙여진 시 한 편을 보았다.
한 여인이
그 영혼을 송두리째 드린다하면,
한 여인이 그 살을, 피를, 내음을 송두리째 드린다 하면
아 아,
그대의 고독은 풀릴 것가.
울먹이며 떨며 머뭇대는
나의 사랑아!
- 허영자의 시 ‘바위’ 부분-
세상을 전혀 모를 때, 우리는 노력하기만 하면 남의 마음을 열 수 있고, 아픔도 다 껴안을 수 있는 줄 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삶이 바위처럼 내 뜻대로 옮길 수 없는 것을 알기 시작할 무렵에 읽은 시였다.
살아 갈수록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다른 바위였다.
간절하게 상대방의 마음을 두드려도 바위를 마주한 것 같은 심정이다. 때로는 바위를 쪼던 망치에 내 손이 맞았다.
나를 두드리는 누군가도 바위 앞에서처럼 암담할 것이다.
누군가와 더불어 가는 길은 두 개의 바위가 나란히 가려는 것과 같다.
산다는 것은 젊은 시절 ‘바위’를 읽고 느꼈던 막연한 공감을 온 몸으로 뼈저리게 겪어내는 여정이었다.
그 때, 여고 이 학년이 이 시를 고른데 놀랐다. 지금 생각 해 보면 나 역시 그 여고생들과 서너 살 차이면서 무엇을 알고 좋아했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 무수한 생을 살아왔기에 열 예닐곱이면 이 아픈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것을 짐작했던 것이다.
한때는 무엇인가 주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진정 영혼과 살을 주는 것은 내 바위를 허물어야 하기에, 스스로의 바위를 깨려 한다. 조각난 바위가 미진이 되는 날, 아예 대지 위에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으리라.
아직 굳건한 내 바위를 치는 내 손도 아프다.
|
Home 자작 수필을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