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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숙(2016-11-11 15:29:16, Hit : 742, Vote : 120
 칼국수 한 그릇

칼국수 한 그릇
이효숙

먼 친척 보다 ‘가까운 이웃이 좋다.’ 라는 속담이 있다. 또한 집을 살 때 집보다 이웃을 먼저 보라고 했다. 우리는 이곳 연천으로 이사를 올 때 집안 사정 때문에 빨리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서 장래성, 이웃, 교통사정 다 무시하고 반듯한 대지 위에 아담한 남향집만을 보고 샀다. 그것도 부동산을 통하지 않고. 특별한 연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한 지인이 자기 집에 놀러가자고 해서 간 곳이 연천이었다. 그 집에서 칼국수와 풋고추간장에 점심 대접을 받았다. 시장한 터에 그 맛도 좋았지만 훈훈한 인심이 더 구수하게 느껴졌었다.  “이 동네 참 좋네요.” 인사로 던진 말이 씨가 될 줄이야... 때마침 그 집을 팔려고 내 놓은 집이란다. 남편은 그 말을 듣더니 한 술 더 떠서 이 집을 우리가 사자고 하면서, 온 김에 아예 계약을 하자는 것이었다. 토지대장, 건물등기, 저당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단 한 번에 계약을 해버렸다. 이렇게 집을 사기는 평생 처음이었다.

  우리들이 한 짓을 영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부모들이 혹시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근심어린 눈치였다. 우리의 경솔한 행동이 자식들에겐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서울과 거리가 너무 머니 자주 찾아 뵐 수도 없고, 몸도 안 좋은데 병원도 가깝지 않아 염려스럽다고 했다. 다른 말에는 할 말이 없었지만 자주 찾아볼 수 없다는 말에 꼬투리를 잡아,
“너희들이 무슨 일 때 빼고는 얼마나 자주 왔냐!” 이 한 마디로 자식들의 입을 단번에 막아버렸다. 우리의 지각없는 행동을 합리화시키기 위함이었지만 한편 미안하기도 하고, 그나마 자식들의 발길이 줄어들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사실 나 또한 절해의 고도로 버려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질 않았었다. 그러나 이미 엎지른 물, 어찌 쓸어 담으랴.

우리가 무엇에 홀려 이 집을 샀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아! 그 구수한 칼국수 한 그릇 때문이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의 맏아들 에사오가 허기진 김에 동생이 주는 따끈한 팥죽 한 사발에 장자권을 넘겨주었다고 하더니... 지금 우리는 칼국수 한 그릇의 정 때문에 이곳에 주저앉게 되었다.

서울에서의 공간이 닫힌 공간 이었다면 여기는 열린 마당이다. 대문도 없고 울타리도 없다. 처음에는 너무 허전하고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담도 쌓고 대문도 달았다. 그러나 이웃들은 대문이 있어도 열어놓고 산다는 것이다. 우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문을 꽁꽁 걸고 살았다.

서울에 한 번 나가려하면 기차를 타야하니 시간 맞추기도 힘들었고, 난생 처음 해보는 밭일은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우리의 서툰 행동 때문에 동네사람들에게 웃음을 짓게 만들었고, 잔소리도 많이 들었다. 우리를 염려해서 하는 소리지만 그럴 때마다 “그놈의 칼국수 한 그릇 때문이여!!!” 하면서 투덜거렸다.

그런데 이사 온 지 두 달도 안 되서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아이들에게 연락은 했지만 직장일이며 손자들 하교까지 챙겨야하고, 게다가 거리도 멀어서 오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갑자기 당한 일에  허둥지둥 할 때 이장님과 이웃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었다. 우리에게 잔소리가 많았던 것도 서울에서 이사 온 노부부에대한 관심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대문에 빗장을 열었다. 고기라도 사 오는 날이면 남편이 드럼통으로 만든 화덕 위에 고기가 구어지고 이웃끼리 막걸리 파티와 함께 밤은 깊어 갔다. 낮이나 밤이나 심심할 틈이 없다. 자식들 오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그 애들이 언제 왔다 갔는지 세어볼 틈도 없다.

수확 철에는 눈만 마주치면 배추 무 고구마 등을 갖다 주어 광이 그득하다. ‘얻은 떡이 두레 반이다.’ 라고 했다는데, 우리 평생 먹고 살 것이 보장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질 때도 있다. 물론 때론 착각이 인생에 즐거움도 주고 희망일 수도 있다. 아침에 눈비비고 일어나면 텃밭에 맨 먹을거리다. 서울에 있는 자식들과 친구들에게 청정채소를 날라다 주는 재미 또한 솔 솔하다. 이곳에 와서 살지 않았다면, 받아서 기쁨보다 주어서 얻는 기쁨이 이렇게 큰 줄 어찌 알았겠는가.

좋은 이웃, 맑은 공기, 넓은 마당과 텃밭, 낮에는 거실에 앉아서도 쪽빛 하늘을 볼 수 있고, 밤에는 침대에 누워서도 반짝이는 별들이 눈앞에서 잡힐 듯이 아른거린다. 외출 할 때는  기차를 탄다. 관광여행 하는 기분으로. 양옆으로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들이 줄을 잇고 계절마다 개성에 맞는 옷을 입고 우리를 유혹한다. 자연을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 속에서 통성명을 하면서 옆집 사람을 만나는 분위기다. 벼농사, 고추농사, 자식농사 이야기까지 하다가 중매도 서고 돼지도 팔고 사며 강아지도 주고받는다.  처음에는 서울을 오고가던 길이 멀게만 느껴지던 거리가 기차 속 세상에 빠지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세월을 잊고 산다.

서울을 떠나서  불필요하게 차리고 살아야 했던 것들을 다 떨구고 이곳으로 와 대문도 활짝 열어젖힌 지금 우리는 평화스럽게 살고 있다.

2년 전 그 날에 얻어먹은 칼국수는 이 동네에서 흐르는 끊임없이 흐르는 정이고 인심이었다. 남은 시간 즐겁게 살라는 예언자의 계시와도 같은 칼국수 한 그릇, 인생을 마무리하는 우리 부부에게 하늘이 내려 주신 축복이 아닌가.






도월화의 수필 세계 / 鄭木日수필가 서평
수필의 계절과 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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