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
鄭 木 日
친구여!
난초 잎을 보면 달이 어떻게 떠오르고, 어디로 돌아가는가를 알 것만 같다.
난초는 그리움으로 뻗은 고요의 선율, 고요의 한 가운데서 샘솟는 맑은 물줄기여서,
아니 오랜 그리움 끝에 은은한 피리 소리로 울려 나가는 선율이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친구여!
난(蘭)은 머나먼 하늘을 나는 기러기의 날갯짓. 어디선가 거문고 선율이 번져 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게 뻗은 그 선(線)은 명상으로 가다듬지 않고선 그을 수 없다.
바위 옆에 가냘픈 모습을 의지하고 있으나 겨울에도 칼보다 푸른빛을 낸다.
묵직하고 말없는 바위 곁에 날렵하고 청초한 난초는 산이 오랜 명상으로 그은 마음의 모습이다.
난초 잎의 곡선과 빛깔은 청산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산의 몇 만 년 침묵과 명상이 가다듬어 낸 마음의 선(線)이다.
볼수록 부드럽고 그리움이 넘치는 선율을 허공에 띄워 놓는
기막힌 비법(泌法)을 난초 말고 누가 알 것인가.
난(蘭)은 몇 개의 잎만으로도 천엽만화(千葉萬花)보다 마음을 끈다.
무욕의 담백함 속에서 기품이 깃들고 절제와 단아함 속에 운치가 있다.
난초는 그늘과 침묵 속에 몸을 숨기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친구여!
난초의 자태는 우리나라 산천(山川)의 곡선을 한 가닥으로 풀어놓은 것,
첩첩한 산들의 선형(線型)을 한 잎으로 척 그어 놓았다.
영원으로 뻗은 고요의 곡선을. 가슴을 들끓게 하는 감정을 잠재워
은은한 피리 소리를 들려주는 난(蘭)의 부드러운 선율이 마음에 번져 흐른다.
난초(蘭草)의 자태는 영원으로 향해 흐르는 강물의 허리 곡선을 한 가닥으로 그어 놓았다.
강물이 쉬지 않고 수만 리를 달려가는 동안, 산들과 바람과 들판의 말들을 안으로 가다듬어,
몇 개의 잎으로 그어 놓은 것이다.
난(蘭)의 꽃은 눈길을 끌만큼 아름답거나 요란스럽지 않다.
번잡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맑은 향기를 뿜고 있다.
꽃은 연둣빛을 띠어 얼른 눈에 띄지 않으나, 그 빛깔엔 생명의 윤기가 흐른다.
사람의 재능은 얼른 눈길을 끌지만 세월이 지나면 곧 잊혀지기 쉽다.
고결한 인품은 갈수록 감동과 마음의 향기를 남겨준다.
친구여!
산의 명상, 강의 노래, 바위의 의지를 담아 그린 선이 난초의 곡선이다.
가장 고요하고 편안하고 자유로운 선(線), 우리 마음속에 뻗어 나가 영원의 세계로 이어지는 선율이다.
그냥 풀이면서도 우리 마음에 피운 향기로운 꽃, 영원히 시들지 않는 마음의 꽃이 난초의 꽃이다.
난과 마음을 주고받으면 평온과 고요가 오고, 푸른 하늘이 열려 영원의 하늘로 날개를 편다.
난분(蘭盆)은 한옥의 구조 속에서라야 만이 어울린다.
한지(韓紙)로 바른 방문, 온돌방의 사방탁자에 난분(蘭盆) 하나가 놓여 향기가 은은할 때,
친구여 지리산 작설차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 난향(蘭香)이 스밀지 모른다.
고요한 새벽녘에 난초를 바라본다.
|
|
Home 자작 수필을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