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품바 축제
鄭 木 日
음성품바축제에 갔다. 구경꾼들은 농민과 장꾼과 관광객들이다.
노천 무대 앞으로 놓인 의자에 앉아 품바공연을 본다.
구경꾼들마다 시뻘건 웃음을 날리며 간간히 폭소가 터져 나온다.
수염을 깎지도 않고 볕에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탄 농부들이
일터에서 잠시 구경나온 행색으로 어울리고 있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채 입을 벌리고 순한 웃음을 흘리며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양복 입은 나 같은 사람은 이런 데서 어울리지 않는다.
잠바나 때 묻은 옷차림으로 막걸리나 소주 한 잔씩을 걸치고서 구경을 해야 제격이고 맛이 난다.
품바축제의 주인공은 거지들이고 구경꾼들은 서민층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어~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품바타령’은 각설이패들이 부르는 민요의 일종으로 ‘각설이 타령’이라고도 한다.
경기 이남지역에서 많이 불리며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대개 ‘장타령’이라고 한다.
이 노래를 부르는 각설이는 조선 후기 유민(流民)의 일종이며 일명 장타령꾼이라고도 했다.
주로 지방 장터를 찾아다니며 걸식했다.
오늘날엔 ‘품바타령’ 혹은 ‘품바공연’으로 무대에서 재현되어 하나의 공연 장르로 굳혀진 느낌이 든다.
지름똥이나 먹었는가 미끌미끌 잘 한다
지리구지리구 잘도 한다 품바품바도 잘도 헌다
어 이놈이 이래도 하룻 장난 빠지면 겨우살이를 벗는다
지리구지리구 잘도 한다 품바품바도 잘도 헌다
앉은 고리는 동고리 선 고리는 문고리 뛰는 고리는 개고리
나는 고리는 꾀꼬리 입는 고리는 저고리다
품바타령을 듣다 보면, 폭소가 나면서 눈물이 솟구치는 걸 어쩔 도리가 없다.
해학과 웃음 속에 비애와 한풀이가 이뤄짐을 공감한다.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고 꺼림직 한 옷을 걸치고, 구걸할 깡통을 차고, 노래와 춤을 춘다.
그들의 신분과 처지는 우아한 옷차림으로 박수갈채를 받는 선망의 무대 예술인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오로지 한 술의 밥을 구걸하기 위해 안간 힘을 다 한다.
보기만 해도 당장 쫓아내고 싶고, 문을 닫아걸고 싶은 몰골이다.
도저히 다가서지 못할 꺼림직 한 거지들이다.
그러나 구걸만을 위한 거지들이 아니다.
자신들의 처지와 삶을 ‘타령’이란 노래 가락과 대사로 엮어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거지라는 동냥 꾼에서 웃음과 해학을 주는 예능인으로 변신한 것이
‘각설이패’이고 일명 ‘품바꾼’이다.
가난과 질병의 고통으로 얼룩진 운명을 벗어던지고,
노래와 춤으로써 새로운 삶을 보이려는 의지와 신명이 담겨 있다.
더 이상 내려갈 수조차 없는 밑바닥 인생이 연출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 아닐 수 없다.
눈물과 고통 속에서 피어난 꽃이다.
거부감의 간격을 없애고 익살의 대사와 몸짓, 춤과 노래로서 삶의 희비애락을 공감케 한다.
너무 우습고 기가 탁 막힌 꼬락서니, 이런 현실이 눈앞에 있다는 걸 확인케 함으로써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 준다.
품바타령은 구걸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거지라는 탈을 벗어버리고,
공연으로 당당한 대가를 바라고 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는 구절에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과 거지들의 행적에 궁금증을 느끼고 있다.
’어절시구나 들어와요. 절시구나 들어와요.‘라는 구절엔 따뜻한 인심으로 맞아들인다.
그들도 공동체의 일원임을 공감한다.
어절~시구나 들어와요 절~시구나~들어와요
일자 한자나~들고나 보니 일월이 송송하송송 밤중샛별이 완연하다
이자나 한자나 들고나 보니 이수종군백노주에 백구 펄펄이 날아든다
삼자 한자나 들고 보니 삼월이라 삼짓날에 제비 한 쌍이 날아든다
음성 품바축제는 공연 팀들의 경연 형식으로 벌어지고 있다.
거지 옷 대신 무대 옷을 입고,
거지 얼굴을 대신, 무대화장으로 꾸며서 거지 행각과 타령을 늘어놓는다.
팔도의 품바들이 팔도의 사투리와 해학을 섞어내어 걸쭉한 입담과 농익은 육담을 늘어놓으면
구경꾼들은 박장대소로써 화합하고 박수를 친다.
우리나라 서민들의 한과 시름을 풀어주고 웃음을 선물하는 품바타령-.
양반들의 풍류나 품격을 따지는 놀이, 기생들이 펼치는 가무를 서민들이 기웃거릴 틈새가 없다.
서민들은 품바타령을 들으면서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서로 베풀고 나눴다.
품바타령은 한과 눈물의 씻김굿이다.
다 함께 구성진 가락에 빠져 입으로 흥얼거리는 순간에 카타르시스가 풀리고
친화감이 들게 마련이다. 품바타령이 벌어지는 마당은 화합과 조화의 장(場)이며,
민중의 마음을 교감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넉두리, 익살에 배꼽을 빼고 거칠고도 다정다감한 말투로 얼싸 안는 공감의 한마당이 된다.
음성에서 품바축제를 열게 된 것은 ‘음성꽃동네’ 조성의 연유와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동냥밥을 병든 거지에게 나누어주던 거지 최귀동 할아버지가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했다.
이 말에 감화를 받아 꽃동네가 조성되었고,
이를 기리고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품바축제를 연다.
거지 성자 최기동 할아버지로 말미암아 나눔과 봉사의 큰 사랑 축제가 비롯되었다.
품바타령엔 어떤 운명의 고비에도 꺾이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는
민초들의 끈끈한 삶과 생명력이 풀꽃처럼 피어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
Home 자작 수필을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