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소신공양으로 남긴 말
鄭 木 日
한국의 중심, 서울의 최 요충지에 자리 잡아 한민족의 상징이 되었던 문! 그냥 문이 아니라 600년 동안 민족의 자존과 문화의 영혼으로 우뚝 서 있던 문! 민족의 마음과 역사 속에 세워진 숭례문은 2008년 2월 한 노인의 방화로 인해 잿더미로 사라지고 말았다. 앞으로 몇 년에 걸친 복원공사로 다시 그 자리에 위용을 나타낼 것이지만, 600년이란 숭고한 전통은 끊기고 말았다.
문화재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불타는 것을 T.V를 통해 보았다. 안타까움에 비명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리는 중에 끝내 눈앞에서 송두리 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민족의 정신이 무너지고 자존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6백년의 전통과 미가 불에 타서 재가 되는 것을 느꼈다. 기둥 하나, 서까래 하나씩이 어찌 그냥 나무뿐인가. 기둥 하나가 무너져 내릴 때마다 국민들의 마음이 시꺼멓게 타들어가고 가슴에 불길이 치솟았다.
숭례문은 민족의 마음 한복판에 세워진 역사, 문화, 미래로 통하는 전진과 창조의 문이었고, 예절을 숭상하고 전통을 존중하며 새로움을 추구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문이었다.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존의 문이었다.
서울의 중심, 역사의 한복판, 민족의 마음속에 세워진 숭례문을 보면 한반도의 영혼과 겨레의 숨결과 역사의 맥박을 느끼게 했다. 가슴이 뛰놀고 이 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는가를 깨닫게 하였다. 이 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꿈꾸고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했다.
무릇 문은 공간과 공간, 세계와 세계를 이어주고 개폐의 구실을 한다. 세계 각국에도 그 민족의 기개와 영화를 기리기 위한 개선문을 세워 놓았지만, 우리 숭례문은 평화와 예의와 조화를 위한 문이었다. 마음에 광명을 주려는 깨달음의 문이기도 했다.
깊은 산 중에 있는 사찰의 목조 건물도 아니고 서울 중심에 조선 왕조동안 지켜 내려온 '숭례문'이 불 타 버린 것을 역사와 민족 앞에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누가 불타버린 숭례문 앞에서 석고대죄(席藁待罪)할 것인가?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게 답답하다.
숭례문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스스로 민족 문화, 민족자존을 지킬 줄 모르면 강대국이 될지라도 종내는 문화 속국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중국을 통일한 몽고족의 원나라, 만주족의 청나라가 결국 한족 문화에 편입돼 속국이 되었음을 역사는 증명해 준다.
숭례문은 갈수록 기막히고 답답하였다. 예의와 정신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민족문화에 대한 애착과 전통은 이미 팽개쳐진지 오래였다. 한도와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고, 강대국의 문화에 정신이 온통 팔려 있다. 겨레말을 등한시하고 외국어 교육에 온 나라가 법석을 떠는 나라가 되었다.
숭레문은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음을 느꼈다. 숭례문은 자신을 불태워 민족 앞에 소신공양(燒身供養)을 올리고 싶었을 것이다.. 소신공양을 통해 간절하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민족의 삶으로 꽃피워낸 문화의 소중함과 전통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 한다면, 역사를 진전시킬 지혜와 힘을 상실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국보 제1호’란 이름만 붙여 놓았을 뿐 합당한 대우와 보호의 노력을 쏟지 않았다. 노숙자나(老宿者)가 드나들도록 보호 밖 무관심의 문화재로 업신여길 바엔 존재의 가치가 없었다.
숭례문은 오래 전에 소신공양을 작정했는지 모른다. 스스로를 태워서 민족 문화의 소중함과 자존을 일깨워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숭례문은 목조건물과 기와는 불타고 망가져서 사라졌지만, 석조의 토대는 아직 남아 있다. 종전까지 외국인 관광객 외는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불타고 사라지자, 눈물을 흘리며 절을 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시간이 흐르면 점차 관심도 사그라지는 것도 볼 것이다. 마침내 숭례문의 소신공양도 금세 잊고 말 것이다.
민족이 남긴 문화재나 문화유산은 예산과 관청의 힘으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 민족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국보 제1호 숭례문이 왜 소신공양을 해야 했으며, 무슨 말을 유언하고 싶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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