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열의 힘
小珍 박 기 옥
명절선물로 굴비가 몇 마리 들어왔다.
굴비를 보니 제일 먼저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죽만 드시는 시어머니는 유난히 굴비를 좋아하셔서 선물로 받으면 신문지에 싸서 신주단지처럼 보관하셨다. 자식들이 안타까워서 ‘1년 내내 사 드릴 테니까 편하게 좀 드시라’ 고 말씀드리면 ‘미쳤냐. 벌 받을 일 있냐’ 하며 화를 내셨다. 그 세대는 무엇이든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 좋은 것일수록 아끼지 않으면 죄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복은 눌러가며 살아야 한다’ 는 것이 시어머니의 철칙이었다.
가끔씩 며느리인 나에게 두어 마리 나누어 주실 때도 있었다. 나는 팔을 크게 저으며 사양을 했다. 시어머니처럼 굴비에 대한 특별한 이해도, 애착도 없을뿐더러 조기를 말리느라 조금 수고한 것에 몇 배씩이나 비싼 값을 물리는 데 대한 반감도 없지 않았다. 어머니의 굴비에 대한 애착 역시 단지 값이 비싸기 때문인지 실제로 비싼 만큼 조기보다 맛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인지도 나로서는 의문이었다.
“저희는 생조기가 더 맛있어요, 어머니”
나는 도망치듯 굴비를 도로 놓고 빠져나오곤 했다. 친정어머니께 지나가는 말로 그 얘기를 하면, ‘몇 마리 얻어 와서 너도 먹지’ 하시는 걸 보아 조기보다는 굴비가 귀한 음식이긴 한 모양이었다.
굴비를 보면 신유사옥 당시 흑산도로 유배 갔던 손암 정약전 선생이 떠오른다.
선생이 어느 날 바닷가를 거닐다 보니 죽은 물고기가 도처에 쌓여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보관할 방법이 없어 썩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굶어 죽는 사람이 널려있던 시절이었다.
백성들의 무지에 통탄한 선생은 나무를 엮어 건조시키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말린 생선을 대궐에 팔 수 있게 주선하여 흑산도는 금새 부자가 되었다. 수라간에서는 겨울철 대비로 가공된 생선을 한꺼번에 구입했던 것이다.
‘힘보다 지혜를 쓰라’ 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선생은 15년 유배생활동안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조사하고 채집하여 총 3권의 <자산어보>를 만들었다. 수산동식물 155종에 대한 각 종류의 명칭, 분포, 형태, 습성 및 이용에 관한 사실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자산(玆山)은 지금의 흑산(黑山)이다.
선생이 숨을 거두었을 때 백성들의 무지는 또 한 번 혀를 차게 했다. 사망소식을 들은 자식들이 황급히 도착한 곳은 흑산도의 허름한 주막이었다. 이름 없는 촌부가 선생의 마지막을 지켰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통곡하다가 문득 사방을 둘러보니 벽지에 아버지의 글씨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글을 모르는 촌부가 종이가 귀한 김에 선생이 써놓은‘자산어보’를 찢어 벽을 발랐던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연구서로 도배를 한 셈이다. 이를 자식들이 잘 수습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어류연구서로 보관한 사실은 후손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그것은 배열의 힘이 아닐까.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분자가 같은 탄소지만 배열이 다를 뿐이라고 한다. 이는 곧 분자가 같은 탄소라도 배열에 따라 석탄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같은 조기라도 버려두면 썩은 물고기가 되는 것이요, 잘 말려서 상품으로 가꾸면 겨울철 요긴하게 쓰는 굴비가 되는 이치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한국 최초의 수산학연구서가 허름한 주막의 벽지로 사용되기도 하지 않았는가.
굴비 몇 마리를 놓고 상념에 잠기다보니 어느새 밖이 어두워져 온다, 저녁때가 된 모양이다. 시어머니가 죽을 드신다고 해서 굴비를 못 잡숫는다는 법은 없으리라. 두어 마리 촉촉하게 구워 병원에 가져가고, 친정에도 몇 마리 들고 가면 좋을 것이다. 오늘 저녁 밥반찬으로도 한 마리 구워 볼까나.
식탁 위에 풀어놓고 이렇게 저렇게 구분을 짓다보니 ‘배열의 힘’ 이 새삼 느껴진다. 생조기라면 이렇게 장시간 궁리에 잠기겠는가.
- 한국수필 2010 -
http://blog.daum.net/gopark0405
|
Home 자작 수필을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