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문화유적 답사기
이미영
눈이 부시게 푸른 10월, 평양 땅을 밟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평양 땅을 밟은 날은 광복 60주년이자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이 된 2005년 10월 10일이었다. 우리 일행 6명(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회원)은 전북지역 참관단과 함께 인천공항에서 전세기에 몸을 싣고 평양 순안 공항을 향하였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40여분 지나자 기내에선 술렁거리는 소리가 났고, 창밖에는 우리네에게 익숙한 한반도의 산과 들이 조그맣게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5년 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주석이 첫상봉을 했던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했다. 북한 제일의 공항치고는 너무도 한적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북의 고려항공기 네 다섯 대가 보일 뿐이었다. 평양 땅을 밟은 기념으로 너도나도 사진들을 찍느라 북새통을 이루기를 한참, 이어 북측 안내원들의 환영인사를 받으며 버스에 올라 우리가 묵게 될 양각도 호텔로 향하였다. 차창으로 보이는 북녘의 산하는 남녘의 산하와 다를 바가 그 무엇이랴. 다만 남쪽보다 빠른 계절 탓에 논들은 추수를 한 빈 들이었고 낮은 산들엔 유난히 다락밭을 많이 일구어 놓은 모습일 뿐이다. 이윽고 평양 시내에 들어서니 거리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가 한반도기를 흔들자 시민들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침 10월 10일은 북쪽의 노동당창건 기념일인 국경일이라서 북에서는 이틀 동안 쉰단다. 국경일이어서 그런지 거리마다 꽃장식을 한 천막에서는 먹을거리를 팔고 있었고 아이 손을 잡은 가족, 줄지어 가는 소년단 어린이들, 시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평양시내를 본 첫인상은 계획적인 전원도시 같았다. 남쪽의 도시보다는 녹지공간이 많았고 언덕 등 지형을 그대로 살려 빌딩과 아파트가 배치되어 있었다.
대동강은 능라도, 양각도, 두루섬 등 몇 개의 큰 하중도가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호텔은 바로 양각도에 위치한 47층 규모의 양각도국제호텔이었다. 나는 배정된 35층 객실에 도착, 창밖으로 다가가니 평양시가지, 대동강이 한눈에 들어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대동강을 따라 사진으로 많이 보았던 대동철교가 가깝게 보이고 그 너머 한옥모양의 인민대학습당, 주체탑이 높이 솟아 있었다.
호텔에서의 점심식사는 몇 가지 소박한 차림의 음식으로 대체로 담백하였다. 우리 나라는 남북이 긴 지형으로 기후 차이 때문에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양념과 소금이 덜 들어간 담백한 음식이라고 하더니 역시 그런 모양이다.
점심 식사 후, 우리는 본격적인 평양 문화 답사 길에 나섰는데 먼저 간 곳은 평양 근교에 자리잡은 만경대였다. 만경대는 일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옛집과 멀리 평양시가지와 대동강이 보이는 언덕에 만경대라는 정자가 있었다. 정읍의 전봉준 장군 옛집보다는 조금 넓어 보였으며 경내를 울창한 숲으로 잘 가꾸어놓았다. 이어 간 곳은 평양 외곽지역,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에 위치한 고구려 시조 동명왕릉이었다. 평양은 지금 북녘의 수도이지만 역사적으로 고조선 도읍지요, 고구려 장수왕 때 국내성(중국 집안)에서 천도한 우리 민족의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동명왕릉은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할 때 옮겨왔다고 하는데 현재의 능은 1974년에 발굴, 복원한 것으로 웅장하였다. 다행히 능 주위의 아름들이 소나무들이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제주도에서 옮겨와 심은 소나무가 자란 것이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능 옆에 정릉사라는 제법 규모가 큰 사찰로, 이는 당시 발굴과정에서 절 이름을 새긴 기와들이 많이 발굴되어 복원하였다고 한다. 단청이나 건축 양식이 삼국시대 궁궐 풍으로 남쪽의 절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우리는 다시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과 대동강을 건너 평양시내에 접어들었고 북녘 예술인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만수대 창작사 전시실에 들렀다. 북쪽이 자랑하는 작품 중에는 대형 수예병풍과 우리 도민들에게도 잘 알려진 오영재 시인의 시화가 인상적이었으며 이 곳의 봉사원들은 판매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호텔에 돌아와 저녁 식사 후 이번 답사의 백미인 아리랑 참관을 위해 능라도에 위치한 5.1경기장으로 향하였다. 이미 평양의 거리는 어둑어둑하기 시작하였고 경기장 가까이 다다르자 아리랑 공연을 관람하러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1989년에 완공, 15만 명을 수용한다는 5.1경기장에 들어서니 북쪽 주민들이 모두 일어나 열렬한 환영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북녘주민들과 상봉하니 가슴이 뭉클하고 눈앞이 흐려졌다.
아리랑 공연은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되었다. 아리랑은 우리민족 100여 년의 역사를 형상화한 대서사극으로 2만 명의 중학생들이 펼치는 카드섹션(북에서는 배경대라고 함)과 운동장에서 4만 여명이 펼치는 집단체조, 무용, 서커스 등을 종합한 입체예술공연이었다. 우리민족의 정기와 고난의 역사를 북쪽 사회주의 방식으로 표현하여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었으나 장대한 규모로 펼치는 공연 내용은 역사의 흐름을 쉽고 간결하게 형상화해 이해하기 쉬웠다. 특히 공연 마지막 부분, 통일된 우리민족이 세계에 우뚝 선다는 상 징으로 대형 지구본과 모든 출연진이 등장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교사로서 공연내용에 맞춰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 백 가지 장면을 연출하는 2만 명 북녘 중학생들의 일사불란함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이는 특수한 상황하의 북녘사회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북쪽 관람객들의 환송을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 나오는데 만감이 교차하였다. 왠지 모를 뜨거움에 목놓아 울고도 싶었고, 통일의 희망을 만들어갈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기도 하였다.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평양의 거리는 너무도 어두웠다. 가로등이 거의 없는 캄캄한 도로 위엔 간간이 버스나 전차가 다니지만 대다수 참관을 마친 평양시민들은 걸어서 집에 돌아가는 듯했다. 어렵다는 북녘의 전력난을 실감케 하였고, 나 어릴 적 60, 70년대 익산거리를 보는 듯했다.
밤 10시경에 호텔에 돌아와 이번 방문 주최측인 전북통일연대가 마련한 47층 회전식당에서 평양에서의 하루 회포를 풀었다. 북쪽 용성맥주가 떨어졌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독일맥주로 건배를 하였다. 그러나 이날 밤의 최고 행운은 우리들이 좋아하는 통일가수 김원중씨를 만나 ‘바위섬’ 등 그의 노래를 마음껏 들었다는 점이다. 김원중씨는 대북 지원사업인 “북녘어린이 영양빵 나누기”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튿날 눈을 뜨니 안개에 젖은 평양시내와 대동강이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호텔 앞에는 골프장도 보인다. 간단한 빵과 한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을 나오니 빅뉴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젯밤 우리 방문단중 한 사람인 황선 통일연대 대변인이 평양 산원에서 건강한 딸을 출산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통일둥이 출생을 축하하며 미역 값에 보태라며 즉석에서 성금을 모으기도 하였다. 이 아이가 자라서 통일된 나라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양에서의 이틀째인 10월 11일은 먼저 평양시내에 있는 높이 60미터의 개선문을 방문하였고, 이어 대동강변에 세워진 주체사상탑을 방문하였다. 우리는 북측 안내원이 설명하는 탑에 대한 내용보다는 맑고 푸른 대동강물에 온정신을 빼앗겨버렸다. 대동강 건너편의 김일성 광장에는 많은 북녘 사람들이 나와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대동강철교를 배경으로 북녘 땅을 17번째 밟았다는 한상렬 목사님, 이수금 전국농민회 전의장님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대동강 맑은 공기를 흠뻑 마셨다. 우리가 이렇듯 평양답사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동안 한 목사님을 비롯한 희생과 열정으로 헌신해온 수많은 통일운동가들의 덕분 아니겠는가!
평양 시내는 그리 복잡하지 않아 이틀동안 그림지도를 보며 다닌 거리가 대강 손에 잡히는 듯했다. 대동강과 대동강의 지류인 보통강을 따라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천리마거리, 광복거리, 청춘거리 등을 중심으로 빌딩과 신흥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거리의 상점 간판은 매우 작고 단순했으나 대부분의 건물에는 사회주의식 구호를 적은 대형 간판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점심은 평양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으로 가지 못하고 규모가 큰 다른 식당으로 가서 불고기와 평양냉면을 먹었다. 식당 중앙에는 간단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어, 봉사원 여성들이 직접 연주를 하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반갑습니다’ ‘우리는 하나’ 민요등 노래를 불렀는데 모두가 수준 급이었다.
이제 서서히 평양의 일정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물품을 판매하는 조선 민예실에 들러 간단히 기념품을 샀다. 주로 관광객이나 외국인이 들르는 곳인데 판매물품은 인형, 도자기, 화장품, 농산물 등 소박한 것들이었다. 북녘은 외국지폐는 주로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어, 우리는 유로화를 환전(1유로=한국돈 약1300원)해 갔었다. 여성 화장품 로션(2.8유로), 깨 1킬로그램(3유로), 작은 수공예품 등은 대개 1-2유로 였다.
이번 일정은 짧은 1박 2일간의 평양문화답사이기에 내가 가보고 싶었던 아이들의 예술교육장소인 소년문화궁전, 학교나 탁아소 등을 방문하지 못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머지않아 평양을 다시 올 수 있게 될 것 같다. 우리 학생들을 데리고 개성으로 현장체험학습을 와야 할 것이고, 비행기가 아닌 경의선을 타고 평양을 방문할 수 있으리란 것이 꿈이 아닌 현실로 느껴진다. 또 이번 방문을 함께 한 전북교육감의 적극적인 통일교육 정책도 기대해본다.
“통일은 됐어”라고 말씀하시던 고 문익환 목사님의 모습이 떠오르고, 통일의 물꼬를 크게 터준 김대중 대통령의 건강도 걱정되는 것은 왜일까?
짧지만 길었던 일정을 마치고 순안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북측 안내원의 구성진 노래는 우리들의 아쉬움을 달래 주기에 충분했다.
오후 4시, 평양을 출발하여 인천을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우리 일행은 말없는 가운데 다짐하고 있었다. 통일교육 실천! (200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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