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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국(2016-06-30 19:54:38, Hit : 853, Vote : 111
 객석에 앉은 자화상

객석에 앉은 자화상
백 승 국

‘한번만 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윤대성 작, 임영응 연출)

  오랜만에 연극을 봤다. 고령화 시대에 처음 시도한 실버 연극이라고 했다. 작가와 연출가는 70대, 등장한 4명의 배우 나이도 평균 60세다. 어느새 찾아온 죽음에 대한 두려움. ‘당면한 노년 문제를 솔직하게 다루고 함께 생각하고 싶었다’는 것이 주제에 대한 작가의 변이다. 연출가는 누구나 느끼고 있는 늙음에 대한 갈등을 승화시켰다.  ‘노인 드라마라는 말 대신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들려주는 지혜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라고 풀이한다. 거의 분장하지 않은 배우들, 무대는 초라했다.
시골 마루가 바로 장례식장이다. 굶어 죽은 자의 영정과 찌든 병풍, 술상과 향이 전부다. 사인은 알콜 중독에 영양실조였다. 항상 외로웠다. 가끔 집에서 약간 떨어져있는 구멍가계 주인과 나누는 몇 마디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라고 했다. 두 명의 문상객이 참혹한 죽음에 대한 입을 열었다. 충격과 분노, 독백과 무력함이 흐르고 있다. 죽마고우는 아니지만 꽤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낸 친구들이다. ‘우리 나이에 누가 밥을 해주나-알아서 때우는 거지’라는 짧은 대화에 웃음이 터졌지만 분위기는 점점 우울해진다.  
200여석 되는 좌석은 미리 예약을 해야 했다. 무대 앞 바닥과 통로 임시 의자에도 빈자리가 없다. 관객은 거의 나이 먹은 사람들이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 것 같다.  옆에 있는 여자 관객이 나를 몰래 확인하더니 ‘혼자 오셨느냐’고 묻는다. 외로워 보인 모양이다. 그냥 웃기만 했다.
오래된 구문이다. 하루 집에서 3끼를 먹는 남자, 3식(食)=새ㄲ ㅣ, 2식=군(君), 1식=씨(氏), 0식=님이란다. 인터넷 쓰레기통에서 주운 얘기라지만 목구멍에 가시가 박힌 것 같아 씁쓸했다.
문상객이 한명 더 나타났다. 자기들 얘기가 계속된다. 빈 소주병과 텅 빈 냉장고 앞바닥에 엎어진 채 발견됐다는 주검을 두고 또 흥분한다. 객석은 텅 빈 것 같다. 허전한 침묵이 가라앉는다.
평균수명 80세, 머지않아 100세 초고령 시대가 오고 있다고 법석이지만 노인은 외롭다. 살아있다는 것이 지겹단다. 문상객의 고백은 계속된다. 밀려난 방송작가, 명예 퇴직한 은행 지점장, 배우 등 한 때는 잘 나간 사람들이다. 자랑스러웠다. 남보다 앞서 출세하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다. 젊음을 즐겼다. 여자들도 자기를 존경했다지만 이제는 모두 지나간 얘기란다. ‘등산이나 다니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고 고개를 굽힌다. 또 다른 이는 방송 트랜드가 바뀌어 ‘나이가 많은 자신은 푸대접 받고 있다’고 흥분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지옥’이라고 하소연 하는 사람도 있다. 얘기는 끝이 없다. ‘노인이 되면 망각이 다 잊게 해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 생생해진다’고 한탄 한다.
한결 같이 지나간 시간에 얽매여 해매인다. 죽음에 대한 검은 그림자가 자신을 덮치고 있는 것 같다고 신음한다. 내 나이가 어떻게 되었든 상관없는 나이가 됐단다. 죽음만이 저만치 모퉁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몸을 떤다. 비탈에 서있는 늙음들의 자화상이다.
퇴직한 후였다. 점차 스스로 왜소화 되고 있음을 느꼈었다. 이유 없이 초조해지고 짜증이 났다. 소외감과 무력함에서 무엇이든 저지르고 싶은 반감이 꿈틀거렸다. 누군가의 말인가, 늙어감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막연한 두려움부터 하나씩 털어 내리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몸덩어리 뿐만 아니라 마음도 재점검하기로 했다.
미국 타임지의 에세이스트 로저 로젠 불라트가 조언한 나이 드는 처세술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나쁜 일은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분야를 파고들지 마라 -먼저 사과하라 -화해하라 -도움을 주라 -당신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등. 노인만을 위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나도 받아들였다. 한 때 일본에서는 혼자 사는 노인들이 가벼운 부상으로도 도움을 받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 고독한 사람이 늘어나 사회적인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우리나라에서도 혼자 사는 노인들이 100만 명이 넘었다. 노인 5명 중 1명 꼴이다. 무대는 죽은 자와 이혼한 전처가 등장하면서 출렁인다. 토라진 여인의 입을 통해 부부간의 비밀이 조금 들통 나지만 죽은 사람은 날이 없다.  친구인 문상객들은 전처를 비난하고 화제를 돌리면서 화장 문제를 상의한다. 무대는 끝까지 객석을 짓누르고 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전처의 진혼무가 펼쳐진 후 연극은 막을 내린다.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 하고  문상객들은 외치고 있으나 객석은 허전하다.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에서 신촌 전철역까지 걷기로 했다. 4월초가 지났으나 진눈깨비가 내린다. 미끄럽고 스산했다. 몰아친 바람에 벚꽃 잎이 허공에서 난무하다가 시궁창으로 처박힌다. 개선 장군 같이 북치고 나팔 불고 찾아왔던 봄은 그렇게 가고 있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친구에게 전화라도 해야겠다.  


백승국 수필가  전 언론인. 연합통신 (YTN전신) 부장, 국장 , 논설실장역임   <문예사조>수필등단.  
표지화 김경복 서양화가 ( 가천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교교수역임
삽화: 백인정 조각가    






노르웨이 / 백야 [1]
7부 능선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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