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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범찬(2016-06-15 13:48:54, Hit : 636, Vote :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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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부 능선까지만


<이범찬 교수님 약력>
호는 해암이며 경기도 여주 출신이다.『수필문학』으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나고야경제대학 명예교수이다. '지구촌의 여정', '바닷바위의 노래', '시클라멘을 마주하고 앉으면', '원숭이 목각', '늙마의 외도' 등을 집필하였다.



7부 능선까지만 / 이범찬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이화여자대학교 법정대학에서 가장 젊은 교수란 이유로 삼십대 초반에 등산부 지도교수를 맡았다. 그것이 등산의 맛을 알게 된 계기가 되어 평생 산을 오르고 있다.

등산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서슴없이 두 가지 점을 들어 왔다. 첫째는 땀을 흘릴 수 있어 좋다. 걸음을 계속하다보면 옷이 흠뻑 젖도록 땀을 흘리게 된다. 골프를 쳐서는 그렇게 땀을 흘릴 수가 없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풀 향기 풍기는 숲속을 걸으니,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하기는 등산만한 것이 없다.

둘째는 정복의 쾌감이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내려다보는 순간 맛보는 성취감을 그 무엇과 비할 수 있으랴. 대개 정상에는 오랜 풍상을 겪어온 바위가 버티고 있기 마련인데, 거기에 수백 수령의 솔이라도 뿌리를 박고 서 있다면 금상첨화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노라면 그 쾌감은 흘린 땀과 정비례한다. 그러니 산에 갔더라도 어쩌다 정상정복의 쾌감을 맛보지 않고 내려온 날이면 어쩐지 등산을 한 것 같지도 않고 기분마저 찝찝하기만 했다.

지리산 종주를 하던 때의 일이 생각난다. 천왕봉을 오르고 나니 북쪽으로 중봉이 다가선다. 정상을 정복하고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학생들이 정상에서 쉬는 동안 배낭을 벗어놓고, 나 홀로 중봉까지 달려가 “야호!”를 외치고 돌아왔다. 그때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했는데, 단거리 산악경주도 아닌 것을 그 무모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도 몰랐으니….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정상정복론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1000m 내외의 국내 산들을 주름잡던 아마추어가 외국의 명산들을 가까이 접해보니 정상정복이 얼마나 허황한 꿈인가를 실감하였다. 내 능력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근년에 와서는 근교 산행조차 젊은 사람들과는 보조를 맞추어 함께 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니 정상의 꿈은 깨끗이 접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언젠가 고향엘 들렀다가 어느 기관장으로부터 여주에서 생산한 계영배(戒盈杯)를 하나 선물로 받았다. 계영배란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인데, 잔의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놓고, 사이펀(siphon)의 원리를 응용하여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게 되어있어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중국 제(濟)나라 환공은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으며,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 하며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렀단다. 공자도 이를 본받아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비단 술뿐만 아니라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으렸다.

계영배를 바라보면서 나도 술은 말할 것도 없고, 등산도 7부 능선까지만 가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정상 정복의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좋은 구실을 찾은 셈이다.

세월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생각의 폭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사실 산을 정복한다는 말부터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태초부터 영원히 존재하는 대자연을 6척 인간이 정복하려고 들다니 당치도 않은 일이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산에 들어가고(入山) 정상까지 오를(登頂)뿐이다.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산의 품에 안기고 보면 산은 새로운 경지로 다가온다. 굳이 기를 쓰고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야만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앙상하게 말라붙었던 굴참나무 가지에 윤기가 돌고, 그 사이로 뿌옇던 하늘이 새파란 얼굴을 드러낸다. 얼어붙었던 골짜기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귓전을 간질이고, 바위틈새를 비집고 자리 잡은 버들강아지가 부풀어 오른다. 진달래, 산목련만 꽃이더냐. 양지쪽 풀섶에서도 앙증맞은 들꽃이 수줍게 반겨주지 않는가. 신록이 온 산을 물들이고 훈풍에 날려 연둣빛 풋 잎이 한들한들 춤을 추고, 솔향기 가슴 깊숙이 스며들 때면 어느새 정상에서 집념은 사라지고 만다.

녹음이 짙어지고, 얼마 안 되어 조락의 가을단풍이 황홀하게 불타오르고, 밤새 소리 없이 내린 눈으로 온 천지가 새로 변장을 하여 눈꽃이 만발하니, 철따라 어김없이 산은 그 신비로운 참모습을 보여준다. 7부 능선까지만 오르리라 마음을 비우니 마음의 눈이 열려 나무와 풀들의 오묘한 몸짓이 보이고, 안보이던 산하의 아름다움이 들어온다. 마음의 귀도 뚫려 들리지 않던 새소리, 풀벌레 울음소리며 초목들의 속삭임이 귓전을 울린다. 숲에 드렁서는 초입부터 찬탄을 연발하게 된다. 그래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산이 있어 손짓하고 숲이 있어 팔을 벌려주니, 나는 오늘도 산에 들어 그 품에 안겨본다.






객석에 앉은 자화상
분위기를 모르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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