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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애(2016-11-10 22:11:12, Hit : 782, Vote : 100
 내 마음의 호롱불

'내 마음의 호롱불'- 임영애

     청량리에서 탄 기차는 한참 달려 국수 역에 도착한다.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아담한 역사 밖으로 나온다. 역 앞에는 신작로가 있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길을 건너서 학교가 있는 야트막한 언덕을 오른다. 바로 산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나오고 흰 한복의 할머니는 서두르는 듯 저만치 앞서 가신다. 큰 딸의 여섯 살 아이를 막내딸에게 잠시 맡기러 가는 할머니의 초조함이 발걸음을 재촉하나 보다. 그러나 적막한 산과 속 모르는 나는 편안하다 못해 심심하다. 풀잎을 손으로 훑기도 하고 노랑나비를 쫓기도 한다. 그래도 심심해 소리를 질러 보면 와우 와우 하고 메아리가 대답한다. 한참을 걸어 산등성이 하나 넘으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정겹다. 언덕에는 하얗고 조그만 예배당도 보인다. 이 마을과 저편 마을 사이에는 큰 강이 흐른다. 강 건너 이모 집에 가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야 했다. 강가에 내려 선 할머니가 “배 보내 줘유”라고 크게 소리친다. 어느 집에선가 사람이 나와 즉시 노를 젓기 시작한다. 아저씨의 노 젓는 소리가 ‘픽 끼익 픽 끼익’ 들려오고 배 밑으로 밀려나가는 물은 큰 물부채를 그린다. 우리 집에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그 배를 타고 건너간 이모 집에서 몇 개월을 살았다.

     그 시절의 모든 기억이 소중하다. 여름날 냇가에서 빨래하며 나를 보고 웃던 이모의 순박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이모 또래의 젊은 새댁들이 빨래를 삶아 내며 왁자지껄 떠들던 자갈밭, 빨래 삶는 솥 아래에서 피어오르던 잔가지 타는 냄새! 어떤 것을 주고도 되찾아 올수 없는 그리운 것들이다. 운동회 날에 이모의 그 친구들은 신식 파머 머리에 몽당 치마저고리로 한껏 멋을 내 나도 신이 났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운동장에 모여 만들어 내던 사람 냄새 나는 열기가 그립다. 이모 친구들이 그날 운동장 한쪽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찍은 흑백 사진이 그 시절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자, 초가집 뒷마당의 붉은 진흙은 노란 소국을 피워 냈다. 짙은 쑥색 잎에 떠받쳐진 듯 피어 있는 그 꽃은 초가지붕과 그리고 마당의 붉은 진흙과 참 잘 어울렸다. 앞 못 보는 장님을 시부모로 둔 그녀의 형편 때문인가, 이모가 마치 그 노란 국화같이 느껴졌다.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왔다. 한 밤중 아궁이에 장작을 더 넣기 위해 나가는 이모를 따라 밖으로 나온다. 싸한 겨울밤의 냉기가 괜히 좋다. 장작을 넣고 있는 이모 곁에서 본 하늘은 정말 깜깜하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부엉이 소리는 괴물 소리처럼 무섭다. 깜깜함과 무서움을 피해 얼른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간다.

     따뜻한 방으로 들어오니 호롱불이 방을 밝히고 있다. 호롱불은 그 빛의 강도가 약해서 모든 사물이 선명하지 않다. 호롱불은 밀레의 그림같이 마음을 부드럽고 모호하게 하는 빛이다. 굳이 몰라도 되는 것들은 다 덮고 있는 것 같은 빛이다. 호롱불 하나만 켜 있는 방 안에 동네 일가들이 모여들면 이모는 메밀묵을 무쳐 낸다. 묵을 먹으며 두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푸근하고 정답다. 윗목에서 잠이 들던 나는 이모의 시아버지가 획 하고 긋는 성냥 소리에 눈을 뜨곤 했다. 잠이 들다가 뜬 눈에 보이는 누런 벽지 위로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성냥불이 사그라지면 그림자들도 따라서 사라지고 만다. 나는 다시 스르르 잠이 드는데 참 편안하다. 앞이 안 보이는 그는 늘 한복을 입고 있다. 말을 할 때면 입의 움직임과 더불어, 눈을 덮고 있는 눈꺼풀도 위 아래로 움직인다. 그 부부는 둘이 있을 때 많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남편이 “비 그치니 수닭이 담벼락 밑의 채송화 있는 곳에서 지렁이를 잡아 먹었잖어”라고 탁한 소리로 말하면, 아내는 “그러게나 말여유, 큰집 성아 애미가 고무신을 새로 사왔어요 이쁜 거루”라고 대답한다. 서로 안 보이는 그들이 마치 두 눈으로 본 듯 주고 받는 말에는, 우리들이 감히 바라보지 못한 깊고 넓은 세계가 있는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뒷간 거적문을 열고 들어가던 소경의 뒷모습에서 이유 모를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앞 못 보는 그의 어깨를 내리 누르고 있을 무형의 고통들이 무겁게 보인다. 깜깜한 밤 뒷간의 거적문은 앞 못 보는 그의 자존심을 기어이 지켜준다.  

     작년 여름 그곳을 다시 찾았다. 골치 아픈 문제로 힘겨워하던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무조건 전철을 탔다. 타고 보니 옛날 이모 집이 있던 마을을 지나는 것이 아닌가! 수 십 년 만에 찾은 국수 역 부근은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옛 산길은 호화 전원주택 마을로 바뀌어 있었고, 조그마하던 예배당은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모세골 교회로 변해 있었다. 가구 수가 많지 않던 그 마을도 문명화로 풍요로워졌지만, 옛 모습들이 사라진 것이 마치 소중한 것을 도둑맞은 듯 아쉽기만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귀한 것은 단지 옛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때 산과 마을을 뒤덮고 있던 원초적 자연의 숨결과, 순수했던 사람들의 향기 때문이리라.

     그 때의 보석 같은 추억을 그리며 50여 년 전 나룻배를 기다리던 그 자리에 다시 섰다. 그렇게 오래 전 어린 시절의 회상 속에 한 참을 빠져 있었다. 그 시절 강 저편은 마을을 감싸고 있던 산등성이와 물결치던 강물, 해 질녘이면 초가지붕마다 피어오르는 저녁 짓는 연기가 어우러져 평화로워 보였다. 넓은 논밭에서 동네 쪽으로 다가가면 서서히 몸을 감싸던 그 장작 타는 냄새는 요즘 나무를 태운다고 날 수 있는 향기가 아니다. 주어진 대로 살아 갈 줄 밖에 몰랐던 순박한 사람들과 어우러져 있던 그 냄새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자연도 사람도 제자리에 있는 듯한 느긋함과 아늑함. 이제와 생각하니, 나는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강 건너 풍경도 옛 모습이 아니다. 강을 건너 주던 배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세월이 흘렀고 조금은 세상 이치도 알게 되었다. 매사에 딱 부러지게 선을 긋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호롱불 같은 은은한 마음으로 살아가며 자연스러운 흐름에 삶을 맡기려 한다. 그 시절 체험 덕에 얻은 철학이다. 호롱불 켜진 이모 집의 온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영악한 계산과 문명의 이기를 몰랐던 순수의 시절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종종 기차나 전철 여행길에 나선다. 희미하지만 내면 깊숙이 평온한 기운을 전해 주는 내 마음의 호롱불을 찾아서….

-선수필 2016 가을호 신인상 임영애



sysop (2016-11-11 08:31:35)  


허정란 2016. 09. 11
이번 선수필가을호에서 신인상부분 (임영애. 내마음의호롱불) 글을 읽었습니다
순박하고 진정성 있는 글이 훌륭했고,
소피아선생님께서 가르친 문하 1기생 분이라 하여 더욱 반갑고 관심이 갔습니다

푸른날개 2016. 09. 11
네 반갑습니다. 멀리 진주에서도 함께 축하를 하시네요

임영애 2016. 09. 11
허정란 프란체스카님 저의 졸고를 읽어주시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농암종택 가는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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