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한 잔을 마시며
吳 岐 煥
주전자 물이 끓고 있습니다. 끓은 물을 다기에 담고 우전차를 넣습니다. 맑은 차 한 잔이 우러날 때를 기다리며 창문을 바라봅니다. 어제 밤에 내린 첫눈이 지붕위에서 햇살을 받아 반짝입니다.
커피를 숭늉 마시듯 마시는 세상이지만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맑은 차 한 잔을 우려냅니다. 차 한 모금을 물고 입안에서 굴리다가 넘깁니다. 맑은 느낌이 왼 몸으로 번집니다. 많은 전통문화가 사라졌어도 차 문화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를 음미하는 것은 마음의 여백을 누리는 일이고 맑은 사유를 우려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 문장가이자 차의 달인이었던 이규보는 차의 맛을 ‘도의 맛’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의 다성茶聖 으로 불리던 초의선사는 차와 선이 별개의 세계가 아님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를 다선일미茶禪一味 라 부르고 있습니다. 차를 통해서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우정과 그리고 다산 정약용과의 친분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차를 사이에 두고 형성된 그들의 고매한 세계를 다선삼매茶禪三昧 라 부르고 있습니다.
차가 우러나는 과정, 맑은 차를 대하는 과정, 차를 마시기 위해 순간순간 동작을 멈추는 과정이 다도를 형성한다고 합니다. 차를 우려내는 과정은 내면적인 고통의 시간과 닮은 것 같습니다. 맑게 우러난 차를 대하는 과정은 정화된 자아를 마주하는 시간과 닮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기 위해 잠시 동작을 멈추는 과정은 자아를 돌아보는 과정을 닮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이 어찌 다선삼매를 공감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맑게 우러난 차 한 잔을 또 따라 마십니다. 차 한 잔을 마심은 자아를 우려내고 자아와 마주보고 마침내는 그 자아와 합일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내재성에, 과정이 좀 번거롭지만 전통차를 즐겨 마시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울 적엔 맑은 차 한 잔으로 여유를 찾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 이는 인생을 맑게 마시는 삼매경입니다. 주전자 물을 다기에 담고 우전차를 또 넣습니다. 2010. 11. 30 (6.2매) 창작수필 2011봄호 게재
|
Home 자작 수필을 올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