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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 홍미숙
폭우가 쏟아져 홍수가 나면 소양강 댐 수문을 열어 놓는다.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다. 수문이 열려야 댐 안에 갇혀있던 물이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된다. 소양강물이 수문을 통과하면 그때부터 한강홍수통제소가 바빠진다. 시시각각 물의 흐름을 생중계하기에 이른다. 한강 홍수 조절의 최후 보루가 소양강이기 때문이다.
여름이 찾아와 장마가 지면 어느 때보다 물에게 관심을 갖는다. 물이 길을 이탈하지 않고 바다로 향하기만을 기원한다.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 된다. 물은 흘러가야 물이다. 그런데 흐르지 못하고 갇혀있는 경우가 많다. 한강을 향해 아니, 바다를 향해 흘러내려가는 소양강물도 댐 안에 갇혀 있었다. 수문이 열려야만 물이 해방을 맞을 수 있다.
장마가 계속되고 폭우가 쏟아져 내리자 소양강댐 수문이 열렸다. 드디어 소양강물이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물은 댐이 원수다. 댐이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게 만든다. 댐 안에 갇힌 물은 큰 비가 와야만 넓은 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과 달리 비가 많이 내리길 기다릴지도 모른다. 소양강 댐 안에 있던 물이 시원스레 방류되고 있다. 좋다고 함성도 지른다. 엄청난 물이 엄청난 물보라를 뿜어대며 소양강 댐을 빠져나오고 있다. 그 힘이 그대로 내려온다면 어디든 덮치고도 남을 것이다.
물이 불보다 무서움을 증명해 주고 있다.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휩쓸어가는 게 물이다. 하지만 물이 물길만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다행히 소양강 댐을 통과한 물은 한강으로 오는 동안 알아서 속도를 조절한다. 댐에서 뛰어내릴 때의 힘은 이내 사라진다. 해방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어느새 순한 양이 된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물길이 물을 달래놓는다.
자연은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는 경우가 없다. 자연재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잘 살펴보면 그것은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자연은 그냥 놔두면 자연스럽게 세상을 만들어간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뿐이다. 자연과 달리 사람들은 자연에게 도움이 안 된다. 자연의 혜택만 누릴 줄 알지 고마움도 모르고 살아간다. 방해꾼 노릇만 하고 있다.
물이 세상에 길을 가장 먼저 닦아놓았다. 그리고 세상과도 가장 먼저 소통을 했다. 물길과 더불어 사람들의 길도 나 있다. 사람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물이 도와주었다. 최초의 길을 물이 만들어놓은 셈이다. 물이 사람들보다 한 수 위다. 물이 내준 물길만 이용하면 탈이 생길 이유가 없다. 사람들이 낸 길이 문제다. 물이 낸 길과 다르게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물길에게 배워야한다. 무엇보다 느리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한다. 물길에서는 과속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고가 날 리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서로 경쟁할 필요도 없다. 순리를 따르면서 살아가면 된다.
물길은 구불구불하다. 사람들이 낸 길만 일직선이다. 곡선인 물길에서는 화가 난 물도 차분해진다. 돌고 돌아 내려오면서 적당히 화를 삭이고 속도를 줄일 수 있다. 인생도 그래야한다. 일직선으로 급하게 내달리기만 하면 안 된다. 굽이굽이 인생길을 돌아볼 줄 알아야한다. 구불구불 물길만 같으면 인생길도 무사통과다. 뭐든 빨리 하려다가 사고가 난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늘 아래 동네가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물길은 선명히 보인다. 물길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려오는 폭포수도, 물길을 따라 강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 강으로, 바다로 가는 물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여러 물길을 통해 물은 우선 강으로 모여든다. 나아가서 그 강은 큰 물길이 되어 바다로 물을 안내하게 된다. 호수로 모여드는 물도 있다. 큰 물길을 따라가던 물이 귀엽게 샛길로 빠지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물은 더 이상의 물길이 없어 도로 큰 길로 향한다. 샛강에서 잠시 머무르는 물도 보인다. 쉬었다 가려는 물이다. 물길만 잘 살펴보아도 인생을 배울 수 있다.
샛길로 빠져보려다 되돌아 나오는 물을 보면서 호기심 많은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모습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 한 길만 가는 것보다 샛길도 가보는 게 좋다. 인생에서 한 길만 간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샛길로 가다가 더 이상 갈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도 큰 공부다. 평생 동안 한 길만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길 저길 다녀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 홍수로 소양강 댐이 다섯 개의 수문을 열어놓고 한꺼번에 많은 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댐의 문이 열리자마자 소양강물은 한강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한강은 바싹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두 물머리(양수리)에서 한강과 만나게 된다. 두 강물은 서로 만나 잠수교를 잠수시킬 것이다. 어차피 잠수교니까 예상한 일이다. 한강 변 저지대 사람들이 걱정이긴 하지만 크게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소양강물은 쉽사리 들이닥치지 않는다. 경제속도를 언제나 유지한다. 자연이 만들어 준 물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사람들과 다르다. 절대 과속을 하지 않는다. 자연이 과속을 할 수 없게 물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도 물길만 같으면 좋겠다. 서둘러 목적지를 가려하지 않는 게 마음에 든다. 느림의 철학이 뭔지를 가르쳐주는 물길이다.
소양강 댐이 초당 2천 톤의 강물을 방류시키고 있지만 안전거리, 경제속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갇혀 있다가 해방되었는데도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사람들과 다르다. 서둘러 도착하려하지 않는다. 소양강을 떠난 지 18시간에서 20시간정도 걸려야만 한강에 닿을 수 있다. 댐을 박차고 나올 때의 속도로 달려오지도 않는다. 그런 물이기에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자연이 만들어준 물길 덕이다. 그런 물길이 있어 성질 급한 사람들도 살아가게 된다.
인생도 서둘러 살아갈 필요가 없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을 닮아 가면 안 된다. 소양강 물이 물길을 벗어나지 않고 천천히 목표 지점에 도달하듯 내 인생도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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