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보름>
풍성한 봉근리 풍물과 쥐불놀이
丘 仁 煥(소설가.서울대 명예교수
문학과문학교육연구소 소장)
명절은 언제나 즐겁다, 그 가운데에서도 한가위와 대보름이 풍성한 삶의 훈기가 넘치는 민속놀이로서 온 마을이 흥겨운 잔치로 출렁인다. 이른 봄부터 들을 벗 삼아 땀을 흘려 지은 농사가 대풍(大豊)이 들어 누렇게 익어 황곡(黃穀)이 물결치는 달빛에 비치는 들을 바라보며 송편을 빚고,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팔월 한가위와 하루 뒤엄(퇴비)을 7번 내고 팥밥이나 오곡밥을 먹으면서 호두 땅콩 밤 등 부름을 따며 내 더위를 파는 대보름은 우리 민족의 가장 즐겁고 흥겨운 세시풍속(歲時風俗)이다.
그 언제인가 벌서 아득한 옛날이 되어 그리운 시절이 되고 만 그 보름 날 봉근리 마을은 흥겨운 풍물 소리에 마을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봉근리는 장편소설 <일어서는 산>과 <동트는 여명>의 주요 무대가 된 배경으로 충남 서천군 자앙읍 옥산리의 동산을 끼고 반원형으로 들을 안고 들어선 마을이다. 원래는 큰 봉근리 작은 봉근리로 나누져 있지만 봉근리라고 하면 큰 봉근리를 가리키고, 동녘굴 붓당굴 안뜸 주막거리로 이루어진 한 50호가 사는 마을로 안뜸의 기와집을 가운데로 붓당굴의 셈과 기와집 옆의 셈이 있고, 마을 가운데의 들에 수심이 깊어 온 마을이 다 쓰는 셈 터가 있어서 이 셈 터가 마을의 소식을 주고 나누는 아낙네들이 입방아를 치는 셈 터가 되어 있다. 빨간 댕기를 나풀기며 손으로 번지는 물을 닦아 올리는 처자의 청신한 모습이나 하얀 소복인 아낙네가 능숙하게 물동이를 이고 가는 뒷모습에 마을 총각이나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던 안개 낌 박명(薄明)의 정겨운 시절! 대보름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민속의 잔치이다.
설날이 세배와 떡국이라면 대보름은 쥐불놀이와 집집마다 돌며 벽사축수(辟邪祝手)하는 풍물놀이다. 쥐불놀이는 음력 14일 저녁때에 하고 풍물놀이는 대보름날 아침부터 시작된다.
그때 언제이던가. 아마 8.15해방이 된 다음 해인 1946년 대 대보름 전날, 우리는 쥐불놀이 나서 이웃 동네 작은 봉근리 애들과 쥐불 싸움을 하기 위해 위풍도 당당하게 마을의 수호목인 쥐엄나무(느티나무) 앞을 각기 구멍 내고 숯불을 담은 깡통을 들고 전진을 했다. 논둑이나 똘둑[水路] 등 일 년 동안 자란 잔디에 쥐불을 노아 충해(蟲害)를 막고 대보름의 전야제를 여는 것이다.
“야 우린 다 내 보이면 안 되는 거야. 우린 다 보이지 말고 숨겼다가 가까이 가서 한꺼번에 깡통을 휘들면 되는 거다”
“그건 아니야. 처음부터 크게 보여야 기가 죽는 거지. 알겠니. 먼저 기를 죽여야 하는 거야.”
“그럼 다 숨기고 가다가 한꺼번에 내휘들면 그쪽이 기가 죽어 코가 남짝하게 될 거야.”
“우리가 수가 많으니 처음부터 다 휘내둘면서 가자! 가운데 있는 짚풀 사람에게 먼저 불을 질러야 하는거야.”
“자 말로 쥐불을 놓을 거야. 앞으로 가자!”
양쪽에서 둑과 똘둑에 쥐불을 놓으면서 들의 중앙으로 진출한다. 들판은 온통 쥐불로 불꽃을 이루었다. 모두 깡통을 휘내둘면서 들의 한가운데에 쌓아 놓은 짚단을 향해 달려가 거기에 쥐불을 내부으니 짚단이 훨훨 타올랐다.
“야야 호! 야 호”
“훨훨 타라! 자 마음속으로만 빌지 말고 크게 소리쳐……”
“자 등 넘어 가장머리 부자집 딸을 내게 주소서!……”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울리고 작약하듯이 들뛰었다.
"자 우리 봉근리가 편안과 복 된 나날을 누리게 축복을 나리소서!”
모두가 깡통을 휘내둘면서 마을의 아위와 축복을 축수했다.
“자 감자를 먹어야지, 막걸리도 내 놓고……”
짚단 속에 묻어 둔 감자를 꺼내고 막걸리를 더하여 쥐불노리의 절정에 이르러 들을 훤하게 비쳤다.
다음 대보름날은 젊은이들이 풍물을 치면서 집집마다 돌면서 벽사축수하게 된다.
“어서 나와요. 구 낭자!”
밖에서 재촉으로 법석이다. 아가씨로 변장하여 밖으로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와하는 소리가 나오고 그 가운데는 야 미인인데 라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나오자 풍물이 울리기 시작했다. 김이태의 꽤가리, 김태술의 징구, 구병도의 징
이기안의 북이 흥겹게 울리고 나도 소북을 흔들며 뒤를 따라갔다.
“야 저 처자가 누구여. 부자집 딸 같은데…….”
“야 춤도 잘 추네. 색시보다 더 색시 같은데…….”
“자 우리도 한바탕 놀아 볼가. 어서 나와요. 무엇들 하는거야. 같이 나가 공물을 받아야 할게 아닌가.”
상기가 앞장서서 풍물 앞에서 리드를 했다.
“여서 한바탕 놀고 공물을 듬뿍 받자구요”
꽹가리의 이태가 앞장섰다. 집집마다 풍물 오기를 기다리고 있섰다 쌀바가지 위에 촛불을 켜 놓거나 떡 접시를 받치는 등 정성스럽게 공물(供物)을 준비해놓고 풍물이 와서 풍물이 와서 벽사축수하기를 기다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이 댁에 옥황상제 축수를 내리시어 재물복과 건강복을 한꺼번에 축복해주기를 비나이다.
상기의 목청 좋은 소리에 풍물패가 신나게 농악을 울리어 그 가택의 만복을 빈다.
-어서 오서유, 이렇게 풍물패가 오니 집안이 화기(和氣) 가득하니, 자 어서 들어 와요.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우리 한 번 놀아 보세!
집주인이 내 놓는 공물을 받아 넣고는 신나게 풍물을 두들겨 대는데 이건 아니 놀고 못하렸다 한바탕 잔치가 벌어진다.
대보름은 이렇게 쥐불의 전야제와 벽사축수 하는 풍물놀이에 하루 그 오붓하고도 풍요로운 삶을 살찌게 한다.
문명의 발전으로 주로 세맨트가 뒤엉킨 아파트에서 사는 오늘의 도시인에게 대보름은 추억의 정겨움 속에 대보름달만이 훤하게 매연에 찌들인 아파트의 창가를 비친다.
- 16매
<농민무학>2008.4 여름호
* sysop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3-13 1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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