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하러 갑시다 / 김 경배
요즈음 나는 술을 자주 마신다 . 술이 없다면 내 삶은 어떨가! 훨씬 지루
할거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아니 술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때라고나 할까. 남편이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무렵이다. 집이 좁고 산만해 공부 안 된다며 근처에 있는
독서실을 다닐 때부터다. . 남편은 다섯 시 땡 하면 퇴근한다, 현관을 들어서 한
시간쯤 자고 나서 여섯 시에 저녁 먹고 책가방을 메고 독서실로 향했다. 기계같은 생활이었다. 구부정한 어깨에 무거운 책가방 메고 가는 남편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볼 때
마다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밤 열두 시쯤 되어 속이 출출할 때면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로 시장기를 때우곤 했다.
가끔 새벽 두 시 쫌 잠이 안 들었으면 나오라고 전화를 한다. 몹시 기다리던
전화다. 우리는 닭 모래집이나 뚝배기 조개탕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
그때는 술을 입에 넣으면 너무 써 마치 독약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찡그리지도 않고 잘 마셨다. 나는 한 손에 안주를 들고 술을 입에 넣고 얼른
안주를 삼켰다.. 쓴맛을 없애려고.
때로는 남편이 술을 덜 마시게 하기 위해 탁자 밑에 몰래 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해 십여 년이 지나 나의 주량은 야금야금 늘어갔다.. 1990년 8월
며느리를 맞이했다.. 부산이 직장인 남편은 금요일에 왔다가 월요일 아침에
내려간다. 남편이 오는 날은 술 마시는 날이다. 둥근 상에 안주가 준비되고
아들과 며느리는 맥주를 우리는 소주를 마셨다 우리 식구는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며느리는 이런 시간을
즐거워했다.
그 시절 베란다에 쌓인 술병을 본 이웃들은 놀라곤 했다. 지금 초등학교 이 학년
인 손녀는 "찡 건배"라는 말을 제일먼저 배웠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할 때 외가
집에 가서 "찡 건배 찡 건배"라 하여 외할머니가 "혜집이가 벌써 징글벨을
부른다"며 감탄해서, 며느리는 웃으며 집에서 술 마실 때 술잔 부딪치며 위치는
소리라고 했다.
하는 소리라고 했단다. 우리 가족은 첫 잔을 마실 때는 "찡 건배" 하며 술잔을
들었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우리를 보러온다. 일층인 우리 집에서 밖을 내다보면 차에서
내려 뛰어오는 손녀들이 눈에 들어온다. 맨발로 뛰어나가 앞선 아이부터 포옹 하
고 뽀뽀한다. 남편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저녁에 술 마시는 시간이
늦어지면, 특히 통닭을 즐기는 큰손녀는 "찡 건배 안 해요" 재촉한다.
통닭을 시키고 아이들 잔에는 음료수를
가득 부어주고 우리는 찡 건배를 시작한다. 이게 내 삶의 즐거움이다..
지난 해 추석 전후 남편은 담석 수술 후 의료 사고로 집중치료실(중환자실)에
이십 일간 입원해 있었다. 주치의사 나 간호사들은 '살아날 확률은 10%의 도 없다고'들 했다.
하루에 두 번 있는 면회시간이 아닐 때 하얀 까 운 입은 의사나 간호사가 누구누구 보호자를
부르면 거의가 다 그 환자들은 영안실로 내려갔다. 나는 물 한 모금 마시기도
힘들고 가슴이 뛰고 답답하여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며 중환자실 밖에서
서성였다. 있었다. 그때 남편의 제자가 찾아와서 "무얼 드셔야지요"하며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사준 순두부와 소주가 나를 기운을 돋아주었다.
우리 부부와 친하게 지내는 남편의 후배는 결혼할 때 여자 쪽 부모들의 반대가
심해 개종까지 하며 어렵게 아내를 얻었는데, 이십 여 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소
닭 보듯'하고 산다고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말한다 그 부부도 술을 마셨다면
그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 해 본다.. 우리는 사랑하는 지조차 모르며
결혼했다. 고집이 세어서 서로 지지 않으려는 성격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모자라는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생활 삼십 칠 년을 살았고 앞으로
누가 먼저 죽는 날까지 지속될 것이다. 나는 우리 부부 37년을 술이 지탱 해온 것
같다.
술상 앞에 앉아 다툴 때도 더러는 있었지만 그 싸움을 풀어주는 것은 언제나
술이다. 화해하고 하하대며 즐거웠던 때가 훨씬 더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 부부는 취미가 서로 다르다 남편은 식사만 하면
컴퓨터 앞이나 책상 앞에 앉아 연구에 몰두하고, 나는 여기저기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고...... 우리가 부부라고 인식 시켜 주는 것은 술이다. 신의 도움으로
남편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99년 3월부터 다시 강단에 섰다.
요즈음도 부산에서 서울을 오르내리며 시간 나는 대로 술을 사주는 일만은 잊지
않았다. 포장마차에서 얼큰하게 술 마시고 남편과 팔장을 끼고 흘러간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올 때 나는 행복하다. 또 넓은 아파트에 혼자남아 남편이
돌아올 금요일을 기다리며 테례비젼 앞에서 술을 마신다. 내가 즐겨보는 연속극도 재미
있고 배경 음악소리도 더욱 듣기 좋다. 나는 이런 시간을 음미하며 즐긴다.
구두쇠인 남편이지만 이런 나를 위해 집에 소주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십이
넘었으면서도 여자들은 왜 술 마시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 할 가? 안 마시는 것
이 요조숙녀인 듯 고개를 돌리며 "못 마셔요"할 때 나는 그들에게서 이질감을
느끼다.
내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중년의 탈렌트가 있다. 어느
날 아침 마당에 나와 자기는 소주를 잘 마시며 얼큰하게 취하면 노래도 잘
부른다, 고 했다. 나는 지금 그 여자의 팬이 되었다.
오늘도 남편은 "한 잔 하러 갑시다" 하며 서재를 나온다.
* sysop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9-28 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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