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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벌레 엄마
鄭 木 日
감 벌레를 ‘엄마’라고 부르며 자라서 화가가 된 여인이 있었다.
ㄴ은 소녀 시절에 감 벌레를 ‘엄마’라고 불렀다.
일찍 어머니와 헤어진 ㄴ은 산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며 성장했다.
동네 아이들과 은밀히 모이는 곳은 마을 뒷산의 감나무 아래였다.
감꽃, 감, 홍시는 아이들에게 더 없이 좋은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ㄴ에게는 어머니가 없었다. 아이들이 다들 집으로 돌아가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곤 했다.
그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엄마였고 한 번이라도 불러 보고 싶은 말이었다.
입 밖으로 한 번이라도 부를 수 없음이 가슴을 쓰리게 만들었다.
아이들 입에서 어머니라는 말만 나와도 ㄴ은 기가 죽었다.
외로울 때나 슬플 때, 찾아가는 곳은 감나무 밑이었다.
봄이면 감꽃, 여름이면 풋감이 떨어져 있었다.
ㄴ은 감꽃을 주워 먹기도 했지만,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다.
풋감은 떫은 맛 때문에 그대로 먹기 어려워, 단지 속에 넣어두었다가 먹었다.
감을 익히고 맛을 내는 기간을 기다리는 재미를 알았다.
풋감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주무르다 보면 말랑말랑해져 떫고 쓴맛이 가라앉았다.
어느 날 혼자서 감나무 밑으로 갔다.
감 몇 개를 주워 주물럭거리고 있는데, 감에 작은 구멍이나 있는 걸 발견했다.
감 구멍에서 벌레가 꾸물거리며 기어 나왔다. ㄴ은 “어머나!”하며 놀랐다.
뒤이어서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이 “엄마”였다.
“엄마-”
“엄마-”
소녀는 감 벌레를 ‘엄마’라고 불렀다.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 나온 이 한마디에 눈물이 고이고,
‘엄마’라고 부를 대상이 생기게 된 것이 고맙기만 했다.
감 벌레는 소녀에게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그리움의 파도가 밀려와 견딜 수 없을 때는
쏜살처럼 뛰어서 뒷산 감나무 곁으로 갔다. 엄마를 부르기 위해서이다.
아무도 몰래 감나무 밑에서 엄마를 만났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이었다.
오늘 있었던 얘기, 평소에 말하고 싶었던 일들을 풋감 구멍을 들여다보면서 쏟아내었다.
감 벌레 엄마가 나오길 기다렸다. 소녀의 눈에 눈물이 흘렀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어리광을 피우며 떼를 쓰기도 했다.
ㄴ은 자신을 삐뚤어지지 않고 잘 키워준 것은 감 벌레 엄마 덕분이라고 했다.
어른이 되고 자식을 낳은 지금에도 고향에 가면 제일 먼저 뒷산 감나무 곁으로 가서,
한참동안 ‘엄마, 어디 있어?’하고 불러 본다. 감꽃 향기를 맡으며,
풋감을 만지작거리며 엄마와 만난다.
남들은 기겁을 하는 ‘감 벌레 엄마’가 있어, 그 비밀이 힘이 되어서 씩씩한 소녀로 자라게 해주었다.
누구나 부르고 싶은 말을 자신만은 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바닷가로 가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철썩거리는 파도를 보면서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을 본 일이 있다.
내 아내는 어릴 적에 어머니와 이별하여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
평생 동안 “‘엄마”라고 불러보지 못한 채 가슴을 앓고 있을 뿐이다.
나도 언제 ‘엄마’라고 불러 보았는지 까마득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좋아하시던 나팔꽃을 보면
‘엄마, 잘 계시는지요?’ 먼 하늘 바라보며 인사를 건넨다.
‘엄마’라는 마르지 않는 영원한 사랑의 샘이 있어서 이 세상은 정답고 아름답다.
감꽃 벌레는 아니지만,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돼 준 사람들이 있다.
고아원 보모, 부모 잃은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어머니들이다.
ㄴ의 얘기를 듣고 보니, 누구라도 가장 그립고 소중한 이름이 될 수도 있다.
감 벌레도 엄마가 돼 한 소녀를 화가로 길러내지 않았는가.
감벌레를 ‘엄마’라고 부른 화가의 눈이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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