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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자(2016-12-27 13:55:28, Hit : 665, Vote : 102
 돌때미골의 겨울나기

              
                   돌때미골의 겨울나기
                              

  며칠째 혹한이 기승을 부린다. 하얗게 쌓인 눈을 밟고 저물녘에 개밥을 주고 온 나의 발자국에 다음날 아침 또 눈이 덮였다. 예년에 없이 밖의 주방에서도 수세미가 꽁꽁 얼어붙고 손이 시리다. 65년만의 2월 추위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집안에만 갇혀 사는 난, 요 며칠 먼저 가신 영감이 자꾸만 생각난다. 5년하고도 반년이 지났으니 잊을 만도 한데 갈 수 록 더 그리워진다.
  홀로 남은 나에게 추억어린 지난날은 간데없고 잘해드리지 못한 자책들만 내 가슴을 저민다. 멋모르고 보낸 지난 세월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안타까움에 아이들같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싶어진다. 웬 청승인가 싶어  TV를 켠다. 역시 내가 즐겨보는 동물농장, 애니멀 채넬이다. 화면에 나오는 뱀이나 큰 구렁이 보기가 징그럽지만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화면을 본다. 하는 일 없이 해가 바뀌고 한 달이 지났는데 지난해의 결산도 손대지 못하고 있다.
  
내가 사는 이곳은 시내버스가 하루에 한 번씩만 오고가는 당진시의 변두리산골이다. 그 시내버스 앞 유리에는 “돌때미”라는 표식이 붙어있다. 돌때미의 유래는 고려 말 공민왕 때 “석거설”이라는 충신이 어쩌다 이곳에 낙향하게 되었다. 그는 아들과 함께 땔나무를 해서 저자거리에 내다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산위에서 아버지는 산 아래서 나무를 하다 아들이 그만 큰 돌을 건드려 아래로 굴러가기에 “아버지 돌 굴러 가유”했으나 이미 돌은 아버지를 덮치고 말았다. 아들은 내려와서 돌을 밀쳐보았으나 꼼짝도 않기에 마을을 행해 “사람 살려”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돌을 밀쳐내었다. 아들이 죽은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한 손으로 그 돌을 두드리며 이 돌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통곡하니 마을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오늘날까지 이 고장을 “돌때미 골”이라 불러 오고 있단다. 오늘은 아버지를 도와 나무하던 효자가 부럽다. 그 효자를 기리는 이 산골에 살면서 새삼스럽게 돌때미의 유래를 곱씹어본다.
  이 동네에서 내가 다니는 교회는 서울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답고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현대식 건물이다. 요즈음은 나도 죽기 전에 성경일독을 해야 한다며 자주 성경을 펼쳐서 공부한다. 구약을 차례로 읽다 잠언과 전도서로 뛰어넘다가 이 겨울 다시 신약부터 읽기 시작한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일본어 성경을 참고하며 함께 읽어가기도 한다. 자주 나오는 “외식하는 자여”는 한글로만 보면 쉽게 이해가 안 되는데 일본어 선경에 한자로 “위선자여”로 되어 있어 쉽게 이해가 된다.
  작년에 딸이 사다준 이어령씨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도 성경을 읽어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어제 밤늦게는 우연히 돌린 TV에서 이어령씨가 진행하는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강의를 잠깐 듣게 되었다. 해박한 지식과 듣기만 하여도 녹아드는 문학의 깊은 경지와 조예. 여러 나라 언어에 통달하셨으면서도 남다른 우리말 사랑, 이런 훌륭한 분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도 축복받은 일이다.
  나는 늘 몇 대가 살아온 오래된 고옥에서 조상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나온 것을 부러워했다. 사변 통에 월남하고 아파트를 전전하며 살다보니 내겐 이렇다 할 물건이라곤 없다. 그러나 지금 나는 영원한 소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다. 모든 것은 그저 스쳐가는 것 일뿐, 부질없는 집착일랑 벗어버리자. 성경에 토를 달지 말고 성령의 은혜를 받기만을 간구하자. 스스로 다짐한다.

  하얀 눈 위에 햇살이 눈부시다. 흰 눈 위에 큰 소나무 그림자가 드리우고 산으로 올라가는 저 멀리보이는 내리막길에는 나란히 선 가이즈카 향나무의 그림자가 철로의 침목같이 가지런하다. 이 추위가 오기 전만해도 입춘이 가까워 봄기운이 감돌았는데 땅은 다시 얼어붙었다. 오늘은 다행히 바람이 없어 날씨가 좀 풀리는 것 같다. 개 밥그릇과 함께 놓은 물그릇도 가장자리가 녹아 얼음이 그릇에 둥둥 떠 있다.
  머지않아 이 산골에도 봄은 오겠지. 이 추위가 가면 나무 전정도 시작하고 봄맞이를 하자. 건강이 허락 되어 이렇게 봄을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2012. 2. 4)
김윤자 수필가 약력

만주 용정에서 태어남

함경남도 함흥시 만세리에서 성장

함흥영정소학교, 함남공립고등여학교 졸업

평양사범대학 조선어문과 재학중 6.25 사면

2011년 <창작수필>로 등단

(사)창작수필 문인회 회원

수필집: <돌때미골의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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