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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승희(2016-12-27 13:43:29, Hit : 632, Vote : 101
 좌절이 주는 것

              좌절의 날에

                                           오 승 희

2006년 월드컵이 독일에서 열렸다. 2002년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다짐하며 우리선수들 24명도 장도에 올랐다.
우리는 16강의 첫 관문인 토고를 2:1로 제치고 우승을 넘보는 프랑스와 1:1로 비겼다. 물고 물리는 조 예선에서 스위스를 반드시 이계야 16강에 진출 할 수 있게 되었다. 경기는 새벽 4시에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잠을 설치며 기다렸다. 숨 막히는 90분간의 대결에서 우리는 어이없게 2:0으로 패했다. 온 힘을 다해 뛰었던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았고 세상이 뒤집힐 듯 대---한민국을 외치던 붉은 악마들은 망연자실 입을 다물었다. 숨을 죽이고 TV를 보던 우리식구들도 순간 온 몸에서 힘이 빠지는 허탈감을 주체하지 못했다. 얼마만큼은 자신하던 16강 진출이 이렇게 무참히 좌절되고 말았다. 오늘을 위해서 4년을 열심히 준비했을 선수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서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도 코끝이 시큰하다. 언제나 힘이 되어주던 국민들의 열화 같은 성원이 이제는 가시가 되여 온몸을 찌르는 것 같으리라.
“누가 잘못했어, 심판이 틀렸어, 그만하면 잘했어” 이런 저런 말들을 하지만 지금 선수들 귀에 무슨 말이 들리며 무슨 위안이 되겠는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의 시위를 떠난 화살은 과녁을 빗나갔다. 안타까움, 아쉬움, 분노, 허탈, 어떤 말이 참담한 좌절감을 대신하겠는가. 어쨌든 시합은 끝났고 우리는 졌다.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좌절을 겪는다. 입학시험에서 낙방하고, 취업전선에서 밀려나고, 열심히 쌓아올렸던 사업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평생직업이라 생각했던 직장에서 퇴출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히기도 한다.  월드 컵 조별 예선이 끝나고 공정하지 못했던 심판 판정에 대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박지성 선수는 심판의 판정도 축구의 한 부분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오직 공을 차서 골대에 넣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살얼음판 같은 세계에서 많은 좌절을 경험하고 그만큼 성숙한 선수의 말이라 신뢰가 간다. 아픈 만큼 성숙하고, 부러진 뼈는 더욱 단단하게 붙는다 하던가. 한번 잘못은 병가지상사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지만 정작 당사자가 되고 보면 결과에 순응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해던가 봄내 여름내 애써 가꾼 곡식을 느닷없이 덮친 태풍에 모조리 빼앗긴 농부가 폐허가 되어버린 들판에 서서 거뭇거뭇 썩어가는 벼 포기를 이리저리 쓸어보고 있었다. “기운을 내세요” 허망하기 짝이 없는 말로 위로를 하는 사람에게 “하늘이 하는 짓을 어쩌겠소” 하며 허탈한 웃음을 띠던 농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태풍은 몰려왔다. 많은 사람들의 공든 탑이 헐리고, 살아갈 터전이 쓸려버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세상이 떠들썩하던 월드컵은 끝이 났고 태풍도 지나갔다. 무섭게 요동치던 바다도 잔잔하고 조용해졌다. 세찬 비바람에 씻긴 세상은 멀끔하다. 다시 떠오른 태양은 눈부시게 찬란하고 찬란한 만큼 태양은 허허롭다. 승자와 패자는 가려졌고 좌절과 절망도 환희와 기쁨도 각자의 몫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시 시작이다. 깊숙이 긁힌 상처는 흔적이야 남겠지만 차츰 아물 것이고 하늘을 찌를 것 같던 환희와 기쁨도 얼마안가 여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결국 사람은 실망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면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지혜를 터득한다.
나 역시 이날까지 많은 시련을 겪으며 살아왔다. 가난을 벗어나려 부지런도 떨어보았고 편편치 않은 운명과 맞서 기죽지 않으려고 어깨에 힘도 주어 보았다. 하지만 황혼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궁핍을 떨어내지 못했고, 지난 세월의 어느 한 자락도 내 마음에 흡족한 구석은 없다.
긴긴 방황과 갈등 끝에 마지막으로 신앙에 의지해 도달한 결론은, 자빠져 코가 깨져도 다시 일어나 뛰어야하고, 판정은 전적으로 심판하는 이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불평과 불만으로 씩씩거려 봐야 자신만 초라해 질뿐이다.
눈의 가시를 뽑아 달라는 사도 바울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고 답하셨다. 나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순종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으나 나는 섭섭해서 가끔 혼자서 운다.
울면서 스스로에게 다짐 한다.  자빠져서 코가 깨졌어도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2006. 7.
2005년 에세이스트로 등단
한국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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