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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자(2016-12-27 13:57:02, Hit : 628, Vote : 92
 생활의 변천

                 생활의 변천 - 김윤자
                                              

  지금과 같이 살기 좋은 세상에도 젊은이들은 불평이 많고 불만이 많다. 너무나 좋은 편의시설과 넘쳐나는 상품 속에서도 감사함이 없다. 우리가 잘 살 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다.
  불과 40여 년 전의 일들인데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운 격세지감이다. 1년에 몇 번씩 이사 다니며 남의 집 문간방을 전전하다 하왕십리에 작은 집 한 채를 겨우 샀다. 방 둘, 마루 하나짜리였는데 마루에는 미닫이도 없었고 수도는 부엌과 떨어진 옆집과의 담 밑에 있었다. 부엌바닥은 흙으로 다져져 있었고 설거지한 물은 디딤돌을 딛고 문지방을 넘어 수돗가 하수구에 버려야 했다. 뒷간은 마당을 가로 지른 구석에 허름한 판자문으로 가려있었다. 그러나 처음 갖는 내 집은 어느 고대광실 높은 집이 부럽지 않았다.
  몇 년 후 불광동으로 이사 갔다. 산을 깎아 지은 고지대라 물 안 나오는 날이 많았다. 물차가 오는 날이면 줄지어 받아 지게를 지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날랐다. 집안에 화장실은 있었지만 수세식은 아니었고 긴 손잡이가 달린 뚜껑을 변기에 덮어가며 쓰고 있었다. 욕실에 타일을 붙인 욕조는 있었는데 여름에 물이나 받아 쓸 뿐 겨울에는 추워서 더운물 갖고 세수하러 들어가기도 끔찍하였다. 방마다 돌아가며 연탄을 지피니 추운겨울에는 연탄을 하루에 열 개나 갈아야했다. 그러니 한밤중에도 혹시나 하는 연탄 사고가 염려되어 꼭 아이들 방을 열어 보아야 했다.

  아프리카의 대서양쪽에 있는 나라 ‘적도기니’ 전 대통령의 딸이 일곱 살에 북한에 와 16년간 망명생활을 한 기사가 조선일보 Why에 났다. 그녀가 북한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김일성은 거친 자본주의 세상에 어떻게 살아가겠느냐고 걱정해 주었지만 전 꿋꿋하게 잘 삽니다”가 큰 제목이었다. 나는 그녀가 살아오고 살아가는 이야기보다 그녀가 북한에서 몸담고 있었다는 귀족학교 ‘만경대 혁명학원’에 더 관심이 갔다.
  6․25 바로 전해 아주 추운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6명이 함께 쓰는 기숙사 우리 방에 룸메이트의 조카가 찾아왔다. 바로 만경대 혁명유가족학원에 다니는 그 남자 아이는 입은 교복부터 차림새가 달랐다. 그런데 언제나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의 수돗물로 겨우 세수나 하는 우리에게 자기네 기숙사의 수도꼭지에서는 더운 물이 나온다고 하였다. 상상도 할 수 없던 그 한마디를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향집에 있을 때는 언제나 어머니가 데워주시는 큰 가마솥의 더운 물을 쓰고 자랐지만 어떻게 수도꼭지에서 더운 물이 나올 수 있을까? 너무나 꿈같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김일성은 거친 자본주의라고 하였지만 그 곳에 살고 있던 우리들은 숨이 콱콱 막히는 통제사회였다. 거주지도 옮길 수 없고 여행도 허락되지 않았다. 세 사람만 모이면 반드시 한명은 감시하는 일을 맡았다. 연초가 되면 주민은 부역 일수부터 할당받았다. 대학에서도 악기를 다루는 학과만 제외하고 삽질이나 흙 파는 일과 돌을 싣는 일에 내몰렸다. 자퇴도 허용되지 않았고 휴학하는 반년 사이에도 부역은 거주지로 할당되었다. 자주 갖는 자기비판에 무슨 보고대회니 궐기대회니 이름도 가지가지인 대회는 잠시도 개인적인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요즈음 동물원의 동물도 관객을 위한 훈련을 혹독하다고 중지하는데 실로 꿈도 희망도 없는 노예와 같은 생활이었다.

  요즈음 또 다시 시국이 시끄럽다. 처음 찾은 행운의 산업화를 독재니 탄압이니 공포와 압제라고 매도한다. 하지만 5000년 역사의 어느 위정자가 백성을 이렇게 급속도로 편하고 잘 살게 해주었던가.
어느새 좁은 시골 길이라도 모두 포장되어있다. 지난날 눈 녹는 봄날의 마을길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온통 진흙바닥이었다. 전화가 없어 연락이 닿지 않던 일, 땀 흘리고 일한 뒤의 얼음물이 간절하던 시골동네였다. 그러나 지금은 산골 어느 오지에가도 씽크대가 달린 입식 주방에다 세탁기에 진공청소기, 수세식 화장실에 욕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나는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아와서 이 편한 세상이 더 없이 고맙고 이런 좋은 세상을 살고 간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간다.

                                         (2013. 11. 28)






좌절이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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