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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자(2016-12-27 13:58:39, Hit : 624, Vote : 102
 성천강 이야기


           성천강 이야기 - 김윤자
                                            
  떠나온 고향의 산천은 세월이 가도 언제나 내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만 남아있다. 성천강은 함흥시가지 서쪽에 있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큰 강이다.  그 강에 동서로 놓인 만세교는 음력 정월 보름에 이 다리를 밟으면 오래 산다고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다리 밟기’를 하였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는 추운 날씨여서 떠나온 지 60여 년이 넘어도 지금은 몹시 추웠던 기억만 난다.
만세교가 있는 상류 쪽은 물살도 세고 물도 깊어 콘크리트로 높은 옹벽이 처져있지만 좀 더 내려간 강둑에는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철망에 돌을 담아 비스듬히 쭉 누여놓았다. 그 아래 물가는 납작한 돌들을 주어 다 놓은 아낙네들의 빨래터가 되어 있다.
왜정 때 칠월칠석 해질 무렵에는 함흥에 살던 일본사람들이 그 강에 음식을 차려와 띄워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가지각색 음식을 야트막한 상자에 예쁘게 담아서 양초에 불을 부쳐 물 위에 띄운다. 강바람에 양초는 가물가물 흔들리며 떠내려가는데 그들이 합장을 하노라면, 어느새 젊은 청년들이 물에 뛰어들어 건져 오곤 하였다. 먹을거리로 국이나 찌개 밖에 모르던 그 당시 우리들에게 그것은 꿈이 어린 생소하고 예쁜 음식들이었다.
만세교 다리 밑 깊은 물에는 1년에 한두 번은 꼭 익사사고가 났다. 거적을 덮은 아들 시체 옆에서 통곡하던 중년 여인의 모습도 잊혀 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성천강 하류 쪽 모래사장에는 종종 굿판이 벌어지곤 했다. 넓은 모래밭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무당이 춤추는 것을 구경하였다. 동네 아이들과 함께 간 우리들은, 끈기 없이 뚝뚝 부러지는 좁쌀로 빚은 개떡을 어찌나 맛있게 얻어먹었던지….
그 강의 모래밭에 흰 삶은 빨래를 바래던 일도 잊을 수가 없다. 식구들이 덮던 이불 호청이며 아버지가 입던 여러 벌의 옥양목 흰 저고리들은 뜯어서 등판, 소매, 옷고름을 제각각 꿰매어 잿물에 삶아와 헹구었다. 그리고 모래사장의 흐르는 물 가까이서 볕에 바래기 위해 널어놓았다. 이렇게 씻은 빨래들은 훗날 다시 쌀풀을 먹여 말라가면 꼭꼭 밟아서 다듬질을 한다. 그리고  몇날 며칠 어머니는 아버지 옷을 다시 만들었다. 화로 불에 인두를 꼽고 깃이나 앞섶을 눌러가며 바느질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서언하다. 어머니 옆에는 아버지의 만들어진 흰 저고리가 수북이 쌓여갔다. 하얀 빨래와 연상되는 지난날 어머니의 고된 생활이 애처롭고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의 종아리에도 못 미치는 강물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아른거리고, 물살이 흐르면서 낸 강바닥의 모래 무늬를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고무신을 벗어든 우리들은 송사리를 잡는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았다. 해를 가린 우산 밑에 쉬면서 우물도 파고  빨래가 말라가면 흰 빨래가 해 볕에 잘 바래라고 물도 끼얹었다. 느닷없이 바람이 불어 널어놓은 빨래가 물에 떠내려가면 집어와 다시 널고 물을 끼얹었다. 온종일 햇볕에 널어놓은 빨래를 지키고 있노라면 해질 무렵 어머니와 할머니가 오셔서 깨끗이 헹구어 나무함지에 이고 가신다. 우리는 강둑을 거슬러 한참을 가다가 지름길로 가기위해, 서함흥역에서 오로리로 가는 철로를 넘어야했다. 좌우를 살피다 기차가 안 오면 철길 통행을 막으려고 친 허술한 철조망을 얼른 들치고 철길를 가로지른다. 그 철로를 넘으면 저만치 아래에는 둥글게 콘크리트를 찍어 만든 두레박 우물이 있었고, 철로 밑 주변의 잡초 속에는 가을이면 빨갛게 익어가는 꽈리가 있었다.
  3.1운동 후 고향을 떠나 평생을 독일에서 살다 가신 이미륵씨가 쓴〈압록강은 흐른다〉의 말미에 길가다 이웃집 들창 밑의 꽈리를 보고 고향을 본 것 같다던 그 분의 애잔한 마음에 나도 내 고향의 철둑 밑 꽈리가 생각나 얼마나 그 책에 감회가 깊었던가.

성천강은 해질 무렵 수려한 산그늘이 드리우는 멋진 강은 아니다. 그 강에 놓인 만세교도 크고 긴 다리었다고 기억하였는데, 얼마 전 동창회에 들고 온 사진을 보니 교각도 엉성하고 초라하기만 했다. 하기야 요즈음 고도로 발달한 공법으로 만들어진 이 나라의 아름다운 다리에 비할 수는 없겠지.
그러나 그 곳이 비록 보잘 것 없고 누추한 곳일지라도 내가 자란 고향은  죽기 전에는 잊을 수가 없나 보다. 태어나 자란 곳을 그리는 정감은 누구나 다를 바 없거늘, 고향을 지척에 두고 내 고향의 산하를 밟아보지 못하고 떠나게 될 것 같아 서글프기 그지없다.              (2011. 2. 19)


김윤자 수필가 약력

만주 용정에서 태어남

함경남도 함흥시 만세리에서 성장

함흥영정소학교, 함남공립고등여학교 졸업

평양사범대학 조선어문과 재학중 6.25 사면

2011년 <창작수필>로 등단

(사)창작수필 문인회 회원

수필집: <돌때미골의 겨울나기>)






세상 속의 수도원을 꿈꾸며
도월화의 수필 세계 / 鄭木日수필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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