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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자(2016-11-12 05:05:46, Hit : 668, Vote : 98
 면도기와 하이든

면도기와 하이든
                  / 유혜자  

“사고(思考)는 수염 같은 것이어서 성장하기 전까지는 생기지 않는다”는 볼테에르의 말이 있다. 프랑스의 까세라는 만화가가 이 말을 알았던지 지각없이 행동하는 수상(首相)의 얼굴에 부채꼴의 수염을 그려 넣었다. 수염을 기르지 않던 수상이 그 이유를 묻자 만화가는 “부채가 없는 것보다는 시원해 보이지 않습니까”고 대답했다고 한다.  

음악가 중에도 브람스는 길게 기른 턱수염으로 넥타이 없는 앞가슴을 가리고 다녔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준다고 했을 때 수염도 말쑥하게 손질하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지라 거절을 했다. 그런가 하면 ‘교향곡의 아버지’인 하이든은 턱이 말끔한 사진만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수염이 자라기 전에 부지런히 면도를 했던 것 같다.  

하이든은 30여 년 동안 헝가리 에스테르하지 가(家) 악단의 지휘자로 많은 작품도 쓰고 안정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음악을 좋아한 주인 니콜라우스 후작이 돌아가자 악단이 해체되어 빈으로 돌아와서 쉬고 있었다. 마침 런던에서 연주회장을 경영하던 흥행사 잘로몬은 평소에 숭배하던 하이든을 찾아갔다. 높은 작품료의 작품을 쓰면서 자작곡을 지휘해달라면서 영국으로 초청하려고 했다.  

거의 1년에 걸친 잘로몬의 끈질긴 권유에도 모처럼 고향에서 친구들과 편안한 생활에 젖은 하이든(Haydn, Franz Joseph 1732-1809)은 런던 행을 거듭 거절했다. 삼라만상은 변화하는 것, 나이 예순이 가까운 하이든도 변화를 두려워했고 인정이 다른 영국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나 보다.

이런 하이든의 마음을 잡아끈 것은 최신식 면도기였다. 어느 날 아침 하이든은 잘로몬이 신기한 면도기로 수염을 쉽게 깎는 것을 보고 그 면도기를 너무 갖고 싶어했다. 잘로몬은 하이든에게 “영국에 가면 이 물건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면서 설득했다고 한다.  

영국에 건너간 이유야 어떻든 하이든은 1차 방문한 1791년과 1792년 사이에 제93-98번의 교향곡들을 작곡, 지휘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 교향곡들과 1794년 2차 영국을 방문해서 작곡한 교향곡 99번-104번까지를 <잘로몬 교향곡>이라 부른다. 영국에서의 작곡과 연주는 수입도 컸지만 뛰어난 <잘로몬교향곡>을 낳게 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음악박사 칭호까지 받게 한 것이다.  

에스테르하지에서 하이든은 온화하고 자상해서 악단원들을 감싸고, 인간적인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해서 도왔기에 ‘파파 하이든’으로 불릴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 에스테르하지 악단에 있을 때, 후작이 오래 동안 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지 않아 불평이 많았다. 후작에게 직접 건의하고 요구해도 반응이 없자 하이든은 꾀를 내었다. 후일 ‘고별’이라는 별칭이 붙은 교향곡을 작곡하기로 했다. 이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악단원들이 악기별로 자기 연주부분이 끝나면 차례로 퇴장하고 마지막에는 끝 부분을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와 지휘자만 남게 만들었다. 이 연주를 보고 후작으로 하여금 이 퇴장에 담긴 우의(寓意)를 알아채도록 한 것이다. 결국 간절한 뜻이 담긴 이 음악으로 단원들은 휴가를 얻게 되었다.  

잘로몬 교향곡 중에도 ‘놀람’이라는 별칭과 함께 재미있는 일화가 알려진 교향곡94번이 있다. 재치 있고 유머가 풍부했던 하이든은 ‘고별’에서의 성과로 자신을 얻어, 94번 교향곡에서 연주회장에서 끄덕끄덕 조는 귀부인들을 놀래줄 구상을 했다. 그래서 조용한 2악장에서 경쾌하고 조용한 현악기의 연주가 29초쯤 흐르다가 난데없이 팀파니가 큰 소리로 터져 나오게 했다. 이 부분에서는, 영락없이 졸던 귀부인들이 놀라 잠에서 깨어나 시침을 떼고 똑바로 앉았다는 것이다.  

단원들을 아끼고 사람들에게 친화력이 높았던 하이든이지만 가발업자의 딸인 켈러와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음악에 소양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부인, 그 여인은 남편이 작곡메모를 해놓은 종이를 가위로 잘라서 파머할 때 머리칼을 마는데 쓸 정도로 무지했다니 감정도 대화도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인의 협조가 불가능해서였는지 하이든은 집안에서보다도 에스테르하지 성벽 바깥에 맑은 호수와 정원이 있는 작은 작업실을 마련하여 거기서 주로 생활하고 작품을 썼다. 새소리와 자연이 빚어내는 호흡과 소리에 영감을 얻어 밝고 경쾌한 음악들을 많이 쓴 그가 상쾌하게 잠에서 깨어났을 때 더부룩한 수염으로는 아름다운 악상을 적어나갈 수가 없었던가. 머리도 단정하게 빗어 넘긴 사진으로 보아 깔끔한 성격이었을 그가 면도할 때마다 더욱 편리한 것을 구하고 싶었으리라.  

중요한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은 수염은 물론 손톱도 안 깎는 등 금기사항들이 있다고 한다. 깊은 신앙심으로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을 하이든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귀족들의 기호에 맞는 음악보다는 온 인류가 애호하여 영원히 남을 예술적인 음악을 만들려 했던 하이든. 그는 머나먼 미래를 추구했다. 그의 음악 혼은 맑은 물방울을 튀기며 날아오른 파란 물새가 나는 곳으로 따라오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면도를 끝낸 상쾌함으로 활달하게 써 내려간 그의 실내악이나 교향곡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산뜻하고 시원한 오 데 콜론 내음이 풍겨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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