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여름 밤 꿈의 제전
(채홍) 이 영 숙
예로부터 사람은 죽어도 혼만은 떠돈다고 믿어왔다.
육신은 허물어져 땅으로 돌아가 흙이 되어도 넋은 가장 높은 하늘의 천체에 있다고 여겨 왔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선 그런 넋을 위로하고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재齋를 올린다. 불가에서 지내는 제사를 재계할 齋자를 써서 ‘재’라 하고,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는 제사祭자를 써서 ‘제’라 한다.
가신님이 편안하게 극락세계로 안착하도록 큰 스님들이 모여 불경을 독송하며 불공을 드린다. 장엄한 색깔-회색장삼을 입고 물빛 고운 빨강가사를 걸치고 머리엔 하얀 고깔을 써서 장식하고 양손에 바라를 들고 춤을 추니 엄숙하기 그지없다.
보통 사람이 죽으면 사십구일 동안 염라대왕 앞에 불려가 재판을 받는다고 전해 들었다. 생각건대 살아생전 어떤 삶을 어떤 방법으로 살았는지를 점호 받고 저승생활이 시작 되는 것이 아닐까.
죄를 얼마만큼 지었고 착한 일은 얼마나 했는지, 형제간의 우애는 어땠는지 부모에게는 효도를 다했는지를, 내신점수로 평가 받는 기간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간 날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일곱 번의 불공을 드리며 연화대로 보내 주십사하고 그토록 간절한 기도를 자식들이 49일 동안 하는 것이다.
가신임을 위하여 천도를 하는 것이다. ‘천도재’는 죽은 사람의 혼령이 극락세계로 가도록 기원하는 일이다. 외롭고 억울한 영혼에게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행위로서 이를 통해 맑고 투명한 파동으로 영혼의 탁한 파동을 제거해 주는 의식이다.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도 보이지 않는 혼백을 달래는 의식이다. 육신은 썩어서 흙으로, 재로 없어졌지만 영혼만은 늘 존재한다고 믿어서다. 살아있을 때와 달리 의견을 나눌 수는 없어도 살아 있다는 가정 하에 음식을 차려 놓고 흠향키를 원하고, 나를 포함하여 자손의 안녕을 빌어보는 것이다.
몇 해 전 남산에 위치한 국립극장 뜰 앞마당에 ‘하늘극장’이 열렸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애국선열들을 위하는 현충재顯忠齋를 열린 공간에서 많은 관람객이 보는 가운데 열리는 곳이었다. 사십구재보다 더 큰 재다.
현충재는 우국충절과 무명용사님들이 다 살고 가지 못한 혼을 기리며 이 땅에 강림하도록 정성을 다해 성심껏 차린 제수로 흠향함을 기원하는 공연이었다. 그간의 고통을 일체의 악업에서 모두 소멸되도록 선근공덕善根功德으로 비는 것이다. 고통 없는 즐거움 가득한 곳으로 왕생극락하도록 기원함이다. 현충재는 만인을 불러 모아 만인에게 보여주었다.
이런 행사를 주관한 단체는 한국 불교 무용연구소와 인천 무형 문화재 10-가호 범패, 작법무용 보존회다. 보존회는 열성과 성심을 다해 진력을 다했다. 범패(불교 음악)와 작법무(불교무용)의 예능 보유자인 능화스님이 주도 했다.
남산의 초 여름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총총하고 땅을 내려다보니 땅바닥에선 지열이 후끈하니, 공연자들의 불심과 관람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은 뜨겁기만 했다.
하늘극장 마당에선 범패와 타종이 울렸다. 사찰 내에서처럼 대종大鐘을 쳐서 의식을 봉행함을 알리며 시작 되었다.
팜플랫의 순서대로 범패, 천수바라춤, 나비춤, 법고춤 보여주고 있다.
범패는 불교의식인 재를 올릴 때 석가여래의 공덕을 찬양하며 부르는 노래다. 판소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전통성악으로 꼽는 음악 유산이다. 인도에서 발생해 9세기경에 중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한문이나 산스크리트어로 돼있지만, 우리말 가사로 풀어서 해주니 듣기가 좋았다. 우리말 가사와 곡조로 된 한국적 범패는 듣기에 더욱 구성졌다.
거기다 천수바라춤은 장관이었다. 천수바라는 원래 대중스님네 들이 천수경을 독경하며 바라춤을 추는 춤인데, 몸맵시가 빼어난 무용수들이 엷은 잿빛 장삼을 입고 어깨에 빨강가사를 걸쳤다. 30여명의 무희들이 동으로 만든 심벌즈처럼 생긴 불구佛具를 양손에 들고 추는 춤은 과히 일품이었다. 천수다라니가 베풀어짐에 경이로운 마음을 몸짓으로 나타내는 역동적인 춤으로 불법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나비춤은 실제 살아있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나풀거렸다. 삼보천룡을 모시는 진언을 지송하며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나비들이었다.
백색 장삼에 길게 늘어진 홍紅가사를 입고 탑 모양의 고깔을 쓰고 양손에 종이꽃을 들고 추는 춤 영가제위들이 법도량에 운집한 가운데 불법이 베풀어짐에 따라 법열을 나타내는 아주 정적靜的인 춤이었다.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한 보존회 회장인 능화, 큰스님(김종형)의 법고춤은 관중들을 무아지경에 빠트렸다. 고정시켜 놓은 큰 북(법고)을 두드리며 불덕을 찬양하고 세간 중생들을 제도하는 기원무舞다. 재를 올리는 의식에서 일체 중생들이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도록 하는 염원을 실어 춤을 추는 것이다.
축생과 같은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범무梵舞이다.
그밖에도 사다라니, 명발, 식당작법의 의식이 재현되었다. 십여 분의 스님과 삼십 여명의 인천 작법무용 보존회와 안무지도자. 그리고 이십 명의 ‘정도사합창단원’들이 펼치는 춤과 노래는 남산의 깊어 가는 여름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그 나라의 문화 척도는 정신적 가치관을 가늠케 한다. 문화의 중심은 사람이다. 그래서 무형의 문화재를 잘 가꾸고 보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형문화재는 외곬의 삶을 살아온 사람의 숭고한 정신에서 꽃처럼 피어난 것이다.
가난함 속에서의 예술은 멸시의 대상이었다. 이제는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젠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받고 많은 이들로 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불교문화 예술은 1600여년의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과 동반해 오면서 슬픔과 기쁨을 같이 해왔기에 오늘날 세계적인 음악과 무용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교예술을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밀듯 밀려오는 외국 문화의 사태 속에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았다. 불교문화는 곧 한국문화의 원조라 할 수 있다. 더 많이 전파되어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 지지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불교용어가 부지기수다. 예를 들면, 야단법석이라든가 겁劫, 삼독三毒, 열반涅縏, 업業, 해탈解脫 등이 있다.
그만큼 불교는 깊숙이 우리에게 들어왔고 의지하면서 살아왔다.
이렇게 보존회의 뜻으로 치러지고 있는 엄숙한 현충재를 ‘하늘극장’에서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자식이나 친척들이 해야 할 일을 스님네들이 나서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우국충절 선현들의 혼이 땅으로 강림하시어 극락세계에 이르기를 빌어주고 있었다.
E-mail: lys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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