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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날개(2017-12-16 20:13:31, Hit : 530, Vote : 98
 맨해튼에서 길을 잃다- 윤온강

맨해튼에서 길을 잃다

윤온강

  나는 비교적 길눈이 밝은 편이다. 아무리 복잡한 골목이라도 한번 가 본 데는 용케 잘 찾는다. 방향 감각도 뛰어나서 큰 지하상가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도 들어온 입구를 정확히 찾아 나갈 정도다. 어쩌면 이런 길눈은 타고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경우는 오랫동안 연마한 감각 덕분일 가능성이 더 크다.
  어릴 때부터 나는 길 찾기를 즐겨했다. 여덟 살 무렵, 용산구 원효로 한구석에 있던 우리 집에서 을지로 4가에 있는 친척집까지 곧잘 혼자서 걸어 다녔다. 6킬로미터가 넘는 먼 길이었다. 처음에는 을지로 쪽으로만 다니다가 얼마 뒤에는 방향을 틀어서 종로 통으로 빠져 보기도 하였다. 종로와 을지로 통이 평행선으로 놓여 있다는 것도 그때 스스로 터득한 지식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길의 모양을 머릿속에 입력하면서 거리의 구조도 익혀 왔던 셈이다. 저만큼 앞에서 방향을 틀면 먼저 왔던 길과 다시 만나지 않을까 하는 예측,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되었을 때 생기는 안도감이나 성취감 같은 것이 이런 길 찾기의 재미가 아닌가 싶다.
  이 길 찾기의 버릇은 자라서도 계속되었다. 낯선 고장에 가면 반드시 이 병(?)이 도졌다. 그 지방의 지리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삼아 뉴욕 거리 탐색에 나서는 것을 본 제수(弟嫂)가 나를 보고, 아주버님은 뉴욕에 아주 살려고 온 사람 같아요, 하던 것도 바로 이런 내 모습이 우스워서 한 말일 게다.
  사실 말이지 스스로 생각해도 좀 멋쩍을 때가 없지 않다. 오스카 와일드의 흔적을 찾는답시고 런던 거리를 헤매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아직도 호기심 많은 여덟 살짜리 어린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거기 용산에서 출발해서 이제 막 갈월동을 지나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어린 남자 아이가 있었던 것이다.  

  뉴욕의 맨해튼은 각 구역이 반듯반듯하게 네모져서 길 찾기가 아주 쉬었다. 5번가, 6번가, 7번가…이런 식으로 구역이 나뉘어 있으니 좀처럼 길을 잃을 염려가 없었다. 지도 없이도 얼마든지 혼자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다니던 어느 날 뉴욕대학 근처, 워싱턴스퀘어에 갔을 때 일이다. 그 옆 동네가 바로 그리니치빌리지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곳이 바로 저 유명한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의 무대가 아니던가.
  동네 초입에 들어서자 울긋불긋 색칠을 한 어느 집 담벼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의 모양이 어쩐지 소설 속의 화가 베어먼 노인이 그린 담쟁이덩굴 같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골동품 가게를 기웃거리며 보도를 걷자니까 병상에서 시들어 가던 가냘픈 존시도 보였고, 마음씨 착한 그녀의 친구 수우도 눈에 띄었다. 실제는 아무 연관이 없는 행인들에 불과했지만….
  그렇게 소설 속의 현장에 들어간 듯 묘한 환상에 빠져서 걸어가는데, 이게 웬 일인가. 길이 자꾸만 어긋났다. 나온 데가 또 나오고, 나올 만한 데가 안 나왔다. 나 같은 길 선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도를 안 가지고 간 것이 잘못이었다. 동행하던 아내의 눈치를 살피느라 진땀이 났다. 하는 수 없이 길가 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사 마시면서 가게 주인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그 미로 같던 그리니치빌리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직후 <마지막 잎새>를 들추어 보니까, 그 소설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워싱턴 스퀘어(뉴욕 5번가에 있는 공원)의 서쪽에 있는 조그만 구역에 가면 길이 이리저리 마구 얽혀서 [플레이스]라고 부르는 길쭉한 조각으로 나뉘어 있다. 이 [플레이스]들은 기묘한 각과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하나의 길이 한두 번은 제 자신과 교차한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그 골목에서 헤맨 이유를 오 헨리의 소설은 똑똑히 가르쳐 주고 있었다. 맨해튼의 다른 블록들은 전부 네모반듯하게 생겼건만, 이 지역에만 세모꼴이나 사다리꼴의 불록들이 모여 있었다. 그 불규칙한 블록의 조합이 나를 헷갈리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오 헨리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이 거리에서 길을 잃기가 얼마나 쉬운지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표현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일찍이 한 화가가 이 자리에서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감과 종이와 캔버스의 계산서를 든 수금원이 이 거리에 들어와서 외상 한 푼 받지 못하고 어느새 온 길로 되돌아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이 색다르고 예스러운 그리니치빌리지에 곧 화가들이 몰려들어 북향의 창문과 18세기 풍의 박공과 네덜란드 풍의 다락방과 싸구려 방세를 찾아서 돌아다녔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이렇게 복잡한 길을 만나 방향을 잃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왔던 길로 즉시 되돌아갈 수 있었을 때는 괜찮은 편이었다. 허나 제 길을 바로 찾을 수 없게 된 것을 깨달았을 때의 당황함과 불안함이라니….
  이러한 미로가 왜 생기는지 그 까닭에 대해서 나는 여태껏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계획적으로 설계된 도시라 할지라도 도처에 불규칙이 존재한다는 것, 아니 그것이 오히려 기본 원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불규칙하고 불가해한 기호들로 가득한 이 복잡한 세상에서 바른 길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규칙적으로 설계된 줄 알았던 뉴욕의 맨해튼에서 길을 잃었던 나.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여덟 살 때처럼 길 찾기를 계속하며 인생이란 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혹 잘못 들어선 길일는지 몰라도 그 너머에 있는 미지의 곳에 대한 동경으로 가슴이 뛰는 어린 아이로 남고 싶은 것을.






망치를 든 남자 - 윤온강
벤치가 있는 풍경 - 윤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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